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향 : 1.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질문 >
1.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현생에 깨닫거나 아니면 죽어서 윤회하다 언젠가 깨닫는 것이라면 지금 이 생에서 굳이 애써 수행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현재 삶을 주어진 대로 살다 다음생에서 깨달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2. 나는 끊임없이 생기하며 나라는 영속성을 이어갑니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연기의 법칙이 윤회를 이어가는 주체성입니까? 그렇다면 연기의 법칙이 실제하고 작용 한다는 말이 되는데요....
이게 아니라면 8식이 나의 영속을 이어가는 것입니까?
8식의 존재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답변>
1.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깨달음이란 것은 한마디로 -탐진치에서 벗어남-을 말합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란 인간의 모든 번뇌의 원인이 되는 것들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는 언어입니다.
탐욕이라는 것은 내것, 나의 것에 집착하는 성향에서 빚어지는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본능적인 성욕, 수면욕, 식욕, 재물에 대한 소유욕,
명예욕, 성취욕...모두를 의미합니다..
분노라는 말은 내가 존재하고 살아있음을 방해하는 것에 대하여 일으키는 모든
의식작용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나의 주장에 반하는 것이 있거나, 나를 귀찮고 성가시게 하는 것, 대상,이 있을 때, 내가 생각할 때 너무나 억울하고 불합리한 대접을 받았을 때 ... 무시당했을 때..이런 모든 경우에 일어나는 감정들이 바로 분노라는 것입니다.
무시당할 때 왜 화가 나고 분노하는가? 나라는 것이 있음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나라는 존재의 있음-즉 살아있고자 하는 욕망에 도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분노하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것은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아있고자 하는 욕망이 방해를 받거나 건드려지거나 하는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드러나는
표현인 것입니다.
어리석음이라는 것은 바른 법에 무지한 채, 자아의 집착이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얽매여 살아가는 인간의 허망한 인식모두를 말하고 있다하겠습니다.
이것은 탐욕과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근본원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것의 반대입니다. 즉 무명의 상태를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무명의 상태를 바른 법과 선지식의 가르침에 무지한 상태 , 바른 법을 알고자 하지 않는 것..등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의 벽이 너무나 두텁기에 인간은 자아라는 족쇄에 갇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기에 탐욕에 얽어매이고 분노하고 끝없이 같은 굴레속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탐진치라고 표현하였지만 인간의 속성에서 어리석음 따로, 탐욕 따로, 분노 따로 떼어놓고 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가 뭉쳐서 인간의 번뇌망상을 끝없이 자라나게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표현되어지는 양상이 탐욕의 모습이 더 강할 수도 있고, 분노의 모습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어리석음의 모습이 더 강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지 사실은 세 가지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탐진치의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자아’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깨달음이란 바로 탐진치를 벗어남-자아라는 허망한 세상을 벗어남을 말하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현생에 깨닫거나 아니면 죽어서 윤회하다 언젠가 깨닫는 것이라면 지금 이 생에서 굳이 애써 수행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현재 삶을 주어진 대로 살다 다음 생에서 깨달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말씀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면 저절로 사라지는 의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과거는 과거대로 내버려두고 미래는 미래대로 내버려두자. 내가 너에게 현실을 통해 법을 설하겠다<잡아함경>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고통이라고 깊이 자각하고,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잘 알아서 끊어 버리며, 직면하고 있는 고통을 넘어서 열반이란 이상을 증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여, 열반에 이르게 되는 바른 수행을 닦으면 이 사람은 빗장과 자물통이 없는 사람이요, 구덩이를 평평하게 고른 사람이다. <잡아함경>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현실을 통해 법을 설하겠다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음 생에서 깨달으면 된다 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음생이 있을지 없을지 생각하는 허망한 의식을 현재에 집중하여 현재 일어나는 고통을 똑바로 보고 그 원인을 찾아 거기서 벗어나라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음 생이 있는데 이번 생에 뭣하러 고생해서 수행을 하느냐 다음생에 가서 열심히 해서 깨달으면 되지 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깨달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데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2. 나는 끊임없이 생기하며 나라는 영속성을 이어갑니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라고 들었습니다.이 연기의 법칙이 윤회를 이어가는 주체성입니까? 그렇다면 연기의 법칙이 실제하고 작용 한다는 말이 되는데요....
이게 아니라면 8식이 나의 영속을 이어가는 것입니까?
8식의 존재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8식의 존재근거를 묻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먼저 연기의 법칙에 대한 이해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기본부터 차근차근 듣고 새기고 끊임없이 문사수하는 과정, 사고하는 과정을 계속해야 하는 공부입니다.
낱말의 뜻을 풀듯이 이해하고 알았다고 할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은 나라는 것은 없다는 무아의 법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끊임없이 생기하여 나라는 영속성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연기의 법칙이라고 가르쳤다면 부처님이 가르치신 무아의 법은 완전 뻥이거나 사기극이 되고 맙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영속하여 이어가는 나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무상고무아의 법입니다.
나는 끊임없이 생기하며 나라는 영속성을 이어갑니다.
이 말의 뜻은 ‘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내 것’ ‘나의 것’을 만들어 가는 인간의 속성을 표현해 놓은 말입니다.
죽지않고 살아있으려는 생존의 욕구가 바로 나라는 영속성이지요.
영속성이라는 것은 이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이 기억이라는 작용을 통하여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연결하여 영속되어진 존재로 거머잡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라고 들은 것은 잘못 들은 것입니다.
연기의 법칙이란 그러한 영속성을 주장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끊임없이 나라고 주장하는 인간인식의 발생과정을 통찰하여 논리정연하게 밝혀놓으신 것을 말합니다.
이 법칙은 순환연기와 환멸연기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명부터 시작하여 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 -유-생-노사의 순서로 인간인식의 발생과정을 밝혀놓으신 것을 순환연기라고 합니다.
끝없이 돌고 돌아 계속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들이 허망한 인식속에서 번뇌망상에 빠져들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생노병사의 모습을 접하여 거꾸로 관찰해 들어가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간의 온갖 번뇌와 괴로움이 나타나는구나 라고 아시고 끝없이 돌고 돌아가는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법다운 통찰만이 길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흐름을 끊어버리는 것- 이것을 환멸연기라고 합니다. 연기의 통찰을 통하여 스스로의 괴로움의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확인해보니 그 가장 바탕에 무명이라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이 모든 괴로움이 생겨났구나 아셨다는 것이지 무명이라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무엇이 실재하여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명을 바른법에 귀기울이지 않는 무지, 선지식의 가르침을 들으려 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념처의 관찰을 통하여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러한 원인이 있음을 찾아내신것입니다. 이러한 무명을 사람들이 힌두교의 사상에 짜 맞추어 근본무명이라 칭하며 전생의 업이 뭉쳐 어미의 자궁에 입태할 때 들어오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중음신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확인할 수 없는 중음신, 건답바와 같은 존재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현실의 법안에서는 허용될 수가 없는 것들임을 먼저 명확하게 사고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전생의 업개념은 베다시대 힌두교 사상속에 이미 전해져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명을 과거전생-현생-내생의 삼세양중인과의 틀안에서 상정되어진 무명으로 이해하여 연기의 법칙을 고정불변의 법으로 이해해버리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현실의 법은 절대로 현실에서 나타날 수가 없는 법이 되어 버립니다.
끝없는 전생 내생으로 돌고도는 어리석음의 법이 되어버릴 뿐인 것입니다.
삼세라는 것을 연기의 법칙에 비추어 이해하고자 하면 현생안에서 지나온 과거-현재-아직 오지 않은 미래 이러한 시각으로 사고해 들어가면 지금 내게 일어난 번뇌의 원인이 누구도 알 수 없는 과거 수억겁 전생의 업이 아니라 태어나 현생에서
내가 지은 신구의 삼업에 있음을 사고할 수 있고 그렇게 원인을 올바로 찾아내게 되면 번뇌는 자동소멸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연기의 법칙인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의 법칙은 어떤 고정불변된 체계가 따로 있어서 그것을 발견하셨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을 통찰함속에서 그러한 모습으로 번뇌가 시작되어 겉으로 표현되어 나오고 끝간데 없이 웃자라나 인간을 고통속에 가두는구나 알았다는 것입니다.
연기의 법을 알고 이해하고자 하면 먼저 괴로움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왜 괴로운가?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부터 시작해서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사고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끝없는 번뇌속에 가두는 원인을 스스로의 내면으로 들어가 발견해 내신 것입니다.
윤회하는 주체가 연기의 법칙이다... 이런 것을 찾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현실의 것이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을 통찰하여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괴로움의 원인을 외부나 타인에게 돌리는 자는 알 수가 없는 법입니다.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는 인간들에게 이 법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법임을 부처님은 미리 아시고 이 법을 알고 보는 자는 희구하고 희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법을 알고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길은 모두 부처님께서 밝혀 놓으셨는데도 그 길을 따라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간은 실로 많지가 않습니다.
연기의 법칙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개념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바른 법의 개념을 세우고 끊임없이 법에 귀기울이고 자기자신의 문제와 대면하여 법을 비추고 허망한 인식의 일어남을 똑바로 보고..이러한 과정을 수도없이 거치면서 자기안에서 연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없이 이론으로 연기를 알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고 끝없는 희론과 분분한 논설만 낳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이러한 논설과 희론은 끝없는 번뇌망상으로 이어져 갈수록 오리무중속으로 밀어넣는 외에는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고하여 연기의 흐름을 자기자신속에서 보게 되면 자신안에 일어나는 번뇌망상의 원인을 자기안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나의 영속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자아의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고
자아라는 것이 사실 있지도 않은 것인데 살아있고자 하는 욕망이 바탕이 되어 기억으로 이어져 '나'라는 것이 영속하고 불변한다고 믿게 되는 전도몽상을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영속을 이어가는 것은 연기의 법칙도, 8식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나'라는 것이 있다고 믿고 집착하는 욕망 그것에 묶여드는 어리석음이 있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바로 이 어리석은 자아의 집착과 욕망을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 방법을 통찰하여 설해 주신 것이 연기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 글을 퍼왔습니다.
출처 :송암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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