선사의 향기

경허선사 : 경허성우(鏡虛惺牛)

맑은 샘물 2011. 9. 13. 00:00

경허선사 : 경허성우(鏡虛惺牛)

 

 

 

 

경허당 대선사 진영

 

 

경허선사 : 경허성우(鏡虛惺牛)

 

 

먼저 꼭 알아두고 가야 할 것이 있다. 경허 스님을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자는 말한다. “경허, 그 파계승.” 또 어떤 자는 말한다. “경허, 야 까짓것 술과 계집에 무애자재라. 허 참 좋다 참 좋아. 속이 확 트인다. 어,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파계승이라 던져 버리든가. 아니면 계율을 어기고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자들이 그들의 친구나 되는 것처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속담에도 있다. “나쁜 점만 본받고, 좋은 점은 보지도 않는다.”고 경허 스님의 거죽만 보고 그것을 흉내내면 그대로 도인인 줄 알고 술, 담배, 고기를 마음대로 퍼마시고, 오입질을 똥 깔기듯 해대는 무뢰한 놈들이 바글바글한다는 이 사실, 결코 우리의 경허 스님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그런 분이 아니란 걸 똑똑히 알아주었으면 한다.

오늘날 한국 불교 승단의 병폐가 바로 이것이다. 계는 곧 법이다. 계를 어기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승조(僧肇)스님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가. 결코 그대들의 잘못됨을 막는 방패로서 경허스님을 이용하지 말기 바란다.

경허 스님이 이걸 알면 하늘 끝까지 치를 떨 것이다. 예부터 사문은, 사문의 행(行)은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막행막식이 결코 도인의 행동일 수 없다. 사이비 가짜 선객들이 지옥 갈 채비에 불과하다. 이 머지리들아, 하늘이 노한다. 노해.

역대의 조사 스님들을 보라. 잘못을 잘못으로 알고 바로잡을 생각을 않고, 그 잘못을 정당화시키는 방편으로 우리의 경허 스님을 훔쳐가다니, 이런 개만도 못한 녀석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경허 스님의 경지에 가지 않은 자는 절대로 경허 스님을 흉내내지 말라. 거기 파멸과 어둠이 있을 뿐이다.

경허(1849-1912), 이런 사람이 한국에 태어났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의 측근을 싸고도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것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자세히 알수 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그의 일생을 엿보는데 있어서 참고할 자료가 있다면 그것은 방한암 스님의 [一鉢錄]에 실려있는 [경허선사행장]과 [경허집] 속에 만해 한용운의 찬으로 되어 있는 [경허당약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처음으로 모태를 거쳐 이 세상에 왔을 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3일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들 아기가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3일이 지나자 죽은 줄만 알았던 핏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그 조그만 입에서 우레 같은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본 동리 사람들은 기이한 일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송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을 동욱이라 하였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동욱은 어머니를 따라 상경길에 올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동욱은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청계사에 가서 계허(桂虛)대사에게 입산 수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어린 나이로 불문에 귀의하게 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후부터 어린 동욱은 고행의 길에 올랐다. 그는 남달리 힘이 장사였다. 어느 절을 가든지 물긷고 밥 짓는 일을 도맡아 했으므로 미처 독경의 겨를이 없었다.

그가 열 네 살이 되던 해 문장에 능통한 한 유생이 그가 있는 청계사를 찾아와 한 여름을 머물게 되었다. 동욱은 이 유생에게서 처음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글공부가 날로 새로워질 무렵, 그의 스승 계허 대사가 인연 따라 속가로 나가게 되었다.

계허대사는 동욱의 글 공부를 중단시키기가 아까워 평소에 친분이 있던 계롱산 동학사의 만화강백(萬華講伯)에게 동욱을 보냈다. 동욱은 만화강백 밑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 팔만대장경의 다른 이름)를 다 마쳐 버리고 밖으로는 사서삼경을 비롯, 세속의 모든 경서까지 모조리 읽어 버렸다.

벌써부터 동욱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스물 세 살 되던 해, 그는 만화강백의 뒤를 이어 동학사의 강백이 되었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학인들이 참새떼와 같았다.

서른 한 살이 된던 해 여름, 동욱은 홀연히 속세로 나간 옛 스승 계허의 생각이 떠올랐다. 동욱과 계허와는 사제지간을 떠나서 남달리 애착의 정이 두터웠다.

날이 새자 동욱은 계허를 찾아 떠났다. 도중에 어느 마을에 들렀는데 집집마다 대문이 굳게 잠겨 있고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동욱은 이렇게 큰 동리에 사람이 없는 이유를 물었다.

사연인즉 지금 이 동리에 염병이 퍼져서 사람이란 사람은 모조리 병을 앓고 누워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동욱의 마음에는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그는 생사의 까마득한 절벽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선 급한 것이 이 <태어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그 길로 동욱은 발길을 돌려 동학사로 돌아왔다. 학인들을 깨워 한자리에 모았다. 그는 이제부터 불경강의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학인들의 얼굴은 길을 잃은 아기새의 표정이었다.

학인들은 하나씩 하나씩 동학사를 떠나가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받는 그의 가슴은 찟어지듯 하였다. 그들이 떠나간 다음 마른 나뭇잎 소리만이 빈 절을 채우고 있었다. 동욱은 평소 그렇게도 아끼던 책들을 모조리 불질러 버렸다. 아무리 문자를 뒤지고 따져 봐도 이 <나고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고리를 안으로 굳게 걸고 집중삼매에 들어갔다. 오직 <나고 죽음>, 이 문제만이 칼끝 되어 그의 전신을 쑤시는 것이었다.

“그렇다. 결국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목숨이 다하는 날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찌 되는가. 왜 태어난 자는 죽어야만 하는가. 꼭 죽어야만 한다면 죽음 뒤의 세상은 또 무엇인가. 이 육체가 한낱 고깃덩이가 되어 싸늘해질 때 의지처를 잃어버린 이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애 태어나 왜 죽는가?”
<왜>라는 의문 붑호가 끊임없이 그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어떤 중이 조주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如何是佛)
조주가 말했다.
“뜰앞의 잣나무” (庭前栢樹子)

당시 조주의 방 앞에는 큰 잣나무가 있었다. 마침 그때 조주는 아무 생각없이 잣나무를 보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중은 조주에게 제2탄을 던젔다.

“경계를 가지고 사람을 놀리지 마십시오.”
조주의 대답이 울렸다.
“그대를 놀려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네.”
중은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如何是佛)
조주의 대답이 낭낭히 울렸다.
“뜰 앞의 잣나무” (庭前栢樹子)
이 찰나 그 중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식의 대화를 공안이란 한다. 오도를 하기 위하여 통과해야만 되는 문 없는 관문인 것이다. 경허가 잡은 공안은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였다. 집중에서 집중으로 끝없이 치닫던 그의 마음은 더 이상 갈 곳을 잃었다. 백척이나 되는 장대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이러던 어느날 한 중이 그의 방앞을 지나가며 이런 말을 던졌다.

“소는 소로되 콧구멍 없는 무쇠소로다.”

이때 그의 중심에는 무시무시한 우레소리가 들렀다. 그 소리는 소리 없는 벼락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나 커서 우주를 갈갈이 찢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우레소리와 함께 그렇게도 견고하던 에고(ego, 我執)의 벽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차별의 이 현상계는 일미평등(一味平等)의 바다로 들어가 버리고 객관의 세계인 만유와 주관의 자아가 동시에 나눠지기 이전의 상태로 환원되었다. 이 상태에서 볼 때 <나다> <남이다> 하고, 보는 주관과 보이는 객관을 나눈다는 것은 한낱 허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부터 동욱은 문득 경허로 탈바꿈한다. 경허는 <거울이 비었다>는 뜻이다. 이 우주에 오로지 거울의 빈 것만 깔려 있을 뿐이었다.

경허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우습고 우습도다.
소를 타고 가며 소를 찾는 짓이여.
그늘 없는 나무 베어다가
저 바다의 거품을 태워 다하라.“

경허의 마음 비인 거울에는 의심이 풀어져 웃음으로 굽이쳐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비로소 가장 밝음에서 가장 어두움까지 갈 수 있는 대해탈을 얻은 것이었다. 아니 그 자신 속에 잠자고 있던 본래의 능력으로서의 대해탈을 개발한 것이었다. 그는 <나고 죽음>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버렸다. <나고 죽음>이 해결된 자리에서 볼 때 세상만사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그대로가 말할 수 없이 아기자기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경허는 조용히 오도송을 읊었다.
이때가 1880년 11월 그의 나이 31살이 되던 해 그믐이었다.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에
이 우주가 도무지 나라는 것을 알았네
6월 연암산 아랫길에
일 없는 야인이 태평가를 부르네

이로부터 전날에 아무리 책을 뒤지고 머리를 짜도 도무지 알 수 없던 온갖 법문들이 얼음 녹듯 풀리기 시작했다.

경허는 이제 장부의 일대사를 끝마쳐 버린 것이었다. 하찮은 예의범절이나 승방 계율 속에 대자유를 얻은 자신을 가두어 놓기에는 그의 비상력이 너무나 강력하게 타올랐다. 이제 그 어떤 규범도 그를 가둘 수 없었다. 배고프면 정신 없이 밥 먹고, 피곤하며 잠자는 것, 그대로가 모두 하나의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연극이었음을 안 것이었다.

한암스님은 [경허화상행장]에서 이 무렵의 경허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장암에 주석하실 때에 누더기 한 벌로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바꾸어 입지 않으니 모기가 물고 이가 옷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물려 피부가 헐어도 적연히 움직이지 않음이 산악과 같으며, 하루는 뱀이 들어와서 어깨에 서리고 있는 것을 곁의 사람이 알려 주어도 태연 무심이라. 조금 후에 뱀이 스스로 나가니 도(道)가 응집된 경지가 아니면 누가 이와 같겠는가.

한번 앉으면 여러 해를 찰나(1/75초)를 지나는 것과 같이 하시더니 어느날 아침에 다음과 같이 일절(一絶)을 읊었다.

세속과 청산, 어는 것이 옳은가
봄이 오니 성마다 꽃피지 않은 곳이 없네
누가 만일 경허의 일을 묻는다면
돌계집이 겁외가(劫外歌)를 부른다 하리.

드디어 주장자를 꺾어 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훌훌 털고 산을 나서니 형편 따라 교화를 베푸심에 상투적인 데서 벗어나고 격식을 두지 않으셨다. 혹은 어슬렁거리며 속인들과 섞여 지내시며, 혹은 한가로이 송정(松亭)에 누워 초연히 풍월을 읊조리시니 그 초탈한 취지는 사람들이 능히 헤아릴 수 없었다.

이제로부터 그의 생은 그야말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꺼리김없이 허공을 나르는 새의 자태, 바로 그런 대자유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대자유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물의 본질에 그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물은 일정한 색깔이 없다. 따라서 물에게는 어떤 일정한 형태도 없다. 물은 그렇기 때문에 형태 없음의 무(無)를 통하여 어떤 형태로도 즉시 변형될 수 있다는 유(有)를 실현한다.

물의 유색(有色)은 모든 색의 총집합체로서 무색(無色)이다. 물에 붉은 물감을 타면 물은 붉은 핏빛이 된다. 검은 색깔을 넣으면 물은 검은 어둠이 된다. 따라서 물에게는 일정한 목표가 없다. 물에게 있어서 궁극의 목적이란 <흐르고 있다>는 현재진행형뿐이다.

이 현재의 상태가 어떤 목적을 향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 이대로가 최상의 목표라는 순간 속의 그 영원성을 표현하고 있다. 물에는 불변(不變, 변하지 않음)과 수연(隨緣,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함)의 두 가지 성질이 있다.

전자는 물의 내면으로서, 물의 온도의 차이에 따라 얼음이나 눈 혹은 안개, 구름, 수증기의 천차만별로 변화되어도 물이 가진 습성만은 불변의 것이라는 물의 개성을 말한다. 후자는 수증기, 얼음, 눈, 안개, 구름 등으로 변화하는 물의 표면, 즉 물이 가진 적응력을 말한다.

이 세상에 가장 약한 것은 물이다. 물은 부드럽고 애처롭고 너무나 수동적이다. 물은 그저 말없이 흐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도 역시 물이다. 폭퐁이 울부짖는 물, 해일로 변하여 허연 배때기를 세우고 달려와 대지를 뼈다귀째 삼켜 버리는 물의 울부짖음, 선(善)이 에너지의 유연 상태라면 악(惡)은 에너지의 강열(强熱)함을 뜻한다.

물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순의 극치다.
따라서 우리가 물에 대하여 물의 특성에 대하여 내릴 구체적인 말을 우리는 갖지 못했다. 물은 그저 물이라고밖에 달리 그 특성을 잡기에는 우리의 사고력이 혼란을 일으킨다. 가장 나약한가 하면 가장 강한 존재로서의 물이며, 경허가 오도를 통하여 잡은 삶이란 물에 대한 철저한 자기화였다.

물은 반항한다. 인습의 무기력함을 싫어한다. 물은 <사고의 극치로서의 행동>으로 경허를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경허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가 그의 사고 아닌 사고의 근원으로서의 직관력으로부터 반사하는 내면의 형상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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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첫째 이야기


어느 날 동학사에서 큰 법회가 열렸다. 방방곡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학사롤 모여 들었다. 동학사는 몰려든 인파 속에 잠겨 버렸다. 이 날의 법사는 당시 그 이름이 사해에 떨치던 사람, 만화강백이었다. 만화는 경허의 옛 스승이기도 했다.

법회장, 눈부시게 금란가사를 두른 만화강백이 법상에 올랐다. 그의 얼굴에는 티없이 맑음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만화는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내리쳤다. 이것은 법회가 시작되기 전의 한 예법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그 침묵 한가운데를 찢고 조용히 조용히 만화강백의 목소리가 청중의 머리에 떨어졌다.

“몸가짐은 바르게 갖고 걸음걸이는 똑바로, 문을 열고 닫을 때는 두손으로 그 문 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하느리라.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이 되는 이유는 그 규범과 질서를 알고 이에 따르는 때문이다.

말은 반듯하고 고운 말만을 가려 쓰되, 아예 남에게 거슬리는 말은 삼가야 되느니라. 그리고 말을 할 때는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느니라. 말이란 한번 입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 실수한 말 한마디가 마침내는 재앙의 씨가 되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입이 화의 문이다(口是禍門)>라는 말이 있느니라.“

만화강백의 법문은 청중들로 하여금 고개를 못 들게 했다. 그의 낭랑한 음성 홀로 풍경소리에 섞여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만화강백의 기나긴 장광설이 끝났다. 청중의 감동어린 눈빛이 만화강백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다음은 잠시 객으로 왔던 경허의 차례가 되었다. 만화강백은 만족스러운 듯 옛 제자 경허를 손수 법상으로 안내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불량아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아버지의 넉넉한 모습이었다. 경허는 다 헤어진 누더기였다. 만화강백과는 퍽이나 대조적이었다. 경허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지금 만화강백께서 좋은 말은 다 해 버려서 내 따로이 할 말이 없습니다. 이왕 법상에 올라왔으니 몇 마디 개소리나 던지고 내려가겠습니다. 내 보기에는 지금 만화강백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틀렸다고 봅니다.

도독놈은 도독놈대로 쓸데가 있고 선비는 선대로 쓸 데가 있습니다. 잘난 놈은 잘난 놈대로 쓸데가 있고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쓸데가 있고 좋은 놈은 좋은 대로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건 가운데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도둑이 있기 때문에 착한 사람의 값어치가 있는 법이요. 선비가 못하는 일을 건달패가 능히 하는 법입니다. 게으름은 병이라고 합니다만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게으름은 없어서는 안될 휴식입니다.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 그대로 다 쓸데가 있는 법입니다.“

경허의 법문은 마치 폭풍과도 같았다. 만화의 규범과 질서에 대한 경허의 무차별 평등, 불사일법(不捨一法)의 대긍정이었다. 이 긍정은 가장 무서운 집념에서 가장 초탈한 포기까지를 장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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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둘째 이야기


경허가 천장사에 있을 때였다. 아랫마을의 유생들이 경허를 초대했다. 청년승 만공은 스승 경허를 모시고 천장사를 내려갔다. 유생들은 잘 구워진 파전에 동동주를 담아 놓고 경허를 맞았다.

경허는 유생들이 따라주는 곡차를 비우며 늦도록 취홍삼매에 들었다. 어둠이 되었다. 경허와 만공은 얼근히 취하여 비틀비틀 천장사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뒤따르던 만공이 좀 쑥스러웠던지 경허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저는 곡차가 있으면 먹기도 하고 혹은 안 먹기도 합니다. 파전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별 생각이 없습니다만....”

이 말을 듣던 경허는 만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만공의 말꼬리를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자네는 참 도가 높네 그려. 나 같으면 곡차가 먹고 싶으면 가장 좋은 밀씨를 구해다가 밀을 갈아서 김을 매고 가꾸어 밀을 베어서 누룩을 해서 곡차를 빚어서 먹고 또 먹겠네. 또 파전이 먹고 싶으면 파씨를 구해다가 거름을 주고 잘 가꾸어 파전을 부쳐서 먹고 먹고 자꾸 먹겠네.”

이 말을 들은 만공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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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셋째이야기


만공은 천장사를 떠나면서 경허에게 작기 몫으로 심부름시킬 아이 하나를 데려다 주었다. 아랫마을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면 으레 아이를 불러 경허 선생님(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에게 가장 맛있는 부분을 떼어 올려 보내곤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러한 일이 자주 계속되자 죽을 지경이었다. 부모들의 권유로 절에 오긴 왔으나 친구도 없고 또 이 추운 겨울에 고기를 갖고 높은 절에 오르락내리락 하기가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하루는 또 아랫마을에서 소를 잡았으니 내려오라는 기별이 왔다. 아이는 생각다 못하여 고기를 얻어 가지고 오는 길에 비상을 사서 고기 속에 섞어 버렸다. 아이의 속셈은 이 늙은 중이 죽어 버리면 자기도 이러한 고생도 끝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곡차를 한 되 사들고 와서 경허의 방문 앞에 놓아두고 갔다. 경허는 평소와 다름없이 곡차를 한사발 들이킨 다음 고기를 씹었다. 이상한 것이 자꾸 씹히는 것이었다. 뱉어보니 비상이었다. “이놈이 비상을 섞었구나.” 밥에 든 돌을 가려내기나 하듯 비상을 가려 뱉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비상이 섞인 고기와 곡차를 다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얘야, 그릇 내가거라.”
아무 대답이 없다. 경허는 취기를 달래며 빈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짚단 뒤에 숨어서 떨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이놈아, 그릇을 치우지 않고 여기서 뭘하고 있느냐?”

일은 이것으로 깨끗이 끝나 버렸다. 그 후 경허의 얼굴에는 비상을 먹었다는 기색조차 엿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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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넷째 이야기


경허와 만공이 해인사를 향하여 가던 때의 이야기

이 주막 저 주막마다 들려 노자돈을 털어 곡차를 사 먹고 가다가 돈이 똑 떨어졌다. 경허는 어느 주막에 들어가 뱃심 좋게도 주막를 꼬여 외상으로 곡차를 먹은 다음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했다.

가까운 절의 <단청불사(丹靑佛事)>를 한다는 <권선문>을 쓰고 방명록을 만들었다. 경허는 만공을 앞세우고 집집마다 다니며 권선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왠 중이 키도 장대 같고 권선문으로 보아 그 문장도 비범한 데가 있어 보여 얼마씩의 돈을 시주했다. 이렇게 하여 돈이 전대에 두둑히 채어졌다. 경허는 만공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만하면 단청불사하기에 넉넉하겠군.” 다시 경허의 주막 행각이 시작되었다. 이러구러 단청불사 시주금으로 모인 돈이 거의 술값으로 나가 버렸다. 만공은 보다 못하여

“스님,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런 짓을 하십니까? 부처님을 팔아서 시주금으로 곡차를 사 먹다니 말이나 됩니까?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만공의 음성은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경허는 갑자기 가던 길을 끊어 버렸다. 바위 위에 걸터 앉았다.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야 이 사람아, 이 이상 더 어떻게 단청불사를 잘 하란 말인가.”

경허의 얼굴은 곡차의 기운과 추위가 반죽이 되어 푸르락 붉으락하엿다. 거기에다가 검은 수염의 색깔이 섞이고 때마침 날리는 흰 눈발의 흰색깔이 섞였다. 만공은 그러한 경허의 얼굴을 보며 무릎을 쳤다.

“과연 단청불사치고는 참으로 멋진 단청불사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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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다섯째 이야기


“만공 다리 아픈가?”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걸어온 지가 벌써 한 달째입니다.”
“음, 그렇다면 내 그 다리를 안 아프도록 해 주지.”

경허와 만공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삼복 더위 속으로 걸어온 것이었다. 지금 그들의 앞에는 하늘을 뚫을 듯한 고갯길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는 만공은 눈앞이 아찔하였다.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경허는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길 옆 목화밭으로 갔다. 목화밭에는 웬 젊은 여인과 그의 남편인 듯한 사내가 김을 매고 있었다. 경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입을 맞춰 버린 것이었다. 옆에 있던 사내가 화가 나 낫을 휘드르면 쫓아왔다. 경허는 도망가며 우두커니 서 있는 만공에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동생, 빨리 오게.”
경허를 쫓던 사내의 싯퍼런 낫이 이번에는 만공을 향해 쫓아왔다. 만공은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갔다. 얼마를 뛰었을까, 낫 든 사내도 보이지 않고 어느덧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헐레벌떡 올라오는 만공을 보며 경허는 팔짱을 낀 채 웃고 있었다.

“만공, 지금도 다리가 아픈가?”
“다리가 뭡니까. 이 목이 붙어 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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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여섯째 이야기


더위 콩 볶듯한 여름, 경허는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대추씨만한 상투를 단 노인네가 그의 며느리인 듯한 젊은 여자와 디딜방아를 찧고 있었다. 경허의 발걸음이 그쪽으로 휘어졌다. 뒤따르던 만공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적이 걱정이 되었다.

경허는 보리쌀을 넣고 있는 며느리의 등뒤로 다가갔다. 가슴을 주물럭주물럭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노인은 기가 차서 멍청하게 볼뿐이었다. 경허의 그런 모습은 마치 짐승과도 같았다.

“노인장, 아랫것이 좀 동하지 않는가?”
이때야 노인은 제 정신이 돌아왔다. 지게 작대기로 경허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얼마를 때렸을까, 노인은 땀을 뻘뻘 흘리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경허는 조용히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 어른, 이제 화가 풀렸소?”
만공은 걱정스러운 빛으로 경허의 그림자를 밟으며 뒤따랐다.
“스님,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십니까> 만일 그 집에 젊은 사내라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경허가 만공에게 화답했다.
“만공, 이래도 꿈이요, 저래도 꿈이요. 좋은 꿈이건 나쁜 꿈이건 산다는 것은 그저 꿈이긴 매한가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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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일곱째 이야기


다시 천장사, 겨울 저녁, 문둥이 거지 여자가 밥 얻으러 왔다.
그의 몸은 피고름과 코 찌르는 악취뿐이었다. 거기에다 정신까지 정상이 아니었다. 부엌 사람들은 악취 때문에 거지 여자를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엌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거지 여자는 한사코 부엌문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것은 생명에의 그 무서운 발버둥이었다. 경허의 눈에 이 모습이 비쳤다. 그는 거지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거지 여자는 달려갔다. 그 손짓은 거지 여자에게 있어서 마지막 희망이었다. 경허는 피고름 묻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밥상에 잠자리까지 같이하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났다. 사형 태허와 어머니는 번갈아가며 경허를 타일렀다. 거지 여자와 이별이 왔다. 경허의 전신에는 거지 여자가 준 피고름이 번지기 시작했다. 거지 여자는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따듯한 사랑을 받아 본 것이었다.

거지 여자의 눈에는 슬픔이 거울같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 속에 용해되어 들어가 그와 내가 일체가 되어 나뉘이는 그것인지도 몰랐다. 거지 여자의 뿌리 잃고 방황하던 정신은 경허라는 디딤대로 하여 제 자리로 다시 되돌아왔다.

“스님, 저 세상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경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할 뿐이었다. 거지 여자의 모습이 눈발 속에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후 경허에게는 심한 피부병이 찾아왔다. 거지 여자가 옮겨주고 간 피부병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의원을 찾아갔다.

“닭똥으로 소주를 다려 개고기와 곁들여 먹으십시오.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뒷날 곡차와 고기는 그에게 있어서 몸의 일부분같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주량과 육량은 무서운 속도로 늘어갔다.

말년에는 길바닥에서도 개고기를 구워 먹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애행의 극치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구겨 버리며 그는 쓸쓸히 웃었다.

“무애행이 아닐세. 말하자면 축생행이네. 개, 돼지의 행동이네. 나의 세계는 부처에서부터 짐승까지이네.” 그의 이런 행위는 그가 인간이라는 유한의 공간을 부숴버리고 능히 축생의 행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그의 높은 경지를 구체화한 것임에 지나지 않는다.

만공은 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것은 모두 스승 경허를 흉내낼 수 있으나 이 짓만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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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여덟째 이야기


빗줄이 대창같이 꽂히고 있었다. 그 빗줄을 헤치며 경허의 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의 부르는 소리에 달려갔다. 방문을 열었다. 경허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여자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방문을 닫아 버렸다. 돌아갔다. 경허의 알몸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 왜 도망가십니까, 어릴 때는 나를 귀엽다고 안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내 꼬치를 만져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날과 지금이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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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아홉째 이야기


해인사 조실 시절, 아침을 먹은 경허는 어슬렁어슬렁 일주문 밖으로 내려왔다. 동구 밖에는 곡차를 파는 집들이 심심하지 않을 만큼 널려 있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사발 철철거리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고 난 경허는 장대 수염을 비질하며 다음 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가 졌다. 비틀거리며 일주문을 넘어온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곤드레된 그가 꼭 대적광전으로 돌어가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젊은 승 몇몇이 대적광전 뒤에 잠복했다.

어둠이 짙어지자. 어둠을 쪼개는 기침소리가 들렀다. 경허였다. 대적광전 어간문이 무겁게 열렸다. 경허의 둘레에는 칼기운이 서리고 있었다. 그는 법신 비로자나불 정면에 마주 섰다.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턱밑에 세웠다. 밤새도록 부동자세로 그렇게 서 있는 것이었다.

까닥 잘못하여 졸기라도 하는 날이면 경허의 목숨은 찢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힘을 그 극한에까지 몰고 가서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그만의 독특하고 위험한 수행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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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열 번째 이야기


천장사의 젊은 시절, 오도 후 그 오도를 다지는 보임(補任)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젊은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 진눈깨비가 치고 날이 어둡기 시작했다. 눈은 함박송이로 변하였다. 여인은 천장사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날이 새었다. 눈은 지붕을 덮었다. 이 눈은 그 후 석 달 동안이나 천장사로부터 사람의 발길이 끊어 버렸다.

천장사에는 경허 혼자뿐이었다. 여기에 젊은 여인이 폭설과 함께 끼여든 것이었다. 눈은 젊은 여인으로 하여금 경허와 같은 방에서 자고 같이 먹게 만들었다. 경허는 오로지 보임에 여념이 없었다.

“스님, 날이 몹시 춥습니다. 공부 그만 하시고 이불 속으로 들어오시지요.”
“아직은 춥지 않습니다. 추우면 들어갈테니 내 걱정은 마십시오.”

이렇게 말의 첫 가닥을 풀어 내는 여인의 젊음 가운데는 늠름한 경허에 대한 소유당하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보임에 들어간 경허에게는 이 관능이 전달될 길을 잃어버렸다.

추우면 이불 속으로 들어오겠다던 경허는 새벽이 돼도 윗목에 부동 자세로 앉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석 달이 고스란히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봄이 되었다. 지붕을 덮고 있던 눈덩이들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낙수물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있었다. 경허와 젊은 여인은 나란히 볕바른 마루에 앉았다. 초봄볕이 두 사람을 적시고 있었다.

“스님 실례가 되는 것 같습니다만 불구의 몸이 아니신지요. 같은 방에서 더구나 젊은 여자와 석 달이나 밤낮으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한 눈빛 한 가닥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존경도 갑니다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섭섭함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인연이었는데 우리의 인연이 열매를 맺지 못한 느낌이 듭니다.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경허는 먼 산에 봄이 오는 소리를 보며 웃었다. 사실 경허의 마음에는 석 달 동안 보임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마음에는 오직 무념(無念)으로 가는 삼매뿐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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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열한 번째 이야기


“야 이놈들, 내 눈으로 보니 모두 내 아들놈뿐이로고, 어흠 취한다.”

경허의 긴 옷자락이 밤바람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갈지(之)자 걸음은 고요로 덮여 가는 마을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웬 녀석이 이 밤중에 소란을 피우는 거야.” 동리의 젊은이들은 화가 나서 팔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산적 같은 중녀석이 곡차에 고래가 되어 비틀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경허는 우악스럽게도 젊은이들에게 붙들려 몰매를 맞고 골방 깊숙이 갇혀 버렸다.

경허를 가둔 젊은이들은 인간 내부에 묻혀 있던 그 잔인성의 표출로 하여 뜨겁게 달아 오른는 마음을 짓누르며 돌아갔다.

얼마 후 경허를 덮고 있던 취기가 경허로부터 말끔히 가셔 버리고 경허의 마음에는 초롱초롱한 반짝임뿐이었다. 그 반짝임이 어둠을 영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이야, 불이야.” 잠으로 길어 가는 마을을 두드려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저마다 손에손에 물동이와 갈쿠리 혹은 곡괭이를 들고 불이 난 곳을 향하여 달려갔다. 헐떡이며 달려온 그들의 앞에는 아까 곡차에 곤드레만드레되어 몰매를 맞던 중, 경허가 빙그레 웃으며 서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불이 난 거요?” 늙은이 하나가 성급하게 뛰어나왔다. 경허는 떡 벌어진 자기 가슴을 치며 껄걸 웃었다.

“요 속에서 불이 났소. 몹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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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열두 번째 이야기


마등령, 누더기를 걸친 늙은 중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다. 구름이 노승의 옷깃에 흘러가고 있었다. 그 위로 산새들의 울음이 박히고 있었다. 노승은 긴 나무 그림자를 꺾으며 바위에 걸터 앉았다.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나무하는 아이들이 대여섯 짝을 짓고 있었다. 노승은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잠시 고개를 숙였다. 얼마가 지났다. 노승의 고개는 무겁게 들렸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나무꾼 아이들 쪽으로 갔다. 이윽고 노승의 닫힌 입이 열렸다.

“얘들아 이리오너라.”
아이들은 웬 사람의 소리가 나자 놀랐다. 허름한 옷을 걸친 노승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큰 범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얘들아, 이리오너라.”
노승의 두 번째 말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가웃거리며 노승에게 다가갔다. 노승은 허리춤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흔들었다.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너희들 나를 너희 힘있는 대로 때려다오. 그러면 이 돈을 다 주마.”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를 때려 달라는 말도 이상하고 또 거기에다 때린 값으로 돈까지 준다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눈빛을 살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정적이 노승과 아이들의 사이를 지나갔다.

“무엇을 하느냐? 빨리 나를 때려라.” 노승의 말이 불꽃을 튀겼다. 아이들 중에 가장 힘센 듯한 녀석이 먼저 지게 작대기를 들고 경허에게 접근했다. 이것을 본 아이들은 저마다 지게 작대기를 들고 경허를 둘러쌌다. 경허는 아이들의 작대기가 한번 경허를 칠 때마다 거기에 반주라도 맞추는 듯 경허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안 맞았다.”
아이들은 때리는 것을 멈추고 이의를 제기했다.
“분명히 우리는 때렸습니다. 그런데 왜 맞지 않았다 하십니까. 돈을 주기가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경허는 주머니의 돈을 꺼내어 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틀림없이 나를 때렸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맞지 않았다. 때리고 때려서 삼세의 모든 부처와 조사들을 다 때려 죽여도 이 경허만은 못 때린다. 못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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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열세 번째 이야기


경허는 상투잡이들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그 인습에 반기를 들었다. 중이 되어 머리칼을 사정없이 잘라 버렸다. 일본인들은 이 나라의 방방곡곡에 단발령을 내렸다. 경허는 그 단발령에 반항하여 이번에는 장발을 했다. 이와 동시에 냄새나는 승복마저 벗어 던졌다.

경허의 반항은 타는 불길이었다. 그 어떤 것이 와도 태워 버리는 불길이었다. 결국 열반의 세계인 승가도 생사의 세계인 속가도 경허를 잡아 두기엔 너무나 힘에 겨웠다. 경허는 이 두 가지의 서로 대립되는 세계를 박차 버렸다.

장발의 히피가 된 경허의 나이 이미 오십고개를 넘었다. 지나온 50년이 가물거렸다. 그것은 덧없음 속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물소리와도 같은 것, 결코 정체하는 일이 없는,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물의 흐름이었다.

경허는 경허라는 이름마저 버렸다. 대신 난주(蘭州)라는 이름으로 갈아 끼웠다. 난주는 그 길로 산수갑산으로 들어갔다. 갑산의 어느 두메 산골, 서당 훈장이 된 경허 아닌 난주의 모습이 보였다. 난주의 남은 생은 서당 훈장으로 정착되었다. 어느 날 난주는 글방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내일 가네.”
“어디로 가십니까?”
“바람따라 갈 뿐이네.”

그들은 평소 난주 선생을 몹시 존경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난주가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이튿날 아침 제자들은 평소 그들이 아끼던 물건들을 이별 선물로 가지고 왔다. 글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난주는 정좌(正坐)를 한 채 영원히 가 버렸다.

난주의 얼굴에는 슬픔과도 같은, 가녀린 빛이 비치고 있었다. 결코 자신 때문에서가 아닌 남의 슬픔으로, 아니 그것보다도 나라 없는 이 민족의 슬픔이 어리고 있었다.

“선생님, 아주 가셨군요. 저희들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제자들의 흐느낌은 난주의 슬픔을 물들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떡갈나무 마른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떠나던 날 새벽, 난주는 마당에 나와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밥하던 할멈은 투덜거렸다.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불길한 징조였기 때문이었다. 난주의 시체는 양지바른 곳에 묻혀졌다. 제자들은 후손이 없는 난주 선생을 위해 그들 서로가 후손이 되어 제사를 지내 줬다.

3년 후 송낙을 쓴 중의 일행이 이 마을을 찾아와 난주의 행방을 물었다. 만공과 그의 일행이었다. 만공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싸움이 벌어졌다. <묘를 파간다> <절대로 안 된다>는 상반되는 의견 때문이었다.

이 문제는 급기야 관에까지 파급되었고 관은 만공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만공은 스승의 묘를 찾아갔다. 묘 앞에는 아담한 비석이 서 있었다. 그 비석에는 <난주선생지묘(蘭州先生之墓>라고 써 있었다.

이것을 보는 만공의 가슴에는 지난날 경허와 같이 방랑하던 일들이 되살아와 가슴을 메이게 하는 것이었다. 관을 뜯었다. 장발에 도포를 감은 경허의 모습이 만공의 눈에 부딪쳐 뜨거운 눈물을 쏟게 했다. 만공은 다비불을 붙이며 한 수 시를 읊었다.

시비에 물들지 않는 바람 같은 손이 있어
난득산 아래서 겁외가를 그쳤네.
저승말고 다 태워버린 이 저문 날에
먹지도 못하는 저 두견이 <솥 적다> 우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덕산(悳山, 만공스님 당시 수덕사 선원에서 입승을 보심) 노스님께서 만공 스님으로부터 친히 들은 이야기들이다. 덕산 노스님이 생존하실 때 필자는 화계사에서 잠시 동안(1975-76까지) 덕산 스님을 모신 일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덕산 노스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들을 직접 들었다. 그래서 고스란히 여기 실었다. 뒷날 경허 스님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그 자료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