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발사회론3
창발사회론 (3) - 오! 필승! 코리아!
<2편에서 계속>
- 어느 이름없는 20대의 작은 날개짓.
소외된 20대는 좌절만 하고 있었을까? 2002년 한일 월드컵. 전국적으로 무려 800만명의 붉은악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붉은악마는 붉은악마라는 응원단체에 가입한 사람들만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붉은색 셔츠만 입고 거리에 나오면 누구나 붉은악마였다. 남, 녀, 노, 소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함께 외쳤다. 그 함성과 열기....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끌어안고 함성을 지르던 그날, 대형 태극기가 광화문을 뒤덮었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양 볼에 태극기를 그려넣고 나왔다. 주부들은 아이들의 볼에 태극기를 격동적으로 그렸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하나 된 적은 일찌기 없었다. 이런 일은 2002 월드컵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2002년의 대한민국을 들뜨게 했던 이 엄청난 사건은 월드컵조직위원회가 기획한 것도 아니고, 문화관광체육부의 작품도 아니었다. 붉은악마의 원조는 양원석(22·광운대)회장이 이끄는 하이텔 축구 동호회였다.
20대의 발랄하고 신선한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을 하나로 결집시킨 것이다. 어느 정치인도, 종교인도, 교육자도 해내지 못한 기적같은 일이 젊은 20대의 작은 날개짓에서 나왔던 것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생긴다." 로렌츠. 1972년 과학저널 AAAS에서.)
당시 우리 사회는 침울했다. IMF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정치인들의 부패, 비리 사건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회는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창발은 혼돈의 가장자리를 탈출하면서 일어난다. 이러한 상태를 복잡계에서는 '공명상황'이라고도 한다. 공명상황은 다수의 행위자들이 웅성거리면서 상호작용이 활발한 상태를 뜻한다.
2002년 대회는 조별리그 초반부터 이변과 사건의 연속이었다.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 대회 우승팀이자 최강의 우승후보 프랑스가 세네갈과의 개막전에서 0-1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피구의 포르투갈 또한 미국에 2-3 역전패를 당해 충격을 가져다 줬다. 지역예선에서 막강한 전력을 과시했던 아르헨티나의 초반 행보 역시 순항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초반 흐름 장악에 실패한 세 팀은 조별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며 귀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한 지단은 덴마크와의 마지막 경기 도중 무기력하게 쓰러졌고, 노쇠한 바티스투타도 스웨덴 전 패배 이후 뜨거운 눈물을 흘려 축구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 외에도 포르투갈의 피구가 탈락 이후 히딩크 감독과 포옹을 나누며 탈락의 아픔을 달랬다.(네이버캐스트/월드컵대백과)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이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참가 48년만에 사상 첫 승을 이루자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대사건은 전국을 실시간으로 강타하였고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와 대화 내용으로 월드컵이 부각되더니, 붉은 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구 이야기 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복잡계에서는 긍정적 되먹임 현상이라 한다.
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뺨에 태극기와 월드컵 문양을 그려넣었다. 주부들도 아기들도 양 볼에 태극기를 그렸다. 사내들은 얼굴을 넘어 가슴에 태극기를 그리기도 했고, 치우천황의 복장을 한 사내들도 나타났다. 태극기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대형 태극기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모든 요인들이 끌개 작용을 했다. ('끌개'는 안정화된 계에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국의 16강 진출의 운명이 결정된 포르투칼전. 대부분 포르투칼의 승리를 점쳤으나 코리안 듀오 이영표가 띄운 센터링을 박지성이 가슴으로 골 트레핑 한 후, 오른발로 공을 살짝 올린후 왼발로 강력한 슛팅을 했다. 그 공은 포르투칼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빨려 들어갔고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뛰어 오르며 안겼다. 대망의 16강에 오르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나라가 유럽의 축구 강호 포르투칼을 꺾다니. 대한민국이 정말 하나가 되어 열광했다. 터질듯한 감동이 새로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즉 침체된 분위기에서 새로운 무엇을 갈망하는 전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이 순간을 복잡계에서는 '분기점'이라고 한다.
월드컵 첫 승의 거리응원단은 15만명 정도였다. 이 수치는 임계점이 되었고, 임계점을 넘기자 국민의 관심은 온통 월드컵 뿐인 상황으로 발전했다. 첫 승이라는 외부환경의 미시적 섭동이 전 국민을 붉은악마로 만든 거시적 창발현상을 만든 것이다.(복갑계개론 p192 삼성경제연구소)
첫 승전보에 들뜬 사람들은 8강전을 기다리면서 거리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붉은 셔츠를 구입하고, 페이스 페인팅용 물감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뺨과 몸에 태극 문양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월드컵이나 축구에 관한 각종 정보를 발굴하고 공유했다. 이 대사건에 참여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할 판이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흉내 내고 자신과 유사한 특징을 반복해서 발생시키는 것을 복잡계에서는 '프랙탈'이라 한다.
이런 여러가지 '긍정적 되먹임' 현상이 사회를 리드하면서 3-4위를 결정하는 터키전에는 무려 800만 명이 거리로 나오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했다. 어느 이름 없는 20대 대학생의 작은 날개짓 하나가 누구도 흉내내지 못 할 태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분위기가 정부나 기업 또는 부모님이나 선배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강제적인 탑→다운(Top→Down '위에서 아래로')이 아니라 자발적인 바텀→업(Bottom→Up '아래에서 위로') 현상이 나타나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 것이다.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상향(Bottom→Up)의 질서 창출을 '자기조직화'라 한다.
아쉬운 것은 2002 월드컵이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한여름 밤의 꿈'이 되어 추억의 장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새롭게 창발된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려면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주입되어야 하는데, 그런 사건도 기획도 없었다. 새로운 시스템이 창발된 이후 고착화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창발된 시스템은 다시 제자리로 회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에너지를 유입시켰거나 다른 기획으로 발 빠르게 전이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례로 유럽의 축구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동아시아 축구산업 정도는 한 번 시도해볼만 하지 않았나 싶다.
- 국풍國風 81
2002년 월드컵이 800만명의 인파를 끌어내었다면 1981년 '국풍 81'이라는 문화 축제는 무려 1000만명의 인파를 여의도로 불러냈다. 그러나 붉은악마는 비록 세는 위축되었지만 축구 서포터즈 활동은 계속 진행 중이며 4년마다 거리를 장식하는데 반해, '국풍 81'은 단 1회를 끝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가 주관한 '국풍 81'은 원래 1979년 동양방송에서 주최했던 ‘제1회 전국 대학생 축제 경연대회’를 KBS로 옮기면서 제2회 행사를 추진하려던 참에, 청와대 정무 1비서관 허문도가 끼어들어 소박했던 축제를 '국풍 81' 이라는 초대형 행사로 바꾼 것이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청년의 열熱과 의지의 힘이다'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서울 여의도광장과 고수부지에서 5일간 밤낮없이 행사가 진행되었다. 행사가 열리는 여의도 일대는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었고, 행사 기간 동안 야간통행금지도 해제되었다. 행사에는 전국 198개 대학의 6천여 명의 학생과 일반인 7천여 명이 참가하여 민속 문화를 중심으로 한 각종 공연·대회·축제·장터 등이 진행 또는 운영되었다. 행사에 동원된 인원은 16만명이었고, 5일간 행사를 보기 위해 여의도를 찾은 인원은 6백만명(본부측 추산1000만명)에 달했다. 민속문화보다는 야간에 있었던 가요제가 더욱 큰 인기를 끌었다.(위키백과)
그러나 '국풍 81'은 전형적인 탑→다운(Top→Down '위에서 아래로')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비록 100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하나 그 하향의 에너지가 끝나는 것을 기화로 사라져버렸다. 20대 광운대 학생의 발랄한 날개짓은 엄청난 창발을 일으켰고 그 여파는 살아 남아 아직까지도 월드컵이 열리는 해면 우리를 불러내고 있는 반면에 정권 차원에서 준비했던 '국풍 81'은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지금쯤 아마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탑→다운(Top→Down 하향) 움직임은 복잡계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복잡계와 창발
월드컵과 같은 사건은 자연계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2003년 가을과 2004년 봄, 사하라 사막 남부 대평원지대에 100여년만에 풍족하게 비가 내렸다. 대지가 생동하기 시작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자 '사막 메뚜기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메뚜기의 숫자가 불어나자 홀로살이를 하던 메뚜기들이 무리살이로 급속하게 변이를 일으키면서 몸색깔까지 바뀌었다. 녹색에서 어두운 황색으로.
2004년 무리를 일으킨 메뚜기 떼는 매일 3억 평坪에 달하는 땅의 초목을 먹어치우면서 아프리카를 초토화시켰다. 농작물은 물론 야자수까지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이 잔인한 메뚜기 떼는 지중해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의 키프로스에서부터 유럽의 스페인까지 덮쳤다. 이런 메뚜기 재앙은 50년 또는 백년 사이를 두고 가끔 일어난다. 성경에서 모세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를 공갈할 때도 나타났던 모세의 여덟번째 재앙이었다.
홀로살이를 할 때는 온순하던 메뚜기가 서식밀도가 높아져 무리살이를 하면서 갑자기 개체(요소)끼리 강하게 상호작용을 하더니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한 몸처럼 움직이고 이동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메뚜기가 천재적인 두뇌를 소유한 것도 아니고 지도자가 있어서 이 거대한 조직을 이끌 리도 없다. 대답은 간단하다. 주변의 메뚜기들에게서 자극받고 반응하는 사소한 행동만으로 차원이 다른 거대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는 것이다.
위 메뚜기의 예를 든 삼성경제연구소 발 '복잡계 개론'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각각의 메뚜기가 외부환경과 차단된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 항상 외부환경과 활발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열린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에 사막의 단비와 같은 녹색의 풍요와 같이 충분한 에너지가 공급되면 시스템은 급격히 평형상태를 이탈하고, 각자의 구성요소들은 더욱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개별 구성요소들의 무작위한 일탈을 억누르면서 거시적인 흐름을 모아주는 것이다. 즉, 자연계와 사회, 경제계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질서'는 위에서 강제로 조직된 하향(Top→Down)의 질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상향(Bottom→Up)의 질서이다.(인용 끝)
<4편에 계속>
2013.01.20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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