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동산

법륜스님 : 즉문즉설 답답하면 물어라

맑은 샘물 2011. 3. 1. 11:47

 법륜스님 :  즉문즉설 답답하면 물어라

 

 

 

 

 

 

 

 

[답답하면 물어라]는 수행자와 법륜스님간의 즉문즉설을 엮은 책으로

수행자들의 질문에 바로 설을 내놓다 답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p.178

어두워진 마음을

밝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마음이 갑자기 어두워짐을 느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마음이 금방 밝아질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란 여러 가지 상을 지음으로써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두워질 때는 칠흑같이 무거웠다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기도 하고, 먹물처럼 탁해졌다가도 수정처럼 맑아지는 것이 모두 다 마음이 짓는 바입니다. '마음이 탁하다'고 할 때는 주로 욕심 부릴 때를 말하지요. 사람이 욕심을 너무 부리면 더러운 인간이라 하기도 하고 세상에 많이 물들었다고 말합니다. 이 탐욕을 내려놓으면 사람이 깨끗해졌다, 맑아졌다고 하지요. 사람이 깨끗하다, 맑다고 말할 때는 소탈하게 살 때입니다. 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욕심이 없고 계율을 잘 지킬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청정하다, 맑다고 하지요. 사람의 깨끗하고 더러움은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 의무감만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주 가벼워져요. 보통 자신 없는 일이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때, 마음이 천 근처럼 무거워집니다. 의무감이 주는 부담 때문이지요. 종교인들은 대개 마음이 맑아요. 그러나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큰 짐을 진 듯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기 때문이지요. 이 사명감에 불타고 있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잘 웃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욕심을 내거나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훔치는 사람들을 범부 중생이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이나 화가 나는데도 그것을 참고 사는 것을 수행이라 알고 있는데,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단지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거지요. 이런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별 것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공하여 그 실체가 없는 줄 알게 되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수행한다는 것은 올라오는 감정이나 느낌을 억누르고 무시해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화날 때 왜 화나는지를 살펴보는 거지요. '아이고, 저 놈이 화를 돋우네!' 하고 남을 탓하지도 않고, '아, 또 내가 화를 내다니!' 하며 자기 학대를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 내가 또 화를 냈구나.' 이렇게 보고는 놓아 버리지요. 그렇게 하면 마음이 늘 가볍습니다. 얘기 할 때도 주저함 없이 흔쾌해지고 그것으로 인해 더 이상 무겁게 되지 않습니다.

 

인생에 의미를 너무 많이 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인생은 길가에서 자라는 작은 들풀 같은, 산에서 뛰어 노는 토끼나 다람쥐와 같은 삶입니다. 인생이란 특별한 게 아닙니다. 토끼라고 함부로 사는 것이 아니죠. 그렇다고 무게 잡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볍게 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는 어떠해야 한다는 정해진 상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때에도 마음이 어둡지요. 마음이 밝은 사람은 별 생각이 없습니다. 웃고 싶으면 웃고, 가고 싶으면 가고, 이렇게 좀 밝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 마음은 밝지가 않고 늘 우수에 젖어 있고 생각이 많습니다.

 

집착을 놓게 될 때 탁하던 마음이 수정처럼 맑아지고, 천 근처럼 무겁던 마음이 깃 털처럼 가벼워지고, 칠흑처럼 어둡던 마음이 금방 대낮처럼 밝아진다는 이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p.144

인생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합니까?

 

지난 번 법문 중에 스님깨서는 '인생에는 계획이 없고 일에는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인생에 대한 계획이 없다면 다만 인연 따라 사는 것인지요? 또 그 인연이라는 것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 지혜로운 인연을 맺을 수도 있고 어리석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는데, 살아가면서 내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계획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물론 상황 따라 다르겠지만, 포기해야 하는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이 두 개라 생각되는데, '인생에는 계획이 없고 일에는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는 제 개인 이야기였어요. 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계획을 세워놓고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스님이 되어야겠다, 결혼해야겠다, 뭐가 꼭 되어야겠다.'하는 생각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난민을 도와야겠다, 북한에 식량을 주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연구도 많이 하고, 계획도 치밀하게 세우고, 검토도 많이 하고, 답사도 많이 합니다. 일은 검토도 많이 하고 계획을 세워서 가능한 한 치밀하게 하는 게 좋고, 인생은 인연 따라 사는 게 좋다는 것이 제 인생관입니다. 모든 인생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존재의 이유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이 자꾸 이유를 찾는 거예요. 존재에는 이유가 없어요.

'너 어떻게 살래?' 하면 '어떻게'라는 것에 관해서는 생각해 볼 수 잇찌만, 왜 사느냐고 자꾸 물으면 ' 안 죽어서 산다.'고 하지요. 사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지금 그냥 살고 있는 겁니다.

 

어떤 일에 대해 계획을 세워서 하다가 계속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질문했는데, 어떤 남자를 좋아해서 따라다니는데 끝까지 따라다녀야 할 것인지, 안 될 게 뻔하니까 그만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뭐 이런 얘기겠지요. 포기하는 시점이 언제면 좋겟느냐? 그건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고민하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되느냐, 안 되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일을 하기로 했으면 성공과 실패를 생각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만 생각하면서 연구하는 겁니다. 될까 안 될까 하는 것은 번뇌예요. 안 되면 이렇게 저렇게 해 보는 그것이 재미고 인생입니다.

 

안 되었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계속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되면 성공한 게 아니라 그 일이 끝난 것이어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살면서 내가 얼마만큼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안 하기 때문에, 어떤 일 하나만 가지고 죽을 때까지 해도 상관없고, 해 보니 금방 이루어져서 죽을 때까지 만 가지 일을 해도 상관없지요. 그러니 돼도 일하고 안 돼도 일하고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