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심원사 향지산 촬영
세상 사람들은 눈에 눈곱만 끼어도 닦아내고 옷에 먼지만 묻어도 털어 내면서
정작 마음에 낀 때는 닦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도둑이 무서워 문단속을 하면
서도 정작 마음 안에 팔만사천 도둑이 들락날락거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청허 휴정의‘수행인의 일상정검’
편안한 때에도 지옥고통 잊지말라
참선하는 사람은 네 가지 은혜가 깊고도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사대의 더러운 이 몸이 순간순간 썩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려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부처와 조사를 만나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위없는 법을 듣고 아주 드물고 진기한 마음을 냈는가?
수도자의 거처를 떠나지 않고 수도자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이웃에 있는 사람과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화두는 항상 또렷이 들고 있는가? 남과 말을 할 때도 화두를 끊임없이 붙들고 있는가?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아는 모든 것이 화두와 덩어리를 이루는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돌아보아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지혜와 생명을 이을 수 있는가? 한 번 받은 이 몸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팔풍의 지경을 당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일어나거나 앉거나 하는 편안한 때도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사람이 일상생활 가운데 늘 점검해야 할 도리인 것이다. 옛 사람이 “이 몸을 이 생에서 건지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서 이 몸 건지기를 기다릴 것인가!”라고 하셨다.
앞서 말한 것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따뜻한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 총명으로 업을 막을 수 없고, 마른 지혜로써 고통의 수레바퀴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저마다 살피고 헤아려 머뭇거리거나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말만 배우는 무리는 말할 때에는 깨달은 듯하다가도 실제 경계에 당하게 되면 도리어 그만 미혹하게 되니,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난 사람이다.
깨달은 정도가 그다지 깊지 못한 사람은 비록 종일토록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더라도 항상 맑고 깨끗함에 걸리게 되며, 비록 사물의 허함을 보더라도 항상 경계에 얽매이게 된다. 이러한 사람의 병은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見聞覺知)을 잘못 알아 공적영지(空寂靈知)한 것으로 알고 광영문(光影門) 끝에 앉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마음의 본체에 생각이 떠난 것을 깊이 알지 못하면, 마침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의 유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혹, 세간과 출세간에 선악의 인과가 모두 한 생각을 따라 일어남을 궁구하지 않는 사람은 평상시에 자신의 마음 다스리기를 가볍게 하여 성찰할 줄을 모른다. 이런 까닭에 비록 경전 공부와 선승의 게송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 때가 있더라도 단지 바로 잠시 기뻐할 뿐이고 그 뒤에는 가볍게 던져 버려 결정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속의 인연을 좇아 순간순간 흘러 옮겨 다니니, 어찌 이룩할 기약이 있겠는가. (청허 휴정의『선가귀감』(예문서원)서 발췌.
청허 휴정(淸虛 休靜)은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공부하기 시작해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운수(雲水) 행각을 하며 공부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했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는 열반송 중 백미로 꼽힌다.
스스로 공부 점검하는 법
4. 스스로 공부를 점검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공부 점검은 선지식에게 받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정이 마땅치 못할 때는 조사어록에 실려 있는 기준에 따라 스스로 점검해 보는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결코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하며 자기 공부에 대해 냉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자세만 확고하다면 조사 스님들의 어록에 따라 자기 공부의 옳고 그름과 깊고 낮음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대혜 선사의 『서장』, 태고 선사의 『태고어록』, 나옹 선사의 『나옹어록』, 그리고 서산 선사의 『선가귀감』 등에 나와 있는 점검법을 소개한다. 선지식을 모시고 수행할 수 없는 수행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면서 끊임없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서장』에서 말하는 공부 점검법
『서장』에서 대혜 선사는 여러 가지 공부 점검법을 제시하고 있다. 선사는 한 거사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늘 다음 사항을 점검해 보라 했다.
① 유유히 한가롭게 소요 자재할 때에 온갖 마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가(不審 燕處悠然 放曠自如 無諸魔撓否).
② 행주좌와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가 잘 들리는가(日用四威儀內 與狗子無佛性話 一如否).
③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헤아려 분별하지 않을 수 있는가(於動靜二邊 能不分別否).
④ 꿈꿀 때와 깨어 있을 때가 일치하는가(夢與覺合否).
⑤ 이理와 사事가 회통되는가(理與事會否).
⑥ 마음과 경계가 모두 한결같은가(心與境皆如否).
-『서장書狀』 』답유보학答劉寶學』
태고 선사와 서산 선사의 공부 점검법
서산 선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태고 선사의 공부 점검법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일상에서 자신의 공부 정도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자기 점검법으로 수행자들은 스스로의 수행 향상을 위해 이것을 점검 기준으로 삼아 나날이 자기 공부를 살펴본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①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還知四恩深厚?).
(여기서 네 가지 은혜란 부모, 나라, 스승, 시주의 은혜를 말한다.)
② 지수화풍 사대로 된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썩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還知四大醜身 念念衰朽?).
③ 사람들의 목숨이 호흡 사이에 달려있는 줄을 아는가(還知人命 在呼吸?).
④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生來値遇佛祖出世?).
⑤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聞無上法 生希有心?).
⑥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不離僧堂守節?).
⑦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不與隣單 雜話?).
⑧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 않은가(切忌鼓扇是非?).
⑨ 화두가 어느 때에나 또렷또렷하여 어둡지 않는가(話頭十二時中 明明不昧?).
⑩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對人接話時無間斷?).
⑪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화두가 한결같이 한 조각을 이루는가 (見聞覺知時 打成一片?).
⑫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返觀自己 捉敗佛祖?).
⑬ 이생에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룰 수 있겠는가(今生決定續佛慧命?).
⑭ 앉고 눕고 편안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起坐便宜時 還思地獄苦?).
⑮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此一報身 定脫輪廻?). 모든 경계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當八風境 心不動?). 이 몸을 이생에 건지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 건질 것인가(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태고 선사는 다음을 더 제시했었다.
① 상중하의 자리를 불문하고 서로 공경하는가(上中下座 互相恭敬?).
② 남의 허물을 보거나 남의 허물을 말하지는 않았는가(不見他過不說他非?).
그리고 아래 사항을 스스로 점검해 보기 바란다.
① 정견이 바르고 확고하게 섰는가.
② 수행과 삶이 일치하고 있는가.
③ 화두에 대한 신념이 날로 증장되고 있는가.
④ 물질에 대한 욕구가 조복되어 가고 있는가.
⑤ 확철대오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이 서있는가.
⑥ 결제 해제 없이 항상 계율을 잘 지키고 있는가.
⑦ 시비심과 승부심이 날로 적어지고 있는가.
나옹 선사의 공부 점검법
나옹 선사는 공부의 점검을 열 가지 단계로 나누어 밝히고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공부십절목工夫十節目이다. 공부를 열 단계로 나누어 점검한 것이다. 이를 구성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색초월聲色超越, 하개정공下介正功, 정숙공正熟功, 타실비공打失鼻孔, 의식불급意識不及, 오매항일寤寐恒一, 쵀지경절?地更折, 수연응용隨緣應用, 요탈생사要脫生死, 지거처知去處 등의 열 단계를 순차적으로 물어 그 수행의 단계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부 점검은 단계별로 자신의 수행 정도를 판단할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盡大地人 見色不超色 聞聲不越聲 作魔生超聲越色去).
②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旣超聲色 要須下功 作魔生下?正功).
③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旣得下功 須要熟功 正熟功時如何).
④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떠한가(旣能熟功 更加打失鼻孔 打失鼻孔時如何).
⑤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 때에는 허깨비 몸이 인간 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孔打失 冷冷淡淡 全無滋味 全無氣力 意識不及 心路不行時 亦不知有幻身在人間 到這裏 是甚時節)
⑥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나 깨나 한결같아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없어져도 잃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당한가(動靜無間 寤寐恒一 獨不散蕩不失 如狗子見熱油?相似 要?又?不得 要捨又捨不得時 作?生合殺).
⑦ 갑자기 백이십 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인가(驀燃到得如放百二十斤擔子相似 ?地更折 曝地便斷時 那?是?自性).
⑧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旣悟自性 須知自性本用 隨緣應用 作?生 是本用應用)
⑨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죽을 때)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旣知性用 要脫生死 眼光落之時 作?生脫).
⑩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사대는 각각 흩어지니 어디를 향해 가는가(旣脫生死 須知去處 四大各分 向甚處去).
이렇게 『서장』이나 『태고어록』,『선가귀감』에 나와 있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수행을 점검해 볼 수 있고, 나옹 선사의『공부십절목』에 따라 공부를 단계별로 점검할 수가 있다.
자료출처: [간화선/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367 -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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