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여섯 낳은 어머니를 아버지는 무시하고 늘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불쌍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머니가 자꾸 미워집니다.
옛날부터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된다는 말이 있지요. 따라 배우거든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보고 자라면 ‘엄마를 구박하면 안 된다. 아버지가 나쁘다. 우리가 엄마를 잘 보살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식 또한 자라면 엄마를 구박합니다.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카르마, 업이라는 겁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 술주정을 하면 아이들이 자랄 때 그게 싫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안 해야지’ 하는데 그 아이가 자라면 또 술주정을 합니다. 부모가 이혼을 해서 그 밑에서 고통을 받으면 ‘나는 결혼하면 이혼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이런 사람이 자라서 결혼하면 이혼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부모가 이혼하지 않은 집에서 자란 사람은 생각에서는 이혼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마음에서는 이혼하면 안 되는 줄 압니다. 마음이 안 움직여요. 그런데 부모가 이혼한 집의 자식은 마음이 이혼을 하는 쪽으로 갑니다.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어릴 때부터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릴 때 보고 자란 것이 지금 나에게 그렇게 형성되어 내 업이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하는 겁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불쌍하지만 나이 들면 나 역시 엄마를 얕보게 됩니다. 옛날 봉건시대에도 다 그랬습니다. 다 어머니의 아들, 딸들인데 크면 여자를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여자를 무시하는 데서 자랐기 때문에 따라 배워서 그런 마음이 형성되는 거지요.
이런 업에 끌려서 사는 것은 윤회의 삶, 업에 종속된 삶입니다. 이 엄마는 시집와서 남편한테 구박받고 기를 못 펴고 살았어요. 기를 못 펴니까 누가 뭐라고 큰소리로 말하면 금방 기가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은 이렇게 기가 죽지만 또 내부에서는 반발을 합니다. 적어도 자식보다는 자기가 위에 있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 억눌림에 대한 반발이 자식들한테 명령을 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어머니가 구박 받고 살다보니까 그 억압된 심리가 우리들한테는 큰소리치는 것으로 나타나는구나’라고 이해하면 어머니가 이것저것 간섭하더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말이라는 게 다 업일 뿐이에요. 어머니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도 말이 무의식중에 그렇게 튀어나오는 거예요.
어머니를 만났다가 헤어질 때 안 그래도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빨리 가라고 하니 섭섭했겠지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이 따로 움직이듯이, 어머니도 자기 생각과 자기 카르마가 다르기 때문에 의도와 달리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딸 여섯 낳아서 구박받고 키웠으면 고생도 많이 했겠지요. 게다가 지금 일흔 살이 되었는데 그 습이 고쳐지겠어요? 맞춰드리세요. 가라고 하거나, 좀 더 있다 가라고 하면 “알겠습니다, 어머니”라고 맞추어 보세요. 나를 기준으로 어머니를 맞추려고 하지 마시고요. 어머니는 평생 살아오면서 남한테만 맞추고 살았는데 인과원리로 봐도 맞추어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어머니 세상 사람한테는
안 되지만 나한테만은 왕 노릇 좀 하다가 돌아가시게 해야겠다. 어머니, 저한테 왕 노릇 하세요. 제가 어머니 종 할게요.’ 딱 마음을 바꾸세요. 그러면 아무 문제가 안 돼요. 키워줬으니 빚 갚는다 생각하고 돈을 드리세요. 어디에 쓰시든 그것은 그 분의 자유예요.
어머니 문제가 아니라 다 본인 문제입니다. 어머니가 뭐라 하시든 내가 거기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가라 하시든 오라 하시든 시비하지 마세요. 성질을 알면 성질에 맞추는 것이 공부지요.
법륜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979호 [2008년 12월 22일 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