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유경 81~90
백유경
81. 선인(仙人)을 보고 활을 쏜 아버지
옛날 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길을 가게 되었다. 아들이 숲에 들어갔다가 곰을 만났다. 아들은 곰 발톱에 몸이 찢기어 황급히 숲을 나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의 몸이 몹시 상한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너는 어째서 그런 상처를 입었느냐?"
아들은 대답하였다.
"몸의 털이 긴 어떤 동물이 와서 나를 해쳤습니다."
아버지는 곧 활을 가지고 숲으로 가서 털이 긴 어떤 선인(仙人)을 보고 활을 쏘려 하였다.
옆 사람이 물었다.
"왜 그를 쏘려 하십니까? 저 사람은 아무 해가 없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다스려야 합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다.
비록 그가 법복을 입고 무도한 자에게 모욕을 당하였다 하더라도, 함부로 선량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해치면 그것은 곰이 그 아들을 해쳤다 하여 아버지가 억울한 선인을 해치려 하는 것과 같다.
82. 두 개의 다리를 여덟 개로 늘린 농부
옛날 어떤 농부가 고향에 갔다가 보리 싹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그 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리를 이렇게 무성하게 키웠는가?"
주인은 대답하였다.
"땅을 편편하게 고르고 거기에 분뇨와 물을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는 곧 그대로 물과 똥을 밭에 주고, 거기에 종자를 부리려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제 발로 땅을 밟아 땅이 딱딱해져서 보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평상에 앉아 사람을 시켜 메게 하고, 그 위에서 종자를 뿌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곧 네 사람을 시켜 한 사람이 평상 다리 하나씩 들게 하고 밭에 가서 종자를 뿌렸다. 그러자 땅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보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되어 두 개의 발을 여덟 개로 늘렸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다.
범부도 그와 같다.
이미 계율의 밭을 다루어 장차 좋은 싹이 나게 하려면, 마땅히 스승에게 나아가 묻고 그 훈계를 받아야 하는데, 도리어 그것을 어기고 온갖 악을 많이 지어 계율의 싹이 나지 않게 하니,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두 개의 발을 두려워하여 도리어 여덟 개로 늘린 것과 같다.
83. 어린애를 미워한 원숭이
옛날 어떤 원숭이가 어른에게 매를 맞았으나 어찌할 수가 없어 도리어 그 집 어린애를 원망하였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그와 같다.
먼저 남의 미움을 받으면 그 뒤 계속하여 보복하니, 이미 과거에 사라졌던 것이 뒤에 생기는 일까지 계속된다. 그것은 이른 바 앞의 사람이 망령되이 성을 내면 그 독이 더욱 깊어 가는 것과 같으니, 마치 저 어리석은 원숭이가 어른에게 매를 맞고 도리어 어린애를 미워하는 것과 같다.
84. 월식할 때 개를 때리는 이유
옛날 아수라왕이 해와 달이 밝고 깨끗한 것을 보고 손으로 그것을 가리어 버렸다.
무지한 사람들은 그것을 월식으로 알고 아무 죄 없는 개를 제멋대로 때렸다.
범부도 그와 같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써 이유 없이 제 몸을 괴롭힌다. 그리하여 가시밭 위에 눕기도 하고 다섯 가지 뜨거운 것으로 몸을 지지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월식할 때 죄없는 개를 때리는 것과 같다.
85. 눈병이 무서워 눈을 없애 버린 사람
옛날 어떤 여자가 심한 눈병을 앓고 있었다. 그와 친한 어떤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눈병을 앓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눈이 있으므로 눈병을 앓는다."
그 여자는 다시 말하였다.
"눈이 있으면 반드시 눈병을 앓는 법이다. 그렇다면 비록 아직은 눈병을 앓지 않지만 나는 내 눈을 도려내고자 한다. 나중에 눈병을 앓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옆 사람이 말하였다.
"눈이 있으면 눈병을 앓을 수도 있고 앓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눈이 없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언제나 앓을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도 그와 같다.
'부귀란 쇠하고 걱정되는 것이니 보시하지 않으면 뒤에 그 갚음을 받을까 두려워한다'는 말을 듣고, 재물이 넘쳐흘러 거듭 고통을 받는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한다.
"만일 네가 보시하지 않으면 빈궁하여 크게 괴로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여자가 눈병을 걱정하여 그 눈을 도려내려는 것과 같다.
86. 귀고리 때문에 아들의 목을 잘라 버린 아버지
옛날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일이 있어 함께 길을 갔다. 길에서 갑자기 도적이 나타나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들의 귀에는 순금 귀고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도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고 귀고리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곧 손으로 귀고리를 당겼으나 떨어지지도 않고 귀가 찢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조금 뒤에 도적은 떠났다. 그는 아들의 머리를 다시 그의 목에 붙이려 했으나 본래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범부들도 그와 같다.
이름과 이익을 위하여 실없는 주장을 세운다.
'두 세상이 있다, 두 세상이 없다, 중음(中陰)이 있다, 중음이 없다'고 하여 갖가지로 망상을 내고 법의 진실을 얻지 못한다.
그 때 다른 사람이 법다운 논리로써 그의 주장을 부수어 버리면 그는 곧 "우리 주장 가운데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이름과 이익을 위하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여 수행의 도과(道果)를 잃고, 몸은 허물어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세 갈래 나쁜 길[삼악도]에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아들의 머리를 베는 것과 같다.
87. 도둑이 훔친 재물
옛날 어떤 도적 떼가 함께 도적질을 하여 많은 재물을 훔쳤다. 그들은 그것을 서로 똑같이 나누려고 하였다. 빛깔이 좋지 못한 보물 하나가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제일 나쁜 것으로 생각하여 제일 못난 사람에게 주었다.
못난 사람은 그것을 받고 몹시 화를 내었다.
"큰 손해다."
이렇게 화를 낸 그는 그것을 가지고 성안에 들어가 팔았다. 성안의 부귀한 장자들이 그에게 값을 비싸게 쳐주었다. 그 사람이 얻은 것이 여러 사람들이 얻은 것의 배나 되었다. 그제야 그는 한없이 기뻐하며 날뛰었다.
그것은 마치 세상 사람들이 보시의 공덕을 알지 못하고 작은 보시를 행하였다가 천상에 나게 되어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고는 비로소 널리 보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과 같다.
저 사람이 뒤에 많은 값을 받고서야 비로소 기뻐하는 것처럼 보시도 그와 같아서, 조금 행하고 많이 얻고서야 비로소 기뻐하며 더 많이 하지 않은 것을 한탄한다.
88. 한 개의 콩 때문에 많은 콩을 잃은 원숭이
옛날 원숭이 한 마리가 콩 한 줌을 들고 있다가 잘못하여 한 개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곧 손에 쥐었던 콩을 버리고 땅에 떨어진 한 개를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 한 개도 찾지 못하고 먼저 버린 콩은 닭과 오리가 모두 먹어 버렸다.
집을 떠난 범부도 그와 같다.
처음에는 한 가지 계율을 범하고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방일은 더욱 더 뻗어 가서 모든 것을 버리게 된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콩 한 개 때문에 콩 모두를 버리는 것과 같다.
89. 금족제비와 도사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금족제비 한 마리를 얻고는 몹시 기뻐하여 그것을 품안에 품고 갔다. 마침 강에 이르러 물을 건너려고 옷을 벗어 땅에 두었더니 그것은 이내 변해 독사가 되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차라리 독사에게 물려 죽더라도 꼭 품에 안고 가리라'고.
그의 지극한 마음에 감동되어 독사는 도로 금으로 변하였다.
옆에 있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독사가 순금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항상 그런 줄 알고 자신도 독사를 잡아 품속에 품었다가 그만 독사한테 물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다.
남이 좋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 속에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서도 다만 이익을 위하여 불법에 와서 붙는다. 그리하여 목숨을 마친 뒤에 나쁜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 독사를 품었다가 물려 죽는 것과 같다.
90. 돈주머니를 얻은 사람
옛날 어떤 가난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돈 뭉치를 주웠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세어 보았다. 그러나 미처 다 세기 전에 갑자기 그 주인이 나타나서 그것을 모두 도로 빼앗아 갔다. 그리하여 그는 빨리 가 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안타까운 나머지 심정이 매우 괴로웠다.
부처님의 법을 만난 사람도 그와 같다. 비록 세 보배[三寶]의 복밭을 만났더라도 부지런히 선한 법을 닦아 행하지 않다가, 갑자기 목숨을 마치고는 세 갈래 나쁜 길[삼악도]에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주인에게 도로 돈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오늘은 이 일을 경영하고
내일은 저 일을 만들면서
즐겨 집착하여 괴로움을 못 보다가
죽음의 도적이 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총총히 갖가지 일하는 것
범부로서 누구나 그러하거니
마치 돈을 세는 사람처럼
범부의 하는 일도 그러하니라.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