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심학을 완성한 금산대사의 후신 왕양명
왕양명과 그의 대표작 전습록.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밖에 있지 않다
선생(왕양명)께서 남진 지방을 유람하실 때, 한 친구가 바위 가운데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선생께서는) ‘천하에 마음 밖의 사물은 없다’라고 하셨는데, 깊은 산 속에서 저절로 피었다 저절로 지는 이 꽃나무와 같은 것은 내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 꽃을 보지 못했을 때 이 꽃과 그대의 마음은 함께 적막 속에 돌아간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는 이 꽃의 색깔이 일시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밖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전습록(傳習錄)』
일체 보고 듣는 것은 오로지 인식일 뿐이요[萬法唯識], 삼계가 오직 마음 뿐임[三界唯心]을 드러내고 있는 이 문답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그 는 바로 유교 심학(心學)의 완성자이자, 중국 명(明)대 거사불교의 중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양명(陽明)거사 왕수인(王守仁, 1472~1529)이다. 금산(金山)대사의 후신이자 지욱(智旭)대사의 출가 전 스승으로도 유명한 왕양명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진 본심이자 자성, 불성, 본래면목을 ‘양지(良知)’ 또는 ‘명덕(明德: 밝은 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심학의 체계를 완성, 양명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양지 (良知)란 ‘배우지 않아도 알고, 일삼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맹자의 양지양능(良知良能)에서 비롯된 말로, 타고난 도덕적 실천적 자각능력을 가리킨다. 여기서 자각(自覺)이란 이지적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직관(直觀)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를 근거로 그는 마음과 이치가 합일된 경지로서, 인간이 타고난 밝은 덕(본성)을 회복한 상태인 ‘치양지(致良知)’를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심학의 구조는 본래성품을 깨닫고 불성을 발현하여 붓다로 살아갈 것을 주장하는 조사선(祖師禪)과 용어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것이 사실이다. 선 종 특히, 조사선의 영향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양명은 그의 후학인 유종주(劉宗周)에 의해 이른 바 ‘양명선(陽明禪)’의 확립자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선(禪)에 대한 안목이 깊었다. 그가 표면적으로는 유교의 입장에서 ‘심즉리(心卽理)’의 사상을 펼쳤지만, 그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고매한 삶은 거사로서 남몰래 불교 포교에 큰 공덕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불 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기존 성리학의 모순을 극복하고 태동한 양명학이 유사불교라는 평가를 받아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TV 드라마로 인기를 끈 ‘정도전’에서 성리학을 배경으로 조선왕조의 체계를 세운 정도전의 일대기를 보면서, 조선이 성리학이 아닌 양명학을 받아들여 건국이념을 삼았다면 그나마 불교가 500여 년간 탄압을 받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나 무너지지 않는 몸[不壞身]이 있다
왕양명
명 나라 최고의 사상가, 철학가, 서예가, 군사가, 교육자, 문학자로 손꼽히는 왕양명은 관리 집안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왕운(王雲)이었다. 명대 중기인 1472년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 여요현(餘姚縣)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총명해서 한번 들으면 외우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28세에 진사가 되어 변경에서 단련을 거쳐 나중에 군사를 통솔해 반란을 평정, 큰 공을 세운 양명은 관직이 남경 병부상서(南京兵部尚書), 남경도찰원좌도어사(南京都察院左都禦史)에 이르렀다. 신호(宸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신건백(新建伯)에 봉해졌고 훗날 후작(侯爵)의 작위가 더해졌을 정도로 정치적인 위상도 높았다.
50 세가 되던 해, 양명은 이미 이름을 천하에 떨치는 대 유학자이자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도적을 토벌하는 대원수가 되어 있었다. 그가 진강(鎮江)에 있을 때 금산사(金山寺)에 유람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가는 길은 매우 익숙해 마치 전부터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양명은 스님이 폐관(閉關: 문을 자물쇠로 얼고 수행하는 일종의 무문관ㆍ無門關 수행) 수행하는 한 칸의 방을 보았는데, 문은 단단히 잠겨있고 심하게 낡았으며 문에는 봉인이 붙어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소임을 보는 스님이 말했다.
“이곳은 50년 전 원적(圓寂)한 노스님의 육신 사리(부패하지 않은 금신ㆍ金身)가 있는 곳인데 50년 이래 연 적이 없으며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양명은 단호하게 열 것을 요청했다. 당시 그의 명성과 위세가 드높았기에 스님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을 열어보자 원적한 노스님은 여전히 방석 위에 앉아 있는데, 50년 전 옛날 옷이 아직 생생했으며 모습은 엄숙하기만 했다. 그리고 벽에는 게송이 하나 붙어 있었다.
五十年後王陽明 開門猶是閉門人
精靈剝後還歸複 始信禪門不壞身
50년 후 왕양명이 문을 여는데
문을 연 사람이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다.
정령(精靈)이 없어진 후에 다시 돌아왔으니
비로소 선문에 ‘불괴의 몸[不壞身]’이 있음을 믿게 되리라.
알 고 보니 노승은 입적할 때 이미 미래의 일을 예견하고 일부러 이런 게송을 벽에 남긴 것이다. 그래서 양명에게 자기의 본래면목을 잃지 말라고 일깨워준 것이었다. 실은 다시 사람 몸을 받아서 전생에 수도한 바를 망각한 채 살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을 일깨운 셈이었다.
여 기서 ‘정령이 없어진 후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자기(금산대사) 영혼이 다시 돌아왔다는 말로 식(識)의 윤회를 나타낸 말이다. 정령이나 영혼이 사람의 자성(自性)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몸인 불괴신(不壞身)은 전변하는 식(識)이 아닌 자성이자 법신(法身)을 말한다.
이 불괴신은 본래부터 나고 죽음이 없어서 오고 감도, 생기는 것도 무너지는 것도 없어서 영원히 어둡지 않고 깨어있는 본래의 얼굴[本來面目]이다. 이 불괴신은 시간과 공간,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물건 아닌 ‘한 물건[一物]’이기에 50년 전 문을 닫은 금산대사의 자성이자 50년 후 문을 연 양명의 본래 성품(性品)이기도 하다. 양명은 『전습록』에서 이러한 불괴신을 심(心)으로 보고, 마음 밖에 이(理)와 사(事)가 따로 없음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텅 비어 영명하고 어둡지 않아[虛靈不昧]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있음으로
만 가지 일이 이로부터 나온다[衆理具而萬事出]
마음 밖에 ‘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心外無理]
마음 밖에 ‘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心外無事].”
양명의 전신(前身)이었던 금산대사는 생전에 이미 자신의 후신이 다시 태어나 지혜가 어두워질 것을 예견하고 이러한 장치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보살8지(地)인 부동지(不動地: 진여ㆍ眞如에 대한 분명하고 바른 지혜를 얻어 다시는 번뇌와 유혹에 동요되지 않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채 윤회하는 한 다시 매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각인시켜주는 한 편의 연극 같기만 한 이 일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 수행자가 이왕 구도의 길에 나섰다면 물러남이 없는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이를 정도로 무심과 부동심(不動心)을 닦아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전설과 같은 이러한 일화는 양명이 57세 되던 해, 유사한 이야기 구조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이때 양명은 중병에 걸려 남안 청룡진(南安 青龍鎮)의 아산(丫山)을 지나다 산 위에 있는 영암사(靈岩寺)를 찾아가게 된다. 마침 절의 고승이 며칠 전 좌화(坐化: 앉은 채 입적)했기에 손님을 받지 않았다. 양명은 나중에 대중스님들을 설득하여 겨우 도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절에 들어가니 밀실이 한 칸 있는데, 책상 위에 게송이 하나 적혀 있었다.
五十七年王守仁 啟吾鑰拂吾塵
問君欲識前程事 開門即是閉門人
57세 된 왕수인이
나의 자물쇠를 열고 먼지를 터는데
이전의 일을 알고 싶은가
문을 여는 사람이 바로 문 닫는 사람이라네.
게송을 보자 양명은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줄 직감하고 조용히 절을 떠나갔고, 얼마 안 되어 양명은 세상을 떠났다. 대 유학자의 근원이 불교에 있음을 웅변하는 두 일화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하 루하루 정신없이 쫓기듯 일생을 허비하다가 갈 곳도, 떠날 시간도 모른 채 숨을 거두고 마는 우리네 인생은 언제나 꿈같은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대자유와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인가. 양명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인 화두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셈이다.
다음 호에서는 양명거사의 오도(悟道) 인연과 지행합일의 사상에 대해 공부해보고자 한다.
푸른바다 김성우 합장
(이 글은 월간 <고경>에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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