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의 향

삼조 승찬대사 신심명

맑은 샘물 2010. 4. 26. 00:08

삼조 승찬대사 신심명

 

 

 

 

신심명(信心銘), 증도가(證道歌) 강설

 

 

퇴옹 성철 (장경각/2002)

 

 

1. 독서후기

 

6대, 제7대 조계종 종정이셨던 성철스님이 입적(1993.11.04)하신 후, 스님께서 저술한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띈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큰 스님께서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취임하신 1967년 동안거 때 하신 법문을 정리하여 출판한 것이다.

 

비불자(非佛者)로서 그 동안 불교에 관한 서적을 다수 읽었지만, <반야심경 해제>라는 책을 제외하고 이 글처럼 나를 매료시킨 불교 서적은 없었다. 신심명을 접한 후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생각나는 구절이 거의 없다. 물론 주옥같은 내용들은  나를 살찌우는 자양분으로 내 몸속에 녹아 있겠지만, 좋은 글 구절을 음미하고자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신심명은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가 지은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이다.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간단한 글이지만,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법도리와 천칠백 공안의 격외도리(格外道理) 전체가 이 글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모두들 평하고 있다. 중국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고 학자들이 격찬할 뿐만 아니라 삼조 승찬대사의 <신심명>같은 문자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는 평을 듣는 글이다. 

 

신심명은 불교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근본 골자는 글 전체가 모두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다. 글 전체를 살펴보면 대대(對對)를 40대(四十對)로 갖추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대대란 곧 미워함과 사랑함[憎愛], 거슬림과 다름[逆順], 옳고 그름[是非] 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생의 상대 개념 즉 변견을 말하는 것이다.

 

신심명은 간단한 법문이지만 일관된 논리로서 선(禪)이나 교(敎)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를 통하여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가 불교의 근본 사상임을 표현한 중도총론이라고 볼 수 있다.

 

증도가는 영가스님(휘(諱): 현각(玄覺))이 지었다. 영가스님은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고 한다. 영가스님은 31세 때 조계산의 육조스님을 찾아가 예배하고 조계의 길을 확철히 깨친 후 증도가를 지었는데 천태종이나 다른 교가(敎家)의 사상과는 다른 면이 많다.

 

(禪)에서는 ‘한 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고 주장하는데 비해, 교(敎)에서는 ‘점차로 닦아 성불하는 것[漸修]’을 근본으로 표방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차이점이다. 영가스님이 자기가 평생 동안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지은 증도가에 대해 천태종에서 많은 공격을 하였다. 그러나 그 공격도 일시적인 것이 되었고, 그 후 증도가는 도 닦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만고의 표준이 되었다.

 

증도가의 증(證)이란 구경(究竟)을 바로 체득함을 말한다. 깨달음[悟]에는 증오(證悟)와 해오(解悟)의 두 가지가 있는데, 해오란 견해(見解), 지해(知解)를 말하는 것으로, 알기는 분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한 단계이다.

 

증오란 중생의 번뇌망상이 다 끊어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 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니 곧 성불한 것, 견성한 것을 의미한다. 선가나 교가에서 증(證)이라함은 근본적으로 체득한 구경각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뭘 좀 아는 것을 가지고 말하지는 않는다.

 

선가(禪家)에서는 깨달음이란 불립문자, 언어도단인 곳에 있으니 문자에 매달리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나 같이 어리석은 중생은 이런 좋은 문자를 벗 삼아 마음에 낀 때를 조금이나마 벗길 수 있으니 그 모든 것이 다 문자의 힘이로다.

 

승찬대사, 영가스님 같은 고승대덕들이 득도한 내용을 혼자만 갖고 가시지 않고 후대의 미혹한 중생들을 제도할 방편으로 이처럼 훌륭한 문자를 남겼으니 그 보시 무량하구나.  

           

나의 기억력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 좋은 문구하나 오래 기억하기도 힘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희미해지는 것도 천리(天理)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기억력이 너무 좋은 것도 일종의 병이 아니겠는가.

 

시시콜콜한 소시적 이야기, 쓰라리고 아픈 과거지사를 모두 기억해봐야 정신건강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망각은 하느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음이 가까울수록 잘 잊어버려야 한다.

 

즐거움과 괴로움, 사랑과 미움까지 이승에서의 일들은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모두 다 잊어버리고 모두 다 놓아버리고 훌훌 털고 이승에서의 짧은 소풍을 끝내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마지막 길은 산자와 사자(死者)가 허물을 서로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장(場)이다. 잘 잊어버리는 것을 축복이라고 억지로(?) 좋게 생각하긴 해도 너무 잘 잊어버리니 일상생활에선 다소 불편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심명처럼 좋은 글은 머리 속에 넣어두고 가끔 되새김질하면서 삶의 양식으로 사용하고 싶은데 기억력이 나빠 그리 되지 않으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2. 기억하고 싶은 내용

 

승찬대사는 본래 대풍질(大風疾 : 문둥병)이라는 큰 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다 이조 혜가대사(慧可大師)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물었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사옵니다. 화상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하여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노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의지하여 안주해라."

 

"지금 화상(和尙)을 뵈옵고 승보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 법보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도 또한 그러하니 그대는 알겠는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며 마음이 그러하듯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에 혜가대사께서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아시고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바로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보배이다. 구슬 찬(璨)자를 서서 승찬(僧璨)이라 하라."

그해 3월 18일 복광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로부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다.

 

승찬대사는 평생을 은거하여 지내다가 나중에 어린 나이의 도신선사(道信禪師)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뒤에 구족계를 받게 한 후 법을 전하면서...

"나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고 당부 하셨다.

 

승찬스님은 본래 문둥병을 앓았기 때문에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스님을 적두찬(赤頭璨)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이는 대머리의 붉은 살뿐이라는 뜻이다.

 

 

 

 

 

 

신심명(信心銘) - 三祖 僧璨大師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嫌 싫어할 혐, 揀 가릴 간, 揀擇: 취하고 버리는 것, 양변, 변견)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증애심만 떠나면 중도정각(中道正覺))

 

호리유차(毫釐有差)하면   천지현격(天地懸隔)하나니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毫 가는 털 호, 釐 다스릴 리, 수량의 기준단위의 1/100, [分]의 1/10 /간택심, 증애심을 버리는 것이 쉬운듯하지만 매우 어렵다는 뜻)

 

욕득현전(欲得現前)이어든 막존순역(莫存順逆)하라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順逆 : 따름과 거슬림, 곧 좋아함과 싫어함)

 

위순상쟁(違順相爭)이     시위심병(是爲心病)이니

어긋남과 다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불식현지(不識玄旨)하고   도로염정(徒勞念靜)이로다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양변을 여읜 중도의 지극한 도를 모르고 마음만 고요하게 하려는 것을 경계)

 

원동태허(圓同太虛)하야   무흠무여(無欠無餘)어늘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양유취사(良由取捨)하야   소이불여(所以不如)라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취사심으로 맘미암아 여여한 자성(무상대도)를 깨치지 못함)

 

막축유연(莫逐有緣)하고   물주공인(勿住空忍)하라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有緣: 있음의 인연, 곧 세간법, 空忍 : 공의 지혜, 곧 출세간법 / 있음에 머물러도 병이요, 공함에 머물러도 병이라는 말씀)

 

일종평회(一種平懷)하면   민연자진(泯然自盡)이라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泯 다할 민, 一種: 중도, 진여자성(眞如自性) / 말,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고 양변을 떠나면 바로 중도라는 말씀)

 

지동귀지(止動歸止)하면   지갱미동(止更彌動)하나니

움직임을 그쳐 그침에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큰 움직임이 되나니

 

유체양변(唯滯兩邊)이라   영지일종(寧知一種)가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어찌 한 가지임을 알 건가.

 

일종불통(一種不通)하면   양처실공(兩處失功)이니

한 가지(중도)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의 공덕을 잃으리니

 

견유몰유(遣有沒有)요     종공배공(從空背空)이라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遣 보낼(쫓을) 견 / 현상을 버리려는 것도 공을 따르려는 것도 취사심이다. 취사심을 버려야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말씀)

 

다언다려(多言多慮)하면   전불상응(轉不相應)이요

말아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말로 표현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려 하다가는 대도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말씀)

 

절언절려(絶言絶慮)하면   무처불통(無處不通)이라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귀근득지(歸根得旨)요     수조실종(隨照失宗)이니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 종취를 잃나니

(隨照: 자기 생각대로 번뇌망상, 업식망정을 따라가는 것, 자기의 근본자성으로 돌아가면 무상대도를 성취하고 번뇌망상을 따르면 무상대도를 잃는다는 말씀)

 

수유반조(須臾返照)하면   승각전공(勝脚前空)이라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보면 앞의 공함보다 뛰어남이라

(須 모름지기, 잠시 수, 臾 잠깐 유 /잠깐 돌이켜 비춰보고 자성을 바로 깨치면 ‘공했느니 공하지 않느니’하는 것이 다 꿈같은 소리라는 말씀)

 

전공전변(前空轉變)은     개유망견(皆由妄見)이니

앞의 공함이 전변(이렇게 저렿게 변하는 것)함은 모두 망견 때문이니

 

불용구진(不用求眞)이요   유수식견(唯須息見)이라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쉴지니라

 

이견부주(二見不住)하야   신막추심(愼莫追尋)하라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좇아가 찾지 말라 (愼 삼갈 신, 尋 찾을 심) 

 

재유시비(?有是非)하면   분연실심(紛然失心)이니라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 겨우(조금) 재)

 

이유일유(二由一有)니     일역막수(一亦莫守)하라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양변에도 중도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 중도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양변을버리면 융통자재한 경지가 중도라는 말씀)

 

일심불생(一心不生)하면   만법무구(萬法無咎)니라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이 허물 없느니라 (咎:허물 구)

 

무구무법(無咎無法)이요   불생불심(不生不心)이라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고 나지 않으며 마음이랄 것도 없음이라 (허물, 법, 나는 것, 마음 모두가 변인 바, 이것들이 없으면 중도라는 말씀)  

 

능수경멸(能隨境滅)하고   경축능침(境逐能沈)하야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逐 쫓을 축, 能: 주관, 境: 객관 /주관은 객관을 따라 없어지고, 객관은 주관을 쫓아 흔적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니,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것이 남아 있으면 모두가 병통이라는 말씀)

 

경유능경(境由能境)이요   능유경능(能由境能)이니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객관은 주관 때문에, 주관은 객관 때문에 생기는 병통이므로 주관, 객관을 다 버리라는 말씀)

 

욕지양단(欲知兩段)인댄   원시일공(元是一空)이라

양단을 알고자 할진댄 원래 하나의 공이니라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두 가지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전체가 하나로 공하였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

 

일공동양(一空同兩)하야   제함만상(齊含萬象)하야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함께 다 포함하여

(含 머금을 함, 遮 막을차 / 둘을 버리고 하나가 되며 그 하나가 바로 둘이라는 뜻.

 

변견을 떠나 자성을 깨치고 중도를 성취하면 쌍차쌍조(雙遮雙照: 양단을 부정하고 양단을 긍정함)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되어 삼라만상과 항사묘용이 원만구족하게 된다는 말씀. 공(空)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이 아니라 일체가 원만구족한 것(일체 삼라만상)을 뜻함)

 

불견정추(不見精? )어니   영유편당(寧有偏黨)가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 거칠 추 / 모든 상이 다 떨어져 원융무애하고 대자재한 것을 말한 것임))

 

대도체관(大道體寬)하야   무이무난(無易無難)이어늘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원만구족하여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소견호의(小見狐疑)하야   전급전지(轉急轉遲)로다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둘수록 더욱 더디어지도다

(狐 여우 호, 轉 구를 전 /대도를 성취하려고 조그마한 견해로 여우처럼 의심하며 급하게 서둘면 잔대로 더욱 더디어 진다는 말씀)

 

집지실도(執之失度)라     필입사로(必入邪路)요

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방지자연(放之自然)이니   체무거주(體無去住)라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임성합도(任性合道)하야   소요절뇌(逍遙絶惱)하고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逍遙 : 한가롭고 자재한 기상, 일체 번뇌망상이 다 떨어진 것을 뜻함)

 

계념괴진(繫念乖眞)하야   혼침불호(昏沈不好)니라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繫 맬 계, 乖 어그러질 괴, 昏 어두울 혼 /생각에 얽매여도 병, 아무것도 모르는멍텅구리처럼 앉아 있는 것[혼침]도 병이므로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불호노신(不好勞神)커든   하용소친(何用疎親)가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건가

(성김이란 세간법과 악을 버림이고, 친함이란 세간법과 악을 취한다는 뜻.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려 하지도 말고, 세간법을 버리고 불법을 취하려고 하지도 말라. 즉양변, 변견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않을 때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말씀) 

 

욕취일승(欲趣一乘)이어든 물오육진(勿惡六塵)하라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一乘: 무상대도, 무상대도를 성취하려거든 객관의 대상인 육진을 버리지 말며 미워하지 말라는 뜻. 중생이 집착심을 가지면 육진이 되나, 눈 밝은 사람에게는 진여대용(眞如大用)의 육용(六用)이 되는 바, 우리가 육진을 버리고 어찌 무상대도를 주할 수 있겠냐는 말씀)

 

[참고] 백팔번뇌 (百八煩惱)

 

중생의 108가지 번뇌. 백팔번뇌의 산출법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눈·귀·코·혀·피부·뜻의 육근(六根)색깔·소리·냄새·맛·감각·법(法)의 육진(六塵)이 서로 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에 대한 산출법이다. 육근이 육진을 접할 때 각각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平等) 3가지 인식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의 십팔번뇌가 된다. 또 이 호·오·평등에 의거해 낙수(樂受)·고수(苦受)·사수(捨受)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 삼수(三受)를 육근과 육진관계에서 생기는 육식(六識)에 곱하면 역시 십팔번뇌가 성립된다. 이 36종의 번뇌에 전생·금생·내생의 3세를 곱하면 108이 되어 백팔번뇌의 실수를 얻는다.

 

육진불오(六塵不惡)하면   환동정각(還同正覺)이라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라

 

지자무위(智者無爲)어늘   우인자박(愚人自縛)이로다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無爲 :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실제는 함이 없는 것을 찾아 볼 수도 없고 중도를 깨쳐도 중도도 찾아볼 수 없는 구경의 상태임) 

 

법무이법(法無異法)이어늘 망자애착(妄自愛着)하야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법이라고 특별한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바, 중생이니 부처니 마구니니 선禪)이니 교(敎)니 하는 분별심, 애착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

 

장심용심(將心用心)하니   기비대착(豈 非大錯)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豈 어찌 기 /성불하려고, 참선하려고, 경을 배우려고 마음으로 애를 쓰면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말씀)

 

미생적란(迷生寂亂)이요   오무호오(悟無好惡)어니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일체이변(一切二邊)은     양유짐작(良由 斟 酌)이로다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로다

(斟 술 따를[헤아릴, 짐작할] 짐, 酌 따를[짐작할] 작 )

 

몽환공화(夢幻空華)를     하로파착(何勞把捉)가

꿈 속의 허깨비와 헛꽃(일체의 변견)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捉 잡을 착)

 

득실시비(得失是非)를     일시방각(一時放却)하라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안약불수(眼若不睡)하면   제몽자제(諸夢自除)요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심약불이(心若不異)하면   만법일여(萬法一如)니라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같느니라

 

일여체현(一如體玄)하야   올이망연(兀爾忘緣)하야

한결같음은 본체가 현묘하여 올연히 인연을 잊어서

(兀 우뚝할 올, 爾 너 이 / 일체 만법이 여여하다는 것은 그 본체가 현묘하기 때문임. 현묘한 본체는 석가가 아무리 알았다 해도 실재로는 알 수 없으며, 달마가 전했다고 해도 전할 수가 없는 것임. 兀爾忘緣: 올연히 생멸의 인연을 다 잊음)  

 

만법제관(萬法齊觀)에     귀복자연(歸復自然)이니라

일체만법에 통달하면 자성청정심으로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민기소이(泯其所以)하야   불가방비(不可方比)라

그 까닭을 없이 하면 견주어 비할 바가 없음이라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이므로 그 이유는 말할 수 없으므로 비교해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수 없다는 말씀)

 

지동무동(止動無動)이요   동지무지(動止無止)니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양기불성(兩旣不成)이라   일하유이(一何有爾)아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구경궁극(究竟窮極)하야   부존궤칙(不存軌則)이요

구경하고 궁극하여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軌 길[도로, 법도]궤)

(양변을 완전히 떠나서 중도를 성취하면 거기서는 중도라 할 것도 찾아 볼 수 없는데 이것이 구경하고 궁극한 법으로 어떠한 정해진 법칙도 없다는 말씀)

 

계심평등(契心平等)하야   소작구식(所作俱息)이로다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俱 함께 구)

(마음이 일체에 평등하면 차별 망견이 없이 여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일체 변견을 다 쉬게 된다는 말씀)

 

호의정진(狐疑淨盡)하면   정신조직(正信調直)이라

여우같은 의심[변견, 망견]이 다하여 맑아지면 바른 믿음이 곧게 서게 되고

(正信 : 신(信),해(解),오(悟),증(證)의 전체를 통한 데서 나오는 믿음이며, 처음 발심하는 신심(信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일체불류(一切不留)하야   무가기억(無可記憶)이로다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기억할 아무 것도 없도다

 

허명자조(虛明自照)하야   불로심력(不勞心力)이라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비사량처(非思量處)라     식정난측(識情難測)이로다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의식과 망정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대도는 생각으로는 알 수 없고 깨쳐야 안다는 말씀)

 

진여법계(眞如法界)엔     무타무자(無他無自)라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요급상응(要急相應)하면   유언불이(唯言不二)로다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둘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진여법계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는 앞 구절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세계라는 뜻이 아닌 대자유의 세계를 의미함. 3차원의 차별의 세계를 완전히 초월하면 4차원의 부사의경계(不思議境界), 진여법계가 나타남. 진여법계는 나와 남이 둘 아니며, 유[있음]과 무[없음]도 둘이 아닌 상대세계를 초월한 절대세계임

 

불이개동(不二皆同)하여   무불포용(無不包容)하니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시방지자(十方智者)가     개입차종(皆入此宗)이라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종취[진여의 세계]로 들어 옴이라

 

종비촉연(宗非促延)이니   일념만년(一念萬年)이요

종취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 만년이요(促 재촉할[절박할,빠를] 촉)

 

무재부재(無在不在)하야   시방목전(十方目前)이로다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 앞이로다

(十方 : 먼 곳 / 해탈하여 둘 아닌 진여세계로 들어가면 시간적으로 길고 짧음이, 공간적으로 멀고 가까움이 없어서 한 생각이 만년이고, 만년이 한 생각이며,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어서 시방이 목전이고 목전이 시방이라는 뜻)

 

극소동대(極小同大)하야   망절경계(忘絶境界)하고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극대동소(極大同小)하야   불견변표(不見邊表)라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유즉시무(有卽是無)요     무즉시유(無卽是有)니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약불여차(若不如此)인댄   불필수수(不必須守)니라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일즉일체(一卽一切)요     일체즉일(一切卽一)이니

하나가 곧 일체[전체]요 일체[전체]가 곧 하나이니

 

단능여시(但能如是)하면   하려불필(何慮不畢)가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신심불이(信心不二)요     불이신심(不二信心)이니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도단(言語道斷)하야   비거래금(非去來今)이로다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로다

(깊고 오묘한 도리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 없고,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의 구분이 없이 무애자재한 진여법계가 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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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證道歌

 

영가 현각(永嘉 玄覺, 647~713)

 

 

君不見 (군불견)

그대 보지못하였는가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으니

(無爲: 眞如, 絶學 : 계(戒),정(定),혜(慧) 삼학의 수행을 다 마쳐 더 배울 것이 없는 사람, 絶學無爲閑道人: 중도를 깨친 사람, 不除妄想不求眞 : 망상이 일어나도 이대로 참됨이라는 말이 아님, 참됨과 망상 양변을 다 버린 중도를 말함)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무명실성즉불성 환화공신즉법신)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無明은 생멸법으로 무명 그대로가 불성인 것이 아니라 무명의 본 성품이 불성이라는 뜻, 앞단에서 참됨(眞)과 망(妄)을 쌍차(雙遮; 부정)하고 나서, 이 단에서는 불성(佛性)과 법신(法身)을 쌍조(雙照: 긍정), 쌍조는 서로 즉(卽)하는 것 근본이니 모든 것이 다 통함을 말함)

 

法身覺了無一物 本源自性天眞佛 (법신각료무일물 본원자성천진불)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법신이라고 하여 무슨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깨치고 나면 한 물건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고 본래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고 하여 거기에는 대광명이 있음을 뜻함)

 

五陰浮雲空去來 三毒水泡虛出沒 (오음부운공거래 삼독수포허출몰)

오음의 뜬 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삼독과 오음은 아직 중도를 깨치기 전의 생멸의 쪽 즉 중생 쪽에서 하는 말로 법성과 천진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음. 오음과 삼독이 있다면 깨친 것이 아님)

 

證實相無人法 刹那滅却阿鼻業 (증실상무인법 찰나멸각아비업)

실상을 증득하여 인,법이 없으니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림이라

(證實相無人法 : 실상을 증하면 주관과 객관이 없어져서 人과 法의 양변을 여읜 중도실상을 증(證)한 것임. 누구든지 인과 법이 떨어진 곳을 알고 실상을 알려면 증오(證悟)해야지 해오(解悟)로써는 도저히 모른다는 뜻. 阿鼻業: 아비는 간단(間斷)이 없다, 쉴 사이 없다는 뜻으로 아비지옥, 무간지옥(無間地獄)을 가르킴)

 

若將妄語?衆生 自招拔舌塵沙劫 (약장망어광중생 자초발설진사겁)

거짓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진사겁토록 발설지옥 보를 스스로 부르리로다

(선종에서는 人과 法, 즉 주관과 객관이 떨어지면 찰나간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고 하지만 당시로서는 선에 대한 인식이 낮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차원 높은 이야기라서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한 말) 

 

頓覺了如來禪 六度萬行體中圓 (돈각료여래선 육도만행체중원)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육도만행이 본체 속에 원만함이라

(六度 : 육바라밀, 바라밀(波羅蜜)은 도(度), 도피안(到彼岸)이라고 번역하기도 함, 육도란 도피안에 이르는 6가지 방법 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말함. 萬行 : 육바라밀을 실천 궁행하여 보살도를 이루는 것))

 

夢裏明明有六趣覺後空空無大千 (몽리명명유육취 각후공공무대천)

꿈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깨친 후엔 비고 비어 대천세계가 없도다

(六趣 : 육도(六道)로서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을 말하니 중생이 지은 업에 따라 윤회 전생(轉生)하는 세계의 모양. 천당, 지옥, 부처, 중생, 하나님 하는 것은 모두 꿈 속에서 하는 소리지 꿈을 바로 깨면 부처도 조사도 중생도 하나님도 외도도 찾아볼 수 없음

 

無罪福無損益寂滅性中莫問覓 (무죄복무손익 적멸성중막문멱)

죄와 복이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나니 적멸한 성품가운데서 묻고 찾지 말라

(여래선을 확철히 깨치면 모든 것이 원만구족하므로 죄악, 생사, 손익 등이 없음)

 

比來塵鏡未曾磨今日分明須剖析 (비래진경미증마 금일분명수부석)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더니 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塵鏡 : 때 낀 거울, 곧 중생의 마음)

 

誰無念誰無生若實無生無不生 (수무념수무생 약실무생무불생)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남이 없는가 진실로 남이 없으면 나지 않음도 없나니

 

喚取機關木人問 求佛施功早晩成 (환취기관목인문 구불시공조만성)

기관목인을 불러 붙들고 물어보라 부처 구하고 공 베품을 조만간 이루리다

(機關木人 : 나무 인형[장승]을 조종하는 사람. 나무장승이 노래 부르고 돌 여자가 춤을 출 때 그 때가 불법을 완전히 성취한 때라는 말씀)

 

放四大莫把捉寂滅性中隨飮啄 (방사대막파착 적멸성중수음탁)

사대를 놓아 버려 붙잡지 말고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사대(地,水,火,風)와 오온(色,受,想,行,識)을 다 놓아버리고 적멸한 성품가운데서 자유자래로 활동하라는 말씀)

 

諸行無常一切空卽是如來大圓覺 (제행무상일체공 즉시여래대원각)

모든 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하니 이는 곧 여래의 대원각이로다

 

決定說表眞乘 有人不肯任情徵 (결정설표진승 유인불긍임정징)

결정된 말씀과 참됨을 나타낸 법을 어떤 사람은 긍정치 않고 정에 따라 헤아림이라

 

直截根源佛所印摘葉尋枝我不能 (직절근원불소인 적엽심지아불능)

근원을 바로 끊음은 부처님이 인가하신 바요 잎 따고 가지 찾음은 내 할 일 아니다 

 

摩尼珠人不識如來藏裏親收得 (마니주인불식 여래장리친수득)

마니주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여래장 속에 몸소 거두어 들임이라

(摩尼 : 인도어로 여의(如意)라는 뜻, 여래장 : 진여성불)

 

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육반신용공불공 일과원광색비색)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않음이요 한 덩이 뚜렷한 빛은 색이면서 색아니로다 (마니주를 보지 못하면 육근이 도적이지만 진여성불 가운데 마니주를 찾으니 육근(六根: 眼,耳,鼻,舌,身,意) 이대로가 다 신통이며 진여대용이라는 뜻)

 

淨五眼得五力唯證乃知難可測 (정오안득오력 유증내지난가측)

오안을 깨끗이 하여 오력을 얻음은 증득해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도다

(五眼 : 육(肉)안, 천(天)안, 혜(慧)안, 법(法)안, 불(佛)안, 五力 : 신(信)력, 정진(精進)력, 염(念)력, 정(定)력, 혜(慧)력)

 

鏡裏看形見不難 水中捉月爭拈得 (경리간형견불난 수중착월쟁염득)

거울 속의 형상 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물속의 달을 붙들려 하니 어떻게 잡을 수 있으랴 (물속에 비친 달 : 분별망상)

 

常獨行常獨步 達者同遊涅槃路 (상독행상독보 달자동유열반로)

항상 홀로 다니고 항상 홀로 걷나니 통달한 이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도다

 

調古神淸風自高貌悴骨剛人不顧 (조고신청풍자고 모췌골강인불고)

옛스러운 곡조 신기 맑으며 풍채 스스로 드높음이여 초췌한 모습 앙상한 뼈 사람들돌아보지 않는다 (모양이 초쵀 : 일체망상이 다 끊어짐, 뼈가 단단함 : 금강반야가 현전한 진여본성의 뼈를 말함)

 

窮釋子口稱貧實是身貧道不貧 (궁석자구칭빈 실시신빈도불빈)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하나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중생은 8만 4천석이나 되는 온갖 번뇌가 창고마다 가득하니 살림이 부자이나 도를 깨친 이는 살림은 가난하나 도는 부자라는 말씀)

 

貧則身常披縷褐道則心臧臟無價珍 (빈즉신상피루갈 도즉심장무가진)

가난한 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보를 감추었도다

 

無價珍用無盡 利物應時終不吝 (무가진용무진 이물응시종불인)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중생 이익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三身四智體中圓八解六通心地印 (삼신사지체중원 팔해육통심지인)

삼신, 사지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팔해탈, 육신통은 마음 땅의 인이로다

(三身(法身, 報身, 應身 또는 化身) 四智(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성취하면 부처라고 함. 육신통 : 천안(天眼)통, 천이(天耳)통, 신족(神足)통, 숙명(宿命)통, 타심(他心)통, 누진(漏盡)통)

 

上士一決一切了 中下多聞多不信 (상사일결일체료 중하다문다불신)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치고 중,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는도다

 

但自懷中解垢衣 誰能向外誇精進 (단자회중해구의 수능향외과정진)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 벗을 뿐 위라서 밖으로 정진을 자랑할건가

 

從他謗任他非把火燒天徒自疲 (종타방임타비 파화소천도자피)

남의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방에 맡겨두라. 불로 하늘을 태우려하나 공연히 자신만 피로하리로다

 

我聞恰似飮甘露 銷融頓入不思議 (아문흡사음감로 소융돈입부사의)

내 듣기엔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서 녹아서 단박에 부사의해탈경에 들어가도다

 

觀惡言是功德此則成吾善知識 (관악언시공덕 차즉성오선지식)

나쁜 말을 관찰함이 바로 공덕이니 이것이 나에게는 선지식이 됨이라

(상대가 비방하거나 욕을 하고 독을 주어도 내가 감로수로 받아 마시면 그것이 살이 되고 뼈가 되어서 부처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는 말씀)

 

不因?謗起怨親 何表無生慈忍力 (불인산방기원친 하표무생자인력)

비방따라 원망과 친한 마음 일지 않으면 하필이면 남이 없는 자비 인용의 힘(대자대비의 힘) 나타내 무엇할건가

 

宗亦通說逆通定慧圓明不滯空 (종역통설역통 정혜원명불체공)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여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공에 응체하지 않는도다 (不滯空 :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 즉, 중생이 집착하는 있음(有)을 벗어나면 공병(空病)이 생기게 되는데 이 공에 머물러도 안된다는 말씀)

 

非但我今獨達了河沙諸佛體皆同 (비단아금독달료 하사제불체개동)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수 많은 모든 부처님 본체는 모두 같도다

 

獅子吼無畏說百獸聞之皆腦裂 (사자후무외설 백수문지개뇌열)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뭇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獅子吼 : 중도를 깨쳐 정등각한 사람의 법문을 ‘사자후’ 또는 ‘무외설’이라고 함. 百獸聞之皆腦裂 : 일체 중생들의 모든 무명이 끊어져 성불하게 된다는 말씀)

 

香象奔波失却威天龍寂聽生欣悅 (향상분파실각위 천룡적청생흔열)

향상은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고 천룡은 조용히 듣고서 희열을 내는도다

(香象 : 코끼리, 여기서는 성문, 연각과 같은 이승(二乘)을 비유, 天龍 : 부처님이나 대보살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나 천상인, 용왕 같이 무애자재한 사람들을 비유함. 성문, 연각 같은 자들은 지위는 좀 높지만 사자후를 들으면 위엄을 잃고 망연자실 정신이 없지만 천룡같은 자들은 사자후를 듣고 중도에 들어온다는 말씀)

 

遊江海涉山川尋師訪道爲參禪 (유강해섭산천 심사방도위참선)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스승 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自從認得曹溪路了知生死不相干 (자종인득조계로 요지생사불상간)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부터는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行亦禪坐亦禪語默動靜體安然 (행역선좌역선 어묵동정체안연)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니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암함이라

 

縱遇鋒刀常坦坦 假饒毒藥也閑閑 (종우봉도상탄탄 가요독약야한한)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다

(깨치면 손익이 없고 생멸이 없는 경계이므로 독약이나 창칼에도 태연하다는 말씀)

 

我師得見燃燈佛多劫曾爲忍辱僊 (아사득견연등불 다겁증위인욕선)

우리 스승 부처님께서 연등불을 뵈옵고 다겁토록 인욕선인 되셨도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 석가모니가 인행(因行)시 연등불이 마침 진흙 위를 지나가자 자기 머리를 풀어 진흙이 묻지 않게 한 적이 있었는데 머리 푼 공양의 공덕으로 연등불이 수기를 주셨는데 “네가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하였음)

 

幾廻生幾廻死生死悠悠無定止 (기회생기회사 생사유유무정지)

몇 번을 태어나고 몇 번이나 죽었던가. 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도다

 

自從頓悟了無生於諸榮辱何憂喜 (자종돈오료무생 어제영욕하우희)

단박에 깨쳐 남이 없음을 요달하고부터는 모든 영욕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랴

 

入深山住蘭若岑?幽邃長松下 (입심산주란야 잠음유수장송하)

깊은 산에 들어가 고요한 곳에 머무니 높은 산 그윽하여 낙락장송 아래로다

 

優遊靜坐野僧家 ?寂安居實蕭灑 (우유정좌야승가 격적안거실소쇄)

한가히 노닐며 절집에 조용히 앉았으니 고요한 안거 참으로 소쇄하도다

 

覺卽了不施功一切有爲法不同 (각즉료불시공 일체유위법부동)

깨친즉 그만이요 공 베풀지 않나니 모든 유위법과 같지 않도다

(환자는 병이 다 나은 사람이 아니듯이 선가에서는 십지(十地), 등각(等覺)도 환자로 봄. 깨친 자는 무생법인을 증득해서 중도를 정등각한 것을 말함. 즉 돈오(頓悟)했으므로 점수(漸修)할 것이 없는 상태임)

 

住相布施生天福猶如仰箭射虛空 (주상보시생천복 유여앙전사허공)

모양에 머무는 보시는 하늘에 나는 복이나 마치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住相布施 : 남에게 쌀이나 돈, 옷가지 등을 주는 보시, 모양에 머무는 보시는 천상에 가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니, 꼭 천상에 야만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과보로서 좋은 행복을 누리면 그것이 천상락이라는 말씀)

 

勢力盡箭還墜招得來生不如意 (세력진전환추 초득래생불여의)

세력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내생에 뜻과 같지 않는 과보를 부르리로다 (모양에 머무는 보시는 한정이 있으므로 영원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는 말씀. 모양에 머물러 하는 보시는 삼생의 원수 : 금생(今生)에는 모양에 집착한 복을 닦느라고 공부를 못하고, 내생에는 금생에 닦은 복을 받느라고 공부를 못하고, 내래생(來來生)에는 복이 다하면 타락하여 고를 받느라고 공부를 못하므로 결국 모양에 머무는 보시는 삼생의 원수라는 말씀)

 

爭似無爲實相門一超直入如來地 (쟁사무위실상문 일초직입여래지)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에 한번 뛰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감과 같으리오

(一超直入如來地 : 교가(敎家)에서는 삼아승지겁을 거쳐서 육도만행을 닦아 구경각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선가에서는 한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들어간다고 하니 천태종이 가장 반대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임. 무지한 자가 바로 깨쳐 여래지에는 들어가기는 말처럼 쉽지가 않으니 깨침을 위한 공부(닦음)가 필요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국은 선가나 교가의 주장이 비슷한 것 아닌가?)

 

但得本莫愁末如淨瑠璃含寶月 (단득본막수말 여정유리함보월)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선종에서 깨쳤다는 것은 구경각을 성취한 것, 즉 돈오이지 중간의 해오가 아님)

 

旣能解此如意珠自利利他終不竭 (기능해차여의주 자리리타종불갈)

이미 이 여의주를 알았으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다함이 없도다

 

江月照松風吹永夜淸?何所爲 (강월조송풍취 영야청소하소위)

강에 달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부니 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을 건가

 

佛性戒珠心地印霧露雲霞體上衣 (불성계주심지인 무로운하체상의)

불성계의 구슬은 마음의 인이요.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佛性戒珠: 안으로 자성을 표현하는 말, 霧露雲霞體上衣: 밖으로 일체가 진여의 발현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

 

降龍鉢解虎錫兩?金環鳴歷歷 (항룡발해호석 양고금환명역력)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 싸움 말린 석장이여 양쪽 쇠고리는 역력히 울리는도다

(降龍鉢解虎錫: 육조스님이 큰 용(神龍)을 작은 발우 속에 들어가게 하여 제도하고, 승조스님이 육환장으로 범 싸움을 말렸다는 이야기, 석장(錫杖): 스님들이 짚고 다니는 나무 지팡이, 육환장(六環杖), 불교 진리 전체 즉 법을 의미함)

 

不是標形虛事持如來寶杖親?跡 (불시표형허사지 여래보장친종적)

이는 모양을 내려 헛트로 지님이 아니요. 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이로다 (不是標形虛事持: 육환장을 짚고 다니는 것은 모양(폼)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

 

不求眞不斷妄了知二法空無相 (불구진부단망 요지이법공무상)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됨도 끊지 않나니 두 법이 공하여 모양 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無相無空無不空卽是如來眞實相 (무상무공무불공 즉시여래진실상)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음이여.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心鏡明鑑無碍廓然瑩徹周沙界 (심경명감무애 확연영철주사계)

마음의 거울 밝아서 비침이 걸림 없으니 확연히 비치어 항사세계에 두루 사무치도다

 

萬象森羅影現中一顆圓明非內外 (만상삼라영현중 일과원명비내외)

만상삼라의 그림자 그 가운데 나타나고 한 덩이 두렷이 밝음은 안과 밖이 아니로다

 

豁達空撥因果茫茫蕩蕩招殃禍 (활달공발인과 망망탕탕초앙화)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하면 아득하고 끝없이 양화를 부르리로다

(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즉 공 맛 조금 보았다고 인과가 없다고 날뛰지 말라고 경계하는 말씀)

 

棄有著空病亦然還如避溺而投火 (기유착공병역연 환여피익이투화)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면 그것도 같은 병이리니, 마치 물을 피하다가 불에 띄어드는 것과 같도다

 

捨妄心取眞理取捨之心成巧僞 (사망심취진리 취사지심성교위)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취사하는 마음이 교묘히 거짓을 이루로다

(진리나 망상을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생기면 영원토록 중도를 모르고 불법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말씀)

 

學人不了用修行眞成認賊將爲子 (학인불료용수행 진성인적장위자)

배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수행하나니 참으로 도적을 아들로 삼는 짓이로다

(學人不了用修行: 망상을 버리고 진리를 취하려고 잘못 공부한다는 말씀)

 

損法財滅功德莫不由斯心意識 (손법재멸공덕 막불유사심의식)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심,의,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

(자성을 깨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심,의,식의 구름이 진여 본성을 덮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므로 이 구름을 걷어야 함. 선종에서의 공부라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분별의식인 제6 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중간의 식인 제7 말라식과 제8 아뢰야식의 무기심까지 버려야 함.

 

是以禪門了却心頓入無生知見力 (시이선문료각심 돈입무생지견력)

그러므로 선문에선 마음을 물리치고 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가도다

(마음이란 제팔 아뢰야를 말하는 것인데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을 완전히 끊어버리면 제칠 말라식과 제육 의식은 자연히 끊어져 버리는 것이므로, 마치 나무 뿌리를 뽑아버리면 가지나 잎은 저절로 말라 죽어 버리는 것과 같다.) 

 

大丈夫秉慧劍般若鋒兮金剛? (대장부병혜검 반야봉혜금강염)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非但能?外道心 早曾落却天魔膽 (비단능최외도심 조증락각천마담)

외도의 마음만 꺽을 뿐 아니요. 일찍이 천마(천상의 마구니)의 간담을 떨어뜨렸도다

 

震法雷擊法鼓布慈雲兮灑甘露 (진법뢰격법고 포자운혜쇄감로)

법의 우뢰 진동하고 법고를 두드림이여 자비의 구름을 펴고 감로수를 뿌리는도다

 

龍象蹴踏潤無邊三乘五性皆惺悟 (용상축답윤무변 삼승오성개성오)

용상이 차고 밝음에 윤택함이 그지 없으니 삼승과 오성이 모두 깨치는도다

(龍象: 용과 코끼리, 즉 중생중 삼현(三賢), 십성(十聖) 등 훌륭한 사람을 비유한 말, 三乘五性皆惺悟: 일체 중생이 다 깨쳤다는 말, 三乘: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五性: 범부성(凡夫性); 조금도 미혹을 끊지 못한 사람, 이승성(二乘性); 성문, 연각의 이승, 보살성(菩薩性); 육도만행을 닦아 성불한 사람, 부정성(不定性); 범부라고도 이승이라고도 보살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 외도성(外道性); 외도의 삿된 말을 믿고 아직 불교의 바른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 

 

雪山肥?更無雜 純出醍?我常納 (설산비니갱무잡 순출제호아상납)

설산의 비니초는 다시 잡됨이 없어 순수한 제호를 내니 나 항상 받는도다

(雪山肥?: 희말라야산의 비니초(천상천하에서 최고로 맛있고 부드러운 풀), 진여대용을 비유, 醍?: 맛있는 치즈의 일종, 여기서는 진여자성을 의미함)

 

一性圓通一切性一法遍含一切法 (일성원통일체성 일법변함일체법)

한 성품이 두렷하게 모든 성품에 통하고, 한 법이 두루하여 모든 법을 포함하나니

 

一月普現一切水一切水月一月攝 (일월보현일체수 일체수월일월섭)

한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모든 물의 달을 한 달이 포섭하도다

 

諸佛法身入我性我性還共如來合 (제불법신입아성 아성환공여래합)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나의 성품이 다시 함께 여래와 합치하도다

 

一地具足一切地非色非心非行業 (일지구족일체지 비색비심비행업)

한 지위에 모든 지위 구족하니 색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행업도 아니로다

 

彈指圓成八萬門刹那滅却三祗劫 (탄지원성팔만문 찰나멸각삼지겁)

손가락 퉁기는 사이에 팔만법문 원만히 이루고, 철나에 삼아승지겁을 없애버리도다

 

一切數句非數句與吾靈覺何交涉 (일체수구비수구 여오영각하교섭)

일체의 수구와 수구 아님이여 나의 신령한 깨침과 무슨 상관이 있을건가

(數句非數句: 능가경에 나오는 말로 여러 가지 불교의 법수(法數)를 많이 설명하고 있음, 수구비수구란 차별법상을 나열한 것으로 그것은 중생제도를 위해 부처님이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지 실지 깨친 사람에게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씀)

 

不可毁不可讚體若虛空勿涯岸 (불가훼불가찬 체약허공물애안)

훼방할 수도 칭찬할 수도 없음이여 본체가 허공과 같아 한계가 없도다

(자성을 바로 깨치면 칭찬하려해도 칭찬할 수 없고, 마구니가 욕할 수도 없는데 그것은 허공과 같아 명상이 다 떨어지고 시간과 공간이 끊어져 한계가 없기 때문임)

 

不離當處常湛然覓則知君不可見 (불리당처상담연 멱즉지군불가견)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니 찾은 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도다

(不離當處: 진리광명은 우리의 의식주, 즉 일상생활 가운데 있다는 말씀, 湛然: 청정하여 때가 없는 것)

 

取不得捨不得不可得中只?得 (취부득사부득 불가득중지마득)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얻을 뿐이로다

 

默時說說時默大施門開無壅塞 (묵시설설시묵 대시문개무옹색)

말 없을 때 말하고 말할 때 말 없음이여 크게 베푸는 문을 여니 옹색함이 없도다

(죽음 가운데 삶이 있고 삶 가운데 죽음이 있는 것과 같이, 움직임 가운데 머뭄이 있고 머무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서 움직임이 머무름이고 머무름이 움직임이며, 진(眞)이 곧 가(假)요 가가 곧 진임. 즉 묵과 설이 통하는 동시에 선과 악이 통하고 부처와 마구니가 통한다는 말씀)

 

有人問我解何宗報道摩訶般若力 (유인문아해하종 보도마하반야력)

누가 나에게 무슨 종취를 아느냐고 물으면 마하반야의 힘이라고 대답해 주어라

(마하반야: 대지혜, 일체종지(一切種智), 구경각)

 

或是或非人不識逆行順行天莫測 (혹시혹비인불식 역행순행천막측)

혹은 옳고 혹은 그릇됨을 사람이 알지 못하고 역행, 순행은 하늘도 헤아리지 못하도다

(或是或非人不識: 옳다해도 좋고 그르다 해도 좋고, 옳음이 곧 그름이요 그름이 곧 옳음으로서 무애자재함. 분명히 알 수 없는 가운데 혹은 옳기도 하고 혹은 그르기도 함. 逆行順行天莫測: 역행을 하든지 순행을 하든 부처도 모르고 조사도 모르고 하늘도 사람도 모른다는 말씀)

 

吾早曾經多劫修不是等閑相?惑 (오조증경다겁수 불시등한상광혹)

나는 일찍이 많은 겁 지나며 수행했으니 부질없이 서로 속여 미혹케 함이 아니로다

(무상대도를 깨치기 위해서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함을 나타냄)

 

建法幢立宗旨明明佛勅曹溪是 (건법당입종지 명명불칙조계시)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를 일으킴이여 밝고 밝은 부처님 법 조계에서 이었도다

 

第一迦葉首傳燈二十八代西天記 (제일가섭수전등 이십팔대서천기)

첫 번째로 가섭이 맨 먼저 등불을 전하니 이십팔대는 서천(인도)의 기록이로다

 

法東流入此土菩提達磨爲初祖 (법동류입차토 보리달마위초조)

법이 동쪽에서 흘러 이 땅에 들어와서는 보리달마가 첫 조사 되었도다

 

六代傳衣天下聞後人得道何窮數 (육대전의천하문 후인득도하궁수)

육대로 옷 전한 일 천하에 소문났고 뒷 사람이 도 얻음을 어찌 다 헤아리랴

(가사: 인도에서는 가섭이후 28대로 전해 내려왔고, 육조 이후 6대로 전했으나 이후에는 모든 믿음이 다 갖추어져 옷을 전할 필요가 없어 가사를 전하지 않음)

 

眞不立妄本空有無俱遣不空空 (진불립망본공 유무구견불공공)

참됨도 서지 못하고 망도 본래 공함이여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니 공하지 않고 공하도다

 

二十空門元不著一性如來體自同 (이십공문원불착 일성여래체자동)

이십공문에 원래 집착하지 않으니 한 성품 여래의 본체와 저절로 같도다

 

心是根法是塵兩種猶如鏡上痕 (심시근법시진 양종유여경상흔)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줄은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음이라

(마음: 주관, 법: 객관, 주관과 객관, 선과 악, 유와 무, 중생과 부처 등 변견을 다 버려야 중도실상을 증득할 수 있다는 말씀)

 

痕垢盡除光始現心法雙亡性則眞 (흔구진제광시현 심법쌍망성즉진)

흔적인 때 다하면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마음과 법 둘 다 없어지면 성품이 곧 참됨이로다 (양변에 머물러 있음이 거울에 낀 먼지나 흔적 같으니 이 먼지와 때를 닦아 내면 광녕이 드러난다는 뜻)

 

嗟末法惡時世衆生薄福難調制 (차말법오시세 중생박복난조제)

말법을 슬퍼하고 시세를 미워하노니 중생의 복 엷어 조복받기 어렵도다

(자성의 본체에 있어서는 말법도 없고 시세도 없어 불생불멸, 부증불감(不增不減)이나 중생들이 이 법을 믿지 않고 반대만 하여 무한 고를 받는 것이 안타까워 영가스님이 방편가설로 말씀하신 것임)

 

去聖遠兮邪見深魔强法弱多怨害 (거성원혜사견심 마강법약다원해)

성인 가신지 오래고 사견이 깊어짐에 마구니는 강하고 법은 약하여 원해가 많도다

 

聞說如來頓敎門恨不滅除令瓦碎 (문설여래돈교문 한불멸제령와쇄)

여래의 돈교문 설함을 듣고서는 부숴 없애버리지 못함을 한탄하는도다

 

作在心殃在身不須怨訴更尤人 (작재심앙재신 불수원소갱우인)

지음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모름지기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치 말지어다

 

欲得不招無間業莫謗如來正法輪 (욕득불초무간업 막방여래정법륜)

무간지옥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거든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아라

 

?檀林無雜樹 鬱密深沈獅子住 (전단림무잡수 울밀심침사자주)

전단향 나무 숲에는 잡나무가 없나니 울창하고 깊숙하여 사자가 머무는도다

(?檀林: ‘설산의 비니초,와 같은 말, 진여자성을 깨쳐 일체의 망상이 다 떨어진 곳)

 

境靜林閒獨自遊走獸飛禽皆遠去 (경정림한독자유 주수비금개원거)

경계 고요하고 숲 한적하여 홀로 노니노니 길 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달아나는도다

 

師子兒衆隨後三歲卽能大哮吼 (사자아중수후 삼세즉능대효후)

사자 새끼를 사자 무리가 뒤따름이여 세 살에 곧 크게 소리 치는도다

(진여본성을 바로 깨치면 조그마한 어린애 같지만 깨친 그대로 사자여서 크게 소리를 칠 것 같으면 천지가 무너지고 사해가 뒤집힌다는 뜻)

 

若是野干逐法王百年妖怪虛開口 (약시야간축법왕 백년요괴허개구)

여우가 법왕을 쫓으려 한다면 백년 묵은 요괴가 헛되이 입만 엶이로다

(여우: 망정, 법왕: 사자, 곧 진여자성)

 

圓頓敎勿人情有疑不決直須爭 (원돈교물인정 유의불결직수쟁)

원돈교는 인정이 없나니 의심있어 결정치 못하거든 바로 다툴지어다

(圓頓敎: 圓이란 일체가 원만 구족하다는 뜻으로 공간적인 것을 말하고, 頓이란 눈 깜작할 사이란 뜻으로 시간적인 것을 말함. 여기선 ‘한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는 선가의 원돈교를 말함.

 

不是山僧逞人我修行恐落斷常坑 (불시산승정인아 수행공락단상갱)

산승이 인아상을 드러냄이 아니요 수행타가 단,상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염려함이로다 (산승이 인상과 아상으로써 싸우라는 것도 아니며 때려주면서 다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자비로서 이끌어주라는 말씀. 왜냐하면 수행시 자칫 잘못하여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깊은 구덩이에 떨어져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임)

 

非不非是不是差之毫釐失千里 (비불비시불시 차지호리실천리)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이여 털끝만큼 어긋나도 천리길로 잃으리로다

 

是卽龍女頓成佛非卽善星 生陷墜 (시즉용녀돈성불 비즉선성생함추)

옳은 즉 용녀가 단박에 성불함이요 그른 즉 선성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짐이로다 (龍女: 법화경에 나오는 말로 암뱀. 善星: 선성 비구라는 부처님 제자로 나쁜 친구를 만나 부처님을 비방하고 교단에 굉장한 장애를 끼친 자로 부처님 아들이라는 설도 있음. 정법을 바로 믿으면 암뱀과 같은 미천한 축생도 성불할 수 있으나, 정법을 반대하면 부처님 아들일지라도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씀)  

 

吾早年來積學問亦曾討疏尋經論 (오조년래적학문 역증토소심경론)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쌓아서 일찍 주소를 더듬고 경론을 살폈도다

 

分別名相不知休入海算沙徒自困 (분별명상부지휴 입해산사도자곤)

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을 모르고 바다 속 모래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로 피곤하였도다

 

却被如來苦呵責數他珍寶有何益 (각피여래고가책 수타진보유하익)

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을건가

 

從來??覺虛行 多年枉作風塵客 (종래층등각허행 다년왕작풍진객)

예전엔 비칠거리며 헛된 수행하였음을 깨달으니 여러 해를 풍진객 노릇하였도다

 

種性邪錯知解不達如來圓頓制 (종성사착지해 부달여래원돈제)

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 그릇됨이여 여래의 원돈제를 통달치 못함이라

(성품이라 하면 정(正)과 사(邪)가 없지만 언어문자에 집착하는 것을 ‘성품에 삿됨을 심는다’고 함)

 

二乘精進勿道心外道聰明無智慧 (이승정진물도심 외도총명무지혜)

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성문과 연각 같은 이승은 침공체적(沈空滯寂)하여 중도를 성취하지 못했고 외도는 아무리 총명하여도 전체가 다 변견에 집착하여 중도를 모르기 때문에 지혜 즉 정지(正智), 정견(正見)이 없다는 말씀)

 

亦愚癡亦小駭空拳指上生實解 (역우치역소해 공권지상생실해)

우치하고도 겁이 많으니 빈 주먹 손가락 위에 실다운 견해를 내는도다

(亦愚癡亦小駭: 우치하고 좀스럽다는 것은 무명을 말함. 空拳指上生實解: 빈 주먹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이 있는 것처럼 집착한다는 말씀)

 

執指爲月枉施功根境塵中虛捏怪 (집지위월왕시공 근경진중허날괴)

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는도다 (손가락: 언어문자를 비유한 말, 모든 언어문자는 자성을 깨치는 방편으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음)

 

不見一法卽如來方得名爲觀自在 (불견일법즉여래 방득명위관자재)

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니 바야흐로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노라

 

了卽業障本來空 未了還須償宿債 (요즉업장본래공 미료환수상숙채) 

마치면 업장이 본래 공함이여 마치지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빚 갚으리로다

(未了還須償宿債: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면 자기가 전생에 지어놓은 업에 따라서 자기의 빚을 다 갚아야 한다는 말씀)

 

飢逢王膳不能飡病遇醫王爭得差 (기봉왕선불능손 병우의왕쟁득차)

굶다가 임금 수라 만나도 먹을 수 없으니 병들어 의왕 만난들 어지 나을 수 있으랴

(飢: 중생이 진리의 배가 고파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 王膳: 무상대도의 법)

在欲行禪知見力火中生蓮終不壞 (재욕행선지견력 화중생련종불괴)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불 속에서 연꽃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도다

(在欲行禪知見力: 출가를 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사람. 재가 신자도 노력하면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말씀)

勇施犯重悟無生早是成佛于今在 (용시범중오무생 조시성불우금재)

용시비구는 중죄 짓고도 남이 없는 법을 깨달으니 벌써 성불하여 지금에 있음이로다 (勇施犯重悟無生: 불설정업장경에 실려 있는 고사. 부처님이 계시던 때 용시라는 잘 생긴 비구가 있었는데 그를 사모하던 젊은 여자가 상사병이 나서 병석에 누웠다. 아무리 해도 병이 낫지 않았으나 용시비구가 자주 드나들며 설법을 하자 병이 나았다. 마침내 용시비구는 그 여자와 가깝게 되어 음행을 저지르고 그 여자 남편까지 죽이게 된다. 용시 비구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번민 속에 살았으나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무생(無生)을 증득했다는 고사)  

 

獅子吼無畏說深嗟??頑皮? (사자후무외설 심차몽동완피단)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어리석은 완피달을 몹시 슬퍼하는도다

(??: 멍텅구리, 頑皮?: 송곳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두꺼운 가죽, 즉 좋은 말이 절대로 귀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

 

只知犯重障菩提不見如來開秘訣 (지지범중장보리 불견여래개비결)

중죄 범하면 보리를 막는 줄만 알 뿐 여래께서 비결 열어 두심은 보지 못하도다

(원융무애한 대자대비로써 극중 죄인까지도 다 살릴 수 있는 비결을 부처님이 열어놓았는데도 죄인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말씀)

 

有二比丘犯淫殺波離螢光增罪結 (유이비구범음살 바리형광증죄결)

어떤 두 비구 음행과 살생 저지르니 우바리의 반딧불은 죄의 매듭 더하였다

 

(유마경에 나오는 이야기 - 두 비구가 심산유곡 토굴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 비구가 일이 있어 외출하고 한 비구는 공부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마침 그 때 한 젊은 여자가 나무를 하러 왔다가 잘 생긴 스님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음행을 했다.

 

스님이 눈을 떠 보니 자기가 꼭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음행을 저질렀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외출하였던 도반이 돌아왔기에 자기가 음행을 당한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도반이 노발대발하여 그 여자를 혼내주려고  뒤쫓아 가니 여자는 두려워 도망가다가 잘못하여 벼랑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한 비구는 본의 아니게 음행을 하고 한 비구는 고의는 아니었지만 살생을 하게 되었다.

 

두 비구는 부처님 당시 계율 제일로 일컬어진 우바리 존자를 찾아가서, “저희들이 율행을 범하여 참으로 부끄러워 감히 부처님께 여쭙지 못하고 존자께 찾아왔으니 원컨대 저희들의 의회를 풀어서 허물을 면케 해 주소서.” 하니 우바리 존자가 법답게 해설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음행하고 살인하여 바라이 죄를 범했으니 참회할 길이 없다. 가사 벗고 의발을 올려놓고 세속으로 나가라. 너희들은 이제 영원히 아비비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호령하였습니다.

 

마침 그때 유마거사가 옆에 있다가 우바리 존자에게 말하기를,

“우바리여 이 두 비구의 죄를 거듭 더하게 하지 마시오. 곧 바로 죄를 없애주어 마음을 요란케 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그 죄의 성품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아니합니다. 부처님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음의 때가 있으므로 중생이 때가 있고 마음이 깨끗함으로 중생이 깨끗하며, 마음이 또한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밖에도 있지 아니하며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니, 마음이 그러한 것과 같이 죄의 때도 그러합니다.

 

모든 법 또한 그러하여 여여함을 벗어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 우바리여, 일체의 법은 생멸하여 머물지 아니하니 환영과 같고 번개와 같고, 일체의 법은 서로 기다리지 않으며 내지 한 생각도 머물지 아니하며, 모든 법은 모두 망견이며 꿈과 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 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모양과 같아서 망상으로 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을 계율을 받는다고 이름하고 이것을 아는 사람을 잘 이해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니, 이 두 비구가 의심을 풀고서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합니다.     

 

‘우바리의 반딧불’이란, 우바리 존자가 부처님 법에 의거해서 두 비구의 죄를 다스리려 했으나 그것은 아무런 열기도 없는 반딧불과 같아서 그들의 죄의 매듭을 풀어줄 만한 지혜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죄의 매듭을 더 키워서 두 비구를 당혹케 했다는 것을 의미함.

 

維摩大士頓除疑還同赫日消霜雪 (유마대사돈제의 환동혁일소상설)

유마대사 단박에 의심을 없애줌이여 빛나는 해가 서리, 눈 놈임과 같더라

 

不思議解脫力妙用恒沙也無極 (부사의해탈력 묘용항사야무극)

부사의한 해탈의 힘이여 묘한 작용 항사같아 다함 없도다

(妙用: 자기에도 이익이 있고 남에게도 이익을 주는 것)

 

四事供養敢辭勞萬兩黃金亦銷得 (사사공양감사로 만량황금역소득)

네 가지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 사양하랴 만량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도다

(四事: 방사, 의복, 음식(향화), 의약. 萬兩黃金亦銷得: 대도를 성취한 사람은 만냥의 황금을 소비해도 오히려 부족하다. 그 정도로 도를 성취한 가치가 높다는 말씀)

 

粉骨碎身未足酬一句了然超百億 (분골쇄신미족수 일구요연초백억)

뼈가 가루되고 몸이 부숴져도 다 갚을 수 없나니 한 마디에 요연히 백억 법문을 뛰어 넘도다

 

法中王最高勝河沙如來同共證 (법중왕최고승 하사여래동공증)

법 가운데 왕 가장 높고 수승함이여 강 모래같이 많은 여래가 함께 증득하였도다

 

我今解此如意珠信受之者皆相應 (아금해차여의주 신수지자개상응)

내 이제 여의주를 해설하노니 믿고 받는 이 모두 상응하리로다

 

了了見無一物亦無人兮亦無佛 (요요견무일물 역무인혜역무불)

밝고 밝게 보면 한 물건도 없음이여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大千世界海中? 一切聖賢如電拂 (대천세계해중구 일체성현여전불)

대천세계는 바다 가운데 거품이요 모든 성현은 번갯불 스쳐감과 같도다

(大千世界海中?: 넓고 넓은 삼천대천세계이지만 잔여자성과 비교하면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자그마한 물거품과 같다는 말씀)

 

假使鐵輪頂上旋定慧圓明終不失 (가사철륜정상선 정혜원명종불실)

무쇠바퀴를 머리 위에서 돌릴지라도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끝내 잃지 않는도다

 

日可冷月可熱衆魔不能壞眞說 (일가냉월가열 중마불능괴진설)

해를 차게 하고 달을 뜨겁게 할지언정 뭇 마구니가 참된 말씀 부술 수 없도다

 

象駕?嶸漫進途 誰見螳螂能拒轍 (상가쟁영만진도 수견당랑능거철)

코끼리 수레를 끌고 위풍당당히 길을 가거니 버마재비 수레 길을 막는 걸 누가 보겠는가 (무상대법이란 버마재비가 큰 수레를 막는 것과 같이 석가, 달마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중생이 이를 어찌할 수 없다는 말씀. 螳螂能拒轍: 장자에 나오는 고사 - 제나라 장공이 큰 수레를 타고 가는데 길가에 잇던 버마재비란 놈이 가만히 보니 큰 짐승이 태산 같은 것을 타고 오고 있었다. 거드름 피우고 위엄 차리고 오는 것을 보니 자기 딴에는 같잖은 생각이 들어서 ‘저 놈을 못 가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조그마한 발로 수레를 가로 막았으나 가루가 되어 즉사하고 말았다. 당랑거칠이란 아무 힘도 없는 물건이 무한한 힘이 있는 것을 막으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임)     

 

大象不遊於兎徑大悟不拘於小節 (대상불유어토경 대오불구어소절)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노닐지 않고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에 구애되니 않나니

 

莫將管見謗蒼蒼未了吾今爲君決 (막장관견방창창 미료오금위군결)

대통같은 소견으로 창창히 비방하지 말라. 알지 못하기에 내 이제 그대 위해 결단해 주는도다

 

장사스님의 게송

 

假有元非有(가유원비유)    거짓 있음이 원래로 있음이 아니요

假滅亦非滅(가멸역비멸)    거짓 없어짐도 또한 없어짐이 아니니

涅槃償債義(열반상채의)    열반과 빚 갚음의 뜻이

一性更無殊(일성갱무수)    한성품으로 다시 다름이 없도다

 

있다 있다 하지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있다는 이대로가 공이며,

없다 없다 하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있는 것이며,

있다 해도 있는 것이 아니요 없다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니,

결국 있음과 없음을 떠나서 있음과 없음이 서로 통한다.

 

중생이 대법을 알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이유

 

우리가 자성을 바로 깨치면 그 공덕은 미래겁이 다하도록 써도 다 쓸 수 없어서 일체중생을 열반의 길로 이끌어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대자유자재한 부사의해탈경계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최상의 값할 수 없는 대법을 중생은 어째서 알지 못하고 쓰지 못하느냐?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심(心), 의(意), 식(識)으로 말미암는다’라고 하여, 중생의 망상 때문에 자성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망상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셋을 나누었는데, 첫째 근본망상은 제팔 아뢰야식[心], 둘째 중간망상은 제칠 말나식[意], 셋째 지엽망상은 제육 의식[識]입니다. 중생은 보통 지엽망상인 제육 의식은 알지만 근본망상인 제팔 아뢰야 무기식은 중생의 분별심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불법을 성취하여 참으로 값 할 수 없는 여의주를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유자재하게 쓰려면, 심(心), 의(意), 식(識)을 근본적으로 소탕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심,의,식이 끊어진 경계를 선문에서는 ‘마음을 물리치고 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즉 선문에서는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의 뿌리까지 뽑아 버려야 참으로 무생진여(無生眞如)인 부처님 본성을 깨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 주장하는 돈오(頓悟)는 언제든지 진여본성을 깨친 구경각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인 해오(解悟)가 아닌 것이니 영가스님의 [증도가]에서도 그 내용이 완전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경각을 성취하면 바로 그것이 중도이니, 있다는 견해와 없다는 견해를 여의고 단견과 상견의 양변을 여의어서 무상대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