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에크하르트 톨레
제1장. 마음은 내가 아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족하다해도 존재의 기쁨과 흔들리지 않는 평화라는 참된 재산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자기 내면의 황금을 발견하지 못한 걸인입니다.
깨달음이란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붙잡을 수 없는 초월의 세계가 아닙니다. 깨달음이란 자신의 존재와 하나됨으로써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입니다. 이러한 연결 상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단절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스스로 외로운 섬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엄습하고 안팎으로 갈등이 생겨납니다. 붓다는 깨달음을 ‘번뇌의 끝’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성을 뛰어 넘어야만 깨달을 수 있다는 어떤 암시도 없습니다. 더 이상 번뇌가 없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붓다는 거기에 대해서 말이 없습니다. 그 침묵에 담긴 알맹이는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질은 내면의 고요한 세계와 일치합니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사실 엄청난 고통임에도 우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 생각의 소음이 내면의 고요 세계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만물의 배경을 이루는 ‘하나’의 상태에 머물러 전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가장 깊은 곳의 진정한 참나와 하나 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물질화된 세상 속의 생명력과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면 보이지 않는 장막이 생겨나 고정관념과 곡해가 생기고 자기 나름의 판단과 분별력으로 세상과의 장벽을 만들어 진정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장벽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모습과 형상들의 차원 밑바닥에서 당신은 진실로 만물과 하나입니다. 생각이라는 장막에 가려 그 본질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도구이지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내 것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고 기만입니다.
당신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풀어놓으라.
생각하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활성화되는 겁니다. 당신은 그제야 생각 너머에는 광대한 앎의 영역이 있으며 생각이란 단지 그러한 앎의 영역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 너머에서 온다는 것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마음속 목소리는 그때그때 자기 의견을 내놓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고,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는 당신의 조건화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란 당신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집단적인 문화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이 겪은 과거 역사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눈을 통해 현재를 보고 판단하면서 완전히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야말로 당신 자신의 가장 큰 적입니다.
그러니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가능하면 자주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십시오. 낡은 축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들려왔던 사고 유형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이 생각하는 자를 지켜보라는 의미입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저 듣고 목격자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자신의 현존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이 아니며 마음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그 생각뿐 아니라 그 생각의 목격자로서의 자신 또한 의식하게 됩니다.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으면 생각은 힘을 잃고 당신은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틈새가 점점 길어지면서 당신의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내면의 연결 상태 속에서 당신 자신은 훨씬 존재의 충만한 상태속에서 생명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순수 의식의 상태는 자기중심적인 상태가 없어지는 상태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지켜보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무심의 틈새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십시오. 손을 씻을 때에도 모든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물이 흐르는 소리와 물이 닿는 느낌, 손의 움직임, 비누의 향기 등을 놓치지 마십시오. 당신이 느끼는 내면의 평화가 어느 정도인지가 그 성공의 기준입니다.
깨달음이란 생각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마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흐름속세서 어떤 틈새를 만들 때마다 의식의 빛은 점점 더 밝아집니다. 더 이상 마음에 의존하지 않게 됨으로써 마음이 지어내는 내용물을 그리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 중에서 80~90%는 반복적인 잡념에 불과합니다. 생각의 행렬은 중독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독이란 내 마음대로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을 기초해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거짓된 자아를 ‘에고’라고 합니다. 에고는 마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에고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입니다. 에고는 항상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살아있게 하려고 합니다. 과거가 없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고는 미래에 자기를 투사함으로써 어떤 해방이나 만족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지금 이순간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생각은 의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의식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상태에 있을 때에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면의 중얼거림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은 광대한 의식영역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새 힘을 잃고 혼란에 빠지고,파괴적이 됩니다.
마음은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도구이지 창조적이지는 않습니다. 위대한 과학자들도 생각이 멈춘 순간의 고요한 상태에서 창조적인 돌파구가 열렸다고 말해왔습니다. 창조력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무심의 장소로부터 고요한 내면으로부터 나옵니다. 마음은 창조적인 충동이나 통찰에 형상을 부여할 뿐입니다.
인간의 세포안의 DNA에는 600쪽 분량의 책 100권정도의 지령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속에 작용하는 지성이 얼마나 광대한지 그리고 우리의 앎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당신의 생명과 육체라는 기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창조적이지 못한 이유는 생각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을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감정이란 마음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마음은 생각, 감정, 무의식적 반응까지 포함합니다. 감정은 마음과 몸이 만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감정이란 생각에 대한 몸의 반응입니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반영이라고 말할수도 있을 겁니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몸을 움츠리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두려움이라고 부르는 몸의 반응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강렬한 감정은 신체 내부에 생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따라서 생각을 목격하지 않을 수록 감정적인 에너지 소비가 더 많아집니다. 몸이 말하는 바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면 감정이 말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몸은 항상 마음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의 감정 상태가 진정한 당신 자신은 아니지만 그 당시 마음 상태에 대한 상대적인 진실인 것입니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반면 감정은 주로 몸 안에서 느껴집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십시오. 지금 내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이 질문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켜줄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은 서로를 돌고 도는 못된 습성이 있어서 서로를 부채질 합니다. 일련의 생각들은 감정의 형태로 스스로를 확대하고 감정의 진동 주파수는 처음의 생각들에 에너지 보태면서 서로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모든 감정은 진정한 자신에 대한 인식을 상실함으로써 느끼게 된 원시적인 감정이 변형된 것입니다.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이런 감정은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만큼 그냥 ‘고통’이라고 부르는 편이 적당할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하는 주요한 과업중 하나는 이러한 감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그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토록 분주한 것은 바로 이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마음자체가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에 마음은 당신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경찰서장이 불을 질러 놓고 방화범을 찾아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너머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존재의 심오한 상태입니다. 생각의 흐름속에 틈새가 생길 때면 언제라도 사랑과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잠시나마 심오한 평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쾌락은 항상 외부에서 오지만 기쁨은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쾌락과 고통은 순수한 기쁨을 가릴 수는 있지만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본래 처해 있던 상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잔뜩 흐려 있을 때에도 태양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탐욕은 순수한 존재의 기쁨 대신 외부 세상과 미래에서 구원이나 만족을 추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는 자유나 깨달음에 대한 바람조차도 미래의 만족이나 완성을 위한 또 다른 집착에 불과합니다. 욕망으로 벗어나서 깨달음을 성취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십시오, 마음을 지켜보는 자로 남아야 합니다.
붓다의 말을 인용하지 말고 붓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대로 깨달은 자가 되십시오.
에고를 가진 인간들은 스스로 근원과 이어지지 못하고, 서로에게 이어지지도 못한 채, 우주를 떠도는 무의미한 조각들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자기와 동일시함으로써 고통을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한 감정적인 고통은 육체의 고통과 질병의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부정과 긍정은 동전의 양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에고의 상태로 있는 한 잠재적 고통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제2장. 고통에서 벗어나기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분주히 움직이는 마음을 지켜보지 않는 한 고통은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부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마음은 어째서 지금을 습관적으로 부정하는 것일까요? 마음은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지금을 위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지구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무한히 창조적인 존재의 잠재력과 생명력은 시간에 의해 가려지고 진정한 본성은 마음에 의해 흐려지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시간의 무거운 짐이 끊임없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무시하고 실재하지 않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금을 축소해 버리면서 매번 그 짐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현재의 순간만이 내가 갖고 있는 전부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을 삶의 구심점으로 삼으십시오.
‘지금 이순간’에 살면서 실제로 필요한 경우에만 과거와 미래를 잠깐씩 방문하도록 하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나서 행동을 취하십시오. 지금의 순간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지금’의 힘에 접속되지 않으면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적인 고통은 그 찌꺼기를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축적된 고통은 부정적인 에너지 장으로서 당신의 몸과 마음을 점령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에게 화를 내면 장차 그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곰곰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무지의 어둠에 휩싸이게 되고 우울한 기분이 들면서 지켜보는 자로서의 진정한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생각으로 바꾸지 말고,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자’로 침묵의 관찰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힘입니다.
고통의 몸체라 할 수 있는 업장은 여성의 경우, 월경이 시작되기 직전에 특히 고개를 듭니다. 일단 우리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거나 체험을 통해 현존하는 기본 원칙을 이해하면 우리는 가장 강력한 변신의 도구를 손에 쥔 셈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당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행이도 깨달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래서 그와 함께 현존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면 당신 자신의 빛은 빠르게 밝아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두려움은 죽음과 소멸에 대한 에고의 두려움입니다. 에고의 한 구석에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상태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내가 옳든 그르든 그것이 자의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한 욕구는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관계를 좀먹는 모든 파워 게임과 알력은 거기에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에고는 온전함을 찾아 헤맨다.
에고의 마음에 내재하는 감정적인 고통의 한켠에는 불완전함이나 결핍에 대한 감각이, 온전하지 않다는 감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고는 자아를 느끼고자 하는 마음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자신을 외부에 있는 것들과 동일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방어하고, 무언가로 배를 채워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아마 아직은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아무리 늦어도 죽음이 임박해 올 무렵이면 그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상대적인 시간 개념을 떠나는 의식의 대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아주 평온하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현존 의식이 대신 들어서는 것입니다.
제 3장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마음속에서 나를 찾지 마라
마음이란 근본적으로 잘못 작용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거기서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삼을 이유도 없습니다. 마음 자체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훌륭한 도구입니다. 마음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마음 안에서 찾고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에고의 마음이 되어 우리의 삶 전체를 차지해 버리고 맙니다.
마음에서 시간을 멈추어 버리면 마음은 멈춥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선물하고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구원과 성취를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환상입니다. 당신이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시간에서 벗어난 한 지점인 ‘지금’입니다. 당신이 과거와 미래에 초점을 맞출수록 당신은 가장 소중한 ‘지금 여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 여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과거를 용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지금’입니다. 현재 순간에 충실하면서 깨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단순한 움직임 하나에도 고결함과 봉사와 사랑의 의식이 스며들게 됩니다.
행동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행위자체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 열매는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이 길이 카르마요가의 길입니다. 주의력을 지금에 집중하는 순간 당신은 고요함과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제4장. 마음은 지금을 교묘히 회피한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 진리를 몸으로 체화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울 때 더욱 깨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현존의 힘이 자라납니다. 생각과 감정을 배워서 자신의 내면에 일상적인 무의식이 배경처럼 깔려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나면 당신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비인간적인 산업문명은 근본적으로 현존의 상실에서 나온 것이고 지금에 저항하는 마음이 집단적으로 부작용을 낳은 결과입니다. 그러니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는 만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십시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십시오. 마음이 어떤 생각을 만들고 있나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몸속으로 주의를 돌려보십시오. 당신 마음이 당신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만들고 있습니까? 그로 인한 감정은 유쾌합니까? 불쾌합니까? 당신은 그 감정을 당신 내부에 갖고 있기로 선택한 적이 있습니까? 안이 깨끗해야 밖도 깨끗한 법입니다. 내부가 정화된 사람이라면 외부를 오염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행복은 미래에 올 수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니 기다림이란 마음 상태를 버리십시오. 기다림 속에 빠져드는 자신의 모습이 포착되면 거기서 자신을 끌어내십시오. 현존의 순간으로 들어가서 거기 있으면서 존재를 즐기십시오.
제5장 지금 여기에 깨어 있다는 것
예수나 붓다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릇된 스승에게 이끌린 사람들은 많았고 지금도 많습니다.
어둠은 빛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 6장. 몸 안에 뿌리내리기
물고기가 인간의 마음을 가졌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물이라고? 그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
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안으로부터 몸을 느끼는 것이며 몸 안의 생명을 느끼고 그로써 당신이 외적 형태를 초월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생각은 일종의 집단적인 병입니다. 그때 당신의 정체성은 완전히 마음의 활동으로부터 유래됩니다. 당신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는 보이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실재로서의 당신 자신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존재를 의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의식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주의력의 초점을 생각으로부터 도려 몸 안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손,발,다리,팔,당신의 배와 가슴속에서 생명을 느껴 보십시오. 몸 전체에 퍼져서 모든 기관과 모든 세포에 활기를 주는 미묘한 에너지 장을 느껴보십시오. 그냥 느끼면 됩니다.
육체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동물입니다. 하지만 동물적 본능에 점령당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자신을 육체로부터 분리시키고 몸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몸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종교가 생기자 이런 분리감은 ‘나는 나의 육체가 아니다.’는 믿음으로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항상 본질적인 변화과정이 일어나는 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진정한 스승은 육체를 혹사하거나 이탈하기를 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몸은 당신의 궁극적 실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에서 등을 돌리면 안 됩니다. 마음은 무상하고 유한하며 죽음의 상징인 몸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지만 그 몸 안에 당신 자신의 본질적이며 영구적인 실재가 숨어 있습니다.
당신이 최대한 내면의 몸에 계속 집중한다면 마음속에서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의력을 온통 마음과 외부 세계에 빼앗기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가능할 때마다 내면의 몸을 느껴보십시오. 몸에 거주하는 것은 언제나 현존의 본질적인 일부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즉시 내면으로 들어가서 몸 안의 에너지 장에 최대한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이것은 오래 걸리지 않으며 단 몇 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도전을 받는 그 순간에 해야 합니다.
당신이 내면에 주의를 집중하고 내면의 몸을 느끼면 의식이 마음으로부터 물러나 즉시 고요해지면서 현존하게 됩니다. 내면의 몸을 의식하게 되면 육체적인 측면에서도 혜택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육체의 노화가 상당히 늦추어진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몸의 에너지장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면역체계가 크게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몸은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당신이 몸 안에 현존하지 않을 때 침투해 옵니다. 정신적인 면역체계도 향상되어 쉽게 전염되기 쉬운 부정적인 감정의 세력권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냥 수긍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직접 시험해 보십시오.
면역체계를 증강시킬 필요를 느낄 때마다 당신이 할 수있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자기치유명상’이 있습니다. 확실하게 집중해서 사용하면 역시 효과가 있습니다. 그 명상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잠시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그리고 특히 밤에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당신의 몸에 의식을 흐르게 하십시오. 등을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누워 눈을 감으십시오. 처음에 잠시 동안 주의력을 집중할 신체부위를 선택하십시오. 아무 곳이나 좋습니다. 최대한 강렬하게 그 부위들 안의 생명력을 느끼십시오, 각 부분에 15초 정도씩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몇 차례 파도 치듯이 온몸에 의식이 흐르게 하십시오. 발끝에서 머리까지, 그리고 다시 거꾸로 흐르게 하십시오. 일분 정도만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 다음 몸 안 전체를 하나의 에너지 장으로 느끼십시오. 그 느낌을 몇 분간 유지하십시오.
내면의 몸과 접촉하기 어려울 때는 호흡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호흡을 하면서 복부가 약간씩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을 느끼십시오. 만일 그것이 눈에 보인다면 눈을 감고 자신이 의식의 바다라고 불리는 발광체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빛속에서 호흡하십시오. 그 발광체가 당신 몸을 가득 채우고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을 느끼십시오. 이제 당신은 당신의 몸속에 있습니다. 어떤 대답이나 해결책, 또는 어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몸 안의 에너지장에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고요함을 인식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생각을 다시 회복했을 때, 그 생각은 신선하고 창조적이 될 것입니다. 어떠한 사고 활동이든 생각과 내면의 고요함 사이를 왕복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몸 전체로 생각하십시오....
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용서하라
용서는 삶에 저항하지 않고 삶이 당신을 통해 살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마음의 본성이며, 마음이 만들어내는 거짓 자아는 투쟁과 갈등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용서하라고 했던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현재를 용서하는 것이 과거를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만일 지금 모든 순간을 용서한다면,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허락한다면 나중에 가서 후회할 일을 쌓지 않게 되는 셈입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무례하고 가슴 아픈 말을 하더라도 공격, 방어, 회피와 같은 무의식적인 반응과 부정적 감정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것이 그대로 당신을 지나쳐가도록 하십시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듣는 기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때는 마음으로만 듣지말고 몸 전체로 들으십시오. 몸 안의 에너지 영역을 느끼면서 들으십시오. 그러면 생각으로부터 주의력이 돌려져서 마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정으로 들을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이 생깁니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주로 마음의 교류입니다. 존재와 존재의 교류인 진정한 영적 친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어떠한 관계도 성장할 수 없으며, 그래서 수많은 갈등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삶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갈등과 다툼과 문제가 불가피하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면의 몸과 접촉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관계가 꽃 필 수 있는 무심의 빈터가 만들어집니다.
제 7장.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기
당신의 몸 안 어느 부위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면 그 느낌을 명상으로 연결하십시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10분에서 15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먼저 의자에 앉으십시오. 뒤로 기대지는 마십시오. 척추를 똑바로 세우시고 몸을 편안하게하면서 눈을 감으십시오. 몇 번 심호흡을 하십시오. 아랫배로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느끼십시오. 그러고 나서 몸 안의 에너지장을 전체적으로 인식하십시오. 느끼십시오. 생각하지 말고,,,, 가능하면 육체에 대해 아직 갖고 있는 마음의 이미지를 모두 버리십시오. 그 에너지장과 하나가 되면 더 이상 주체와 객체, 나와 내 몸이 따로따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이제 안팎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내면의 몸도 더 이상 없습니다. 몸 안으로 깊이 들어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순수한 존재의 영역에 머무르십시오. 물리적인 몸과 호흡과 신체의 감각을 다시 인식하게 되면 눈을 뜨십시오.
다시 현시된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당신은 잠시 버려두었던 형태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름, 과거,삶의 상황, 미래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당신은 이제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당신안에 있는 참된 현실을 잠깐이나마 경험한 것입니다. 그 현실은 당신과 분리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과도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영적수행을 해보세요. 부지런히 삶을 영위해 나가되 주의력을 완전히 외부세상과 마음에 빼앗기지 마십시오. 일부는 내면에 남겨두십시오. 내면의 몸을 느끼시고 내면 깊숙한 곳의 고요함을 느끼십시오. 당신은 신과 이 세상 사이에 놓인 다리가 됩니다. 이렇게 근원과 연결된 상태를 우리는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문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은 생각을 정지함으로써 열립니다. 이는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출발할 수 있는데, 의식적으로 호흡하거나 예민하게 한 송이 꽃을 바라볼 때, 그 순간 마음이 거기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확고하게 현존하고 있는 동안에는 굳이 생각을 정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이 자동으로 멈추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내맡김’ 또한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내면의 저항을 일으키는 에고가 어느 정도 약화되기때문입니다.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내면의 몸의 에너지 장과의 접촉(정문임), 확고한 현존,마음으로부터의 독립, 있는 그대로의 내맡김, 이러한 것들이 모두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문입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사용해도 됩니다.
열린 그 문으로 사랑이 들어옵니다. 당신이 할 일은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들어오는 문을 찾는 것입니다.
침묵에 귀 기울이라.
만일 당신이 보아야 할 곳을 알고 있다면 어디에서나 그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까? 차 지나가는 소리는?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곳에 현시되지 않은 세계의 현존이 느껴지지 않나요? 느껴지지 않는다면 소리가 들어가고 나오는 침묵 속에서 그것을 찾아보십시오. 소리보다 침묵에 더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외부의 침묵에 주의를 집중하면 내면의 침묵이 창조됩니다.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하나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모든 소리는 침묵에서 태어나서 침묵으로 돌아가서 소멸하며, 살아있는 동안에도 침묵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침묵은 소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그것은 현시되지 않는 세계의 일부입니다.
공간을 인식하라
물리학자들은 원자들 사이 거리는 엄청나게 벌여져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당신 육체나 보이는 고체들도 거의 완전히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게다가 모든 원자의 속은 거의 비어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현시되지 않은 세계는 이 세상에 침묵으로 현존할 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 펼쳐져 있습니다. 모두가 공간속의 물체에 주의를 기울일 뿐, 공간 자체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공간과 침묵은 본래 동일한 유와 무의 두 가지 측면입니다.
그것들은 내면의 공간과 내면의 침묵이 외부로 드러난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현시되지 않은 세계와 생생하게 연결된 상태라며, 눈에 보이는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생명체가 형상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인 생명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당신은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형상 있는 모든 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가장 위대한 기적은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고요함과 광활함이 공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안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하고 철저하게 현존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심의 고요한 내적 공간으로서 그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내면에 시간과 공간의 진정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간은 무심의 평온하고 끝없는 깊은 영역이며 시간은 현존, 즉 영원한 지금에 대한 인식입니다.
제8장. 성숙한 인간관계
당신이 현존으로 갈 수 있는 지점은‘지금 여기’밖에 없습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순간보다 당신을 깨달음에 더 가까이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당신이 지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지금에 주의를 깊이 기울이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미래에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결코 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 너머에서 생기기 때문에 대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깨우친 사람이 드문 만큼 지속적인 사랑도 드뭅니다. 마음과 동화되어 있는 한 당신은 외부에서 자의식을 끌어옵니다. 사회적 지위, 소유, 외모, 성공과 실패, 믿음 체계등 궁극적으로 당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각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특별한 관계가 생깁니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모든 것들이 이젠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입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당신의 삶에 의미를 주고, 당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단 하나의 초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느끼는 사랑이 그 반대 감정인 공격성, 감정적인 폭력, 집착, 소유 등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좀 더 완전하고 확실한 자의식을 필요로 하는 에고의 강한 욕구일 뿐이고, 상대방은 일시적으로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외부 대상일 뿐입니다. 중독은 당신의 고통(두려움, 결핍등)을 감추기 위해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중독은 더 이상 효과가 없을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때의 고통은 전보다 더 심하게 느껴집니다.
중독 관계에서 성숙한 관계로
중독 관계를 진실한 관계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속으로 더 깊이 주의를 돌림으로써 현존을 강화하십시오.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 대한 판단을 중단하고 당신의 파트너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십시오. 변화를 위한 가장 큰 촉매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지금 속에서 더 깊이 현존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누구도 가리거나 선택하지 않습니다. 태양빛이 만물을 가리지 않듯이 사랑은 어느 누구도 특별하게 대접하지 않습니다. 독점은 신의 사랑이 아니라 에고의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깨우침이요,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내면적인 변화에 관련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당신의 파트너나 다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은총과 사랑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변화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삐걱거릴 때마다 자신의 내면 상태에 대해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알아차린 그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당신의 삶을 영적수행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까요? 세상이 온전해지기를, 누군가 다른 사람이 깨우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말다툼을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마음가짐과 동화되어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고에게 당신을 넘겨준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가 무지의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당신의 파트너가 무지에 휩싸여 행동할 때에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마십시오. 판단은 한다는 것은 무지에서 나온 상대방의 행동을 그 사람과 혼동하는 것이거나, 자기 자신의 무지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놓고는 상대방이 그런 줄로 잘못 아는 것입니다. 서로를 탓하지 말고,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진정한 관계는 존재에 대해 깨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당신은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하나의 스크린처럼 여길 수 있게 됩니다. 당신 자신의 참모습을 느끼듯, 그 스크린 너머에 있는 상대방의 진정한 참모습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고통이나 무지에 싸인 행동에 직면했을 때에도 당신은 현존하면서 존재와 접촉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상대방의 모습 너머를 바라보고, 당신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의 찬란하고 순수한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출처 :가장 행복한 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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