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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찌하여 ......
지난 밤 내린 비로 몇 개 남지 않은 가로수 잎들은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드러났습니다.
아침 등교길엔 벌써 겨울 옷을 걸친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빗물에 흠뻑 젖은 은행나무 낙엽을 밟으며 동식이는 몸을 잔뜩 웅크렸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할아버지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동식이의 동생은 외가댁에 보내지고 엄마 아빠는 번갈아 할아버지 곁에서 밤을 새우셨습니다.
" 너도 다 컸으니까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된다. "
아빠의 말씀은 동식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습니다.
아침 일찍 할아버지와 함께 동네 약수터에 다녀오던 즐거움 대신에 집 안에는 이제 무겁고 우울한 침묵만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 에잇 ! 재미없어. "
동식은 기분풀이를 하듯 길에 떨어져 있는 깡통 하나를 걷어찼습니다.
빈 깡통은 " 아이쿠 놀래라. "
하며 통-깡-통=깡 굴러가더니 어느 고학년 언니의 정강이를 후려쳤습니다.
" 어느 녀석이야 ! "
깡통에 맞은 언니는 몹시 험상궂게 생겼습니다.
" 이크 이러다간 한 대 맞겠다. "
동식은 얼른 한창 애기꽃을 피우며 몰려가는 여학생들 틈에 숨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오늘은 정말 재수없는 날이군. "
동식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짝꿍인 순영이를 생각했습니다. 얼굴은 하얗다 못해 핼쓱하게 보였고 늘 말이 없어 언제나 동식의 '밥' 이었습니다.
" 오늘은 뭘로 골탕을 먹일까 ? "
이런 궁리를 하며 교실에 들어선 동식은 아직 순영이가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동식은 칠판에서 분필을 주어다가 순영이의 의자에 몰래 칠해 놓았습니다.
아마 오늘 추워서 순영이가 새 옷을 입고 오면 동식이의 작전은 멋있게 들어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순영이는 선생님이 아침 조회를 할 때도, 첫 수업이 시작될 때도 아니 마지막 수업이 끝나 청소를 하고 집에 갈 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는 날이라니까. "
동식은 순영이가 자신의 꾀를 알아차리고 학교에 오지 않은 것 같아 더욱 기분이 나빴습니다.
" 그렇지만 내일 나타나기만 해봐라 "
동식이는 집에 오기 전에 순영이 의자에 더욱 많은 분필가루를 발라 놓았습니다.
동식이의 궁금증은 날로 더해 갔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자 동식이네 반에는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영이가 죽었다고 하기도 하고 멀리 이민갔다고도 했습니다.
동식이는 더 이상 갑갑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났을 때 동식이는 용기를 내서 선생님에게 순영이가 왜 학교를 안나오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동식이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 순영이를 그렇게 골탕먹이더니 그래도 짝이라고 제일 보고 싶은가 보군. "
하셨습니다.
친구들이 와 웃자 동식이의 얼굴은 금새 붉게 물들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오늘 너희들에게 애기하려고 하던 참이다. 선생님으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라 입이 떨어지진 않지만 순영이가 너희들 소식을 알고 싶어 하는 만큼 너희들도 순영이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을 줄로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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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선생님의 표정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 순영이는 어린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병에 걸려 있다. 주로 어른들에게
많은 암이라는 무서운 혹이 순영이의 머릿속에 들어와 크고 있었다.
어제 선생님이 병원에 다녀왔는데 순영이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하고 또 수술
을 받은 후에도 여러 가지 치료를 거쳐야 한단다. "
교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 치료를 받으면 순영이는 살 수 있나요 ? "
" 글쎄 . . . 선생님도 그걸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구나. "
그러면 순영이가 죽을 수도 ...... ? 동식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래도 순영이는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다. 친구들 소식도 물어 보고 학교에 빠진 것을 걱정도 하고 ...... ,
그런데 참, 순영이가 이걸 꼭 동식이에게 전해달라고 하던데. "
그것은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염주였습니다. 그 구슬 속에는 부처님이 신비하고 영롱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동식이 탐내고 있었습
니다.
염주를 받아든 동식이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 염주를 뺏기 위해 동식이는 얼마나 순영이를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동식이는 그러한 행동을 했던 자신이 미웠습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동식은 교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동식은 열심히 순영이의 걸상과 책상을 닦았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 순영이는 이미 자기의 병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부처님이 담긴 구슬을 가지고 다녔던 거야, 순영이에게 그렇게 생명과도 같은 것을, 나는 왜 짓궂게 뺏으려 했을까. "
동식이는 화난 사람처럼 힘꼇 걸레를 문 질렀습니다.
" 순영이가 이 염주를 나에게 준 것은 틀림없이 제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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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이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동식이는 또 한 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문 앞에 걸린 등, 웅성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 슬프게 우는 소리들 ...... ,
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동식이는 한동안 명하니 서 있었습니다.
슬퍼할 사이도 없이 동식이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옆 집으로 이끌려 갔습
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지만 어디에 계신지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았습니다.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구슬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도, 순영이가 궁금해 질때도 ...... ,
그렇게 한 달 뒤인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 순영이 책상에는 순영이 나이만큼의 흰국화꽃이 놓였습니다.
겨울만 지나면 새 학년이 되는데 동식은 즐겁지가 않습니다. 주머니 속에 염주를 꺼내 구슬 속의 부처님을 들여다 봅니다. 그 속에는 할아버지도 순영이도 있습니다.
' 봄이 되면 아버지를 졸라 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 봐야지 '
동식이가 이렇게 결심한 까닭은 그곳에서 부처님에게 꼭 물어볼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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