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와 해골물
신라 말기였습니다.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는 당시 문화와 불교가 꽃피었던 당나라로 유학을 가시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편리한 교통 수단이 없었기에 걸어서 그 먼 길을 가야만 했으므로, 보통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유학 길에서는 고구려 국경을 넘다가 그곳 병졸들에게 잡혀 많은 괴로움을 겪고 다시 신라로 돌아와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려는 지극한 마음으로 두 분은 다시 길을 떠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날도 이미 저물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억수같이 내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산길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비를 피할 만한 동굴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온 몸이 비에 젖고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은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자던 원효 대사가 몹시 목이 말라 눈을 떠보니 깜깜한 어둠뿐이었습니다. 주위를 더듬거리다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발견하고는 너무도 반가워 단숨에 마셔버렸는데, 그 물맛 또한 참으로 달콤하였습니다. 그렇게 원효 대사는 만족한 기분으로 새벽까지 깊이 단잠을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원효 대사의 머리맡에는 간밤에 자신의 갈증을 풀어준 물바가지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가지가 아니라 바로 죽은 사람의 해골이 아니겠습니까? 그리니 그 달콤했던 물은 해골 안에 고인 썩은 빗물이었지요. 원효 대사는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 토하기 시작했는데,
‘어젯밤 그토록 달콤했던 물이 오늘 아침에는 보기만 하여도 구역질이 나다니, 같은 물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콤하고 것과 구역질 나는 것은 가려내는가? 오호라! 그건 물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었구나. 그래 모든 것은 마음이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야!’
원효 대사는 한 순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것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도 없는 것
모든 것이 마음이요 만 가지 일이 오직 생각이다
다만 마음 따라 생기고 마음 따라 사라질 뿐이라네
또한 대사는, ‘모든 것이 마음인데, 내 마음이야 당나라에 가나 고국으로 돌아가나 항상 그 마음이지’하시며, 그 순간 당나라 가는 것을 그만두고 의상 대사와 헤어져 혼자 신라로 되돌아갔습니다.
본국으로 돌아온 원효 대사는 무덤에서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때까지 상류귀족들만 믿던 불교를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쉽게 전하려고 노력하던 원효 대사의 높은 덕은 신라 땅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한 불교 각 종파의 입장을 서로 화해시켜 모두가 하나임을 가르치는 대사의 ‘화쟁(和諍)’ 사상은 신라 불교의 완성이자, 우리 민족의 위대한 사상이며, 방대하고도 깊이 있는 저술은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불교연구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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