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의 향기

참선입문(參禪入門) 참선의 올바른 자세

맑은 샘물 2010. 1. 3. 21:17

 참선입문(參禪入門) 참선의 올바른 자세

 

 

 

 

 

  

참선입문(參禪入門)

 참선의 올바른 자세

참선은 화두를 들고 하는 것이므로
일단 화두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화두는 갖가지 삿된 생각이 끊긴 경계이므로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경계입니다.
진리로 바로 들어가 언어도 끊어지고 모든 망견이 끊긴
그 자리에서 새롭게 자리잡은 불성,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을 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과 여러 조사스님께서
깨치신 법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선지식에 의지하여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닦아가야 합니다.

문자를 의지하지 않고 마음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이 참선의 수행방법입니다.
글로 쓰여진 교리를 수행법이라 생각하면서
일상생활을 진실하게 행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이정표를 잃게 됩니다.


대개의 화두는 그 내용에서 근본의심을 담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근본의심인지,
무엇이 바로 마음으로 들어가는 길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참선수행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지관일치(止觀一致)의 수행으로
깨달으신 것이니 만큼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에 의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즉 지(止)라는 마음을 항상 평등하게 유지하는
수행과 관(觀)이라는 진리가 무엇인가 아는 지혜를 함께 일치시켜
우주 만유에 흐르는 참 진리를 알고자 하는 자세에서 출발하셨습니다.

달마대사도 불교교학을 모두 통달하시고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사상을 선수행의 목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수행을 하는 불자들은 가르침의 법인 교학을 함께 하면서 마음을 닦는 선수행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참선수행을 하더라도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서 깨달으신 법을
그대로 체현하신 선지식의 지도를 반드시 받아 일심으로 화두를 들고
안정된 좌법과 호흡으로 행해야 합니다.

좌 선 의

좌선을 할때는 그 기초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뿌리가 깊을 수록 나무가 잘 자라듯이
기본적인 좌선의 법 식을 갖추는 것은 꼭 필요한 기초를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한국불교에서 널리 인정되는 좌선 의에 대하여 쓰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제방선원에서는 南宋 휘종(徽宗)때
자각(慈覺)선사가 지은 좌선의를 규범으로 하여 좌선하고 있다.
이 좌선 의는 간략에 치우친 감이 있기는 하나
좌선방식의 골격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아함경 말씀과 천태지관과 백장청규를 토대로 하 여
좌선의 전통적인 격식을 집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자각선사의 좌선의를 기본으로 보고,
호흡법에 대하여 부연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자각선사의 좌선의를 분석해 보면
좌선의 기본법식으로 열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큰 원을 발하는 것이고(誓願),
둘째는 모 든 인연을 놓는 것이며(捨緣),
세째는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고(調食),
네째는 잠을 조절하는 것이며(調眠),
다섯째는 처소를 선택하 는 것이고(擇處),
여섯째는 몸을 조정하는 것이며(調身),
일곱째는 호흡을 고르는 것이고(調息),
여덟째는 마음을 고르는 것이며(調心),
아홉째는 마장을 판단하는 것이고(辨魔),
열재는 두호하여 지켜나가는 것이다(護持).

*誓願-도를 배우려는 대장부는 무엇보다도 그 뜻이 커야 한다.
불보살의 서원을 자기 서원으로 삼아 수행하는 것이 보살인 것 이다.
그러므로 참선하는 자는 일체중생을 맹세코 건지겠다는
대비심과 대서원을 일으켜야 일으켜야 하니 ,
만약 자기 일신만의 해탈을 생각한다면
이는 보살일 수 없고 따라서 바른 도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捨緣-좌선하는 데는 마음에서 모든 생각과 인연을 다 놓아버려야 한다.
마음 속의 세간 잡사나 세간적 욕망이나 원한이나 구 하는 생각이나
잡념을 가지고 있고서는 그 마음에 밝은 달이 드러날 수 없는 것이다.

*調食-음식을 조정할 일이다. 힘을 낸다고 과식해서는 안된다.
수면을 줄이고 마음을 맑힌다고 음식을 너무 줄여서도 안된다.
선은 망념을 격파하여야 한다고 음식을 함부러 먹고 육단심(肉團心)을
내려하면 안된다. 수도인의 식기(食器)를 응량기라 하듯이
자기 양에 맞추어서 적당히 먹어야 한다.
먹고 싶은 양의 七부를 먹는 것이 선가식의 적량(適量)이다.
좋다고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거칠다고 덜 먹어서도 안된다.
음식은 이것이 몸을 부지해 가는 약이다.
이 약은 도업(道業)을 이루기 위하여 먹는 것이다 .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대하여야 한다. 오래 씹어 천천히 먹어야 한다.


먹으면서 잡념을 해서도 안된다.
생식(生食)을 하거 나 담식(淡食)을 하는 것은 권할 바가 못된다.
비시식(非時食)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단식은 병을 고치기 위한 이유외는 마땅하지 않다.
참선에서 그 양(量)을 알아서 먹는다고 한 것은 수행하는
정신자세와 환경을 꾸며가는데 중요한 것이므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일즙(一汁) 일채(一菜)가 선가의 식사지만 이 식사에 무성의하면 안된다.
식사를 고루하지 않으면 필경 마음이 고르지 아니하여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게 된다.

*調眠-잠을 고르게 자야 한다. 수면을 즐기는 자는 도에 들 수 없다.
그렇다고 수면을 너무 절제하여도 공부에 지장이 된다.
수면부족은 의식부족과 함께 퇴타 인연이 된다.
대개 처음 선에 드는 사람들이 잠을 줄인다고 애쓰는 것을 본다.
가상한 일이나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선 일정한 시간을 자는 것이다.
그리고 좌선의(坐禪儀)에 따라 정성스러이 공부해야 한다.
좌선의에 따라 좌선을 계속하면 절로 수면시간이 단축되는 법이다.
특히 좌선의 호흡법은 중요하다. 되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일이다 .


저녁 참선을 오래하고 늦게 일어날 생각하면 안된다.
저녁 공부시간을 줄이더라도 아침 공부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다.
혹 피 곤하다고 저녁공부를 궐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피곤할 수록 정성들여 좌선하여야 한다.
피곤한 밤의 30분 참선은 다음날 심신을 가볍게 하고 2시간의
수면을 절약시켜 준다. 수면은 망념에서 온다.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수행에 따라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든다.
수면시간을 지키려고 하지말고 오히려 좌선을 성실히 하면
저절로 수면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힘찬 정진을 할 수 있다.
대개 선원에서는 연중 한두 차례는 수면을 전폐하는 용맹정진을 갖는다.


그런 때에 평소부터 좌선자세를 엄격히 한 사람이라면
일주간의 용맹정진은 무난히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수면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 것을 기억할 일이다.
선객중에서 눕지 아니하 고 마냥 앉아 있는 용맹지사를 흔히 본다.
그리고 좌선 중에는 조는 것도 흔히 본다. 졸면 좌선이 아니다.
졸면서도 좌선코자 하 는 정신은 장하나 그것은 좌면이다.
그러므로 장좌불와(長坐不臥) 한다 하여 좌면하는 것을 권할 수는 없다.


공부는 마땅히 진실 하여야 한다.
잘 만큼 잤거든 오뚜기 처럼 일어나 공부를 잡두리 하는 것이
구도자의 자세인 것이다.

*擇處-장소를 가려야 한다. 자각 선사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말하였다.


古來로 좌선은 깊은 산중이나 세간을 떠난 한적한 곳 이나 세속과
경계를 달리한 사찰을 적당한 곳으로 일러왔다.
처음 좌선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소란스런 환경은 좋지 않다.
되도록 조용한 환경이 좋다. 그러나 조금만 좌선에 힘써 본
사람이면 무리하여 고요한 곳을 찾을 것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 은 간절한 발심과 착실한 좌선기초의 수업이다.
스스로 좌선의가 바로 서고 뜻이 간절하면 웬만한 장소면 다 상관이 없게 된다.


좌선에는 사찰의 선방이 제일 좋다.
모든 환경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깊은 산중 절이나 선원이 아니더라도 좌선하는 데는
서로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주변에서는 큰소리나 작은 소리를 없이 하여야 한다.
좌선중 부질 없이 출입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좌선자 이외는 출입을 삼가하게 한다.


비록 일정한 시간 만이라도 이렇게 고요한 환경을 가질 수 있다면
좌선장소는 어느 곳이라도 좋다.
상설선원이라면 항상 이런 여건이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선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적 정(寂靜)한 분위기에 젖게 된다.
처음 참선하는 사람은 소수인이 모이는 곳보다 되도록 많은
선중(禪衆)이 법다이 수행하는 곳을 택하여 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
일당에 여러대중이 엄숙하게 공부하는데 참여하면 부지부식간에
많은 힘을 얻게 되고 장난(障難 ) 없이 공부를 몸에 익힐 수 있다.
설사 약간의 힘을 얻었다 하더라도 될 수 있는 한 회중(會衆)에 머물기를 권한다.


토굴이나 기개인의 선원보다는 회중에서 얻는 것이 참으로 많다.
무엇보다 선지식 회하에 있다는 것이 어떠한 훌륭한 환경보다 나은 것이 다.
참선한다고 처소를 찾아 헤매는 사람을 흔히 보지만 처소는 처처에 있는 것이다.

 

산수경치나 산세지리를 관심에 두고 공부처 를 찾는 자는 진정한
공부인이라 할 수 없다.

*調身-몸을 바르게 고르어야 한다.
좌선할 때에는 우선 두꺼운 방석을 준비하고 허리띠를 늦추어
몸과 호흡을 자유스럽게 한다 .
그 다음에 방석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한다.
가부좌는 먼저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위에 겹친다.
그리고 왼쪽 발을 오른쪽 무릎 위에 포개는 것이다.
이것이 가부좌이고 또한 반가부좌도 무방하다.


반가부좌는 다만 왼발을 오른쪽발 위에 놓는 것이다.
그 다 음에 바른 손을 왼발 위에 놓고 왼손을 바른
손바닥 위에 겹치며 양쪽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둥굴게 맞댄다.
이것이 대삼마야인( 大三摩耶印) 또는 법계정인(法界定印)이다.
그 다음에 몸을 서서히 바로 일으키며 허리를 반듯이 편다.
이때에 몸을 전후로 약간 움직여서 허리를 단정히 세우고
또한 좌우로도 반복 흔들어 몸을 자연스럽게 단정하게 한다.
몸이 기울어지면 안된다. 앞으로 굽거나 뒤로 제쳐도 안된다.
어깨에 힘을 주어도 안된다. 턱은 당기고 눈은
반쯤 떠서 코끝을 보는 상태로 한다.

 

귀와 어깨가 서 로 대하고 코와 배꼽이 서로 대하도록 반듯이 한다.
혀는 입천정에 대고 입을 가볍게 다문다.
가부좌나 반가부좌일 때 익숙할 때 까지는 다리가 쉬 아프다.
그럴때는 너무 참지 말고 다리를 바꿔가며 앉도록 한다.
혹 다리가 저릴 때가 있다. 이런 때는 몸을 좌우로 약간 흔들면 가벼워 진다.


또한 허리에 힘을 주었을 때는 잠시 힘을 늦춘다.
공부가 순숙하여지면 어느덧 몸이 있는 줄을
모르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혹 다리나 어깨가 아파오더라도
이것은 좌선이 익을 동안 잠시 지나가는 것으로 알면 된다.
정법계인은 등한히 하기 쉬운데 마음을 안정시켜
정신을 집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니 등한히 여겨서는 안된다.


손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인을 맺어야 한다.
참선 초학자는 눈을 감기 쉽다. 그러나 반드시 떠야 한다.
옛조사는 눈감고 참선 하는 자를 흑산귀굴(黑山鬼窟)이라 하였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정신이 집중되는 듯하지만
어느덧 혼침에 떨어지기 쉽 다.
특히 오후나 새벽 좌선시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잠을 청하는 거와 같다.

 

그러므로 좌선 중 수면에 시달릴 때는 눈을 크게 뜨 도록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심하게 수마가 밀어닥쳐 오거든 어금니를 굳게 물고
두눈을 부릅뜨며 심호흡을 깊고 느리게 십여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들이쉰 호흡을 한참동안 단전부위에 가두고 견디다가 아주 천천히 토해낸다.
이렇게 하면 대개 졸음은 사라진 다. 좌선 중에 결코 졸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앉아서 졸음이 쫓아지지 않거든 일어서서
온 몸에 힘껏 힘을 주고 나서 앞서와 같 이 호흡하여 보라.
사라지지 않는 잠은 없을 것이다. 좌선은 수시 포행과 겸하는 것이 좋다.
오늘날 우리 한국선원에서는 50분 좌 선하고 5-10분간 선방내를
포행하는 것이 관례지만 포행시간을 좀더 늘려도 좋다.
포행할 때는 금강권을 하고 두손을 곧게 드리 우고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이때도 앉았을 때와 같이 호흡을 한다.
걸을 때 발끝과 온 몸에 힘을 반복해 주면서 서서히 걷는 것 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에 좌우를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오직 뚫어지게 앞만 보고 앉을 때와 같은 자세로 걷는 것이 다.
포행은 바로 행선이다. 앉았을 때와 같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포행은 피로가 풀리고 맑은 정신이 돌며 몸에 활기 를 준다.
따라서 용맹정진 때나 야간좌선시는 더욱 활기있게 포행할 필요가 있다.
(금강권은 엄지손가락으로 무명지의 아래 마디 를 누르고 주먹을 쥔 것.)

*調氣(調息)-호흡을 고르게 하여야 한다.
선에는 원래로 좌법도 호흡법도 필요 없지만
좌선하는 데는 반드시 좌선의 기법을 따 라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는 上氣 기타 신체상의 장애가 생겨 공부에
지장을 받을 때가 많다.


먼저 몸을 3,4회 전후 좌우로 흔들어 자세를 바르게 한다.
처음에 호흡을 한번 크게 내쉰다.(깊게), 다시 서서히 호흡을 들이쉰다.


이때 생각으로 호흡이 코에 서 가슴을 거쳐 배로,다시 아랫배(배꼽아래)
단전 부위에 이르는 것 을 관한다.
호흡과 생각과 함께 단전으로 모아지게 한다.
이 때에 너무 단전에로 힘을 모으려고 무리하게 힘쓸 것은 없다.
다만 요긴한 것은 생각과 힘이 호흡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 다.
숨을 들이쉴 때에는 비교적 가볍게 하고 토할 때는 되도록
정밀하게 서서히 하도록 한다. 호흡이 단전에 이르러서는 잠시 멈 춘다.


그리고는 서서히 밖으로 내쉰다.
역시 생각은 빈틈 없이 호흡을 추적하되 단전에서
가슴으로 다시 코로 내쉬는 것을 관하 여야 한다.
이렇게 한번 호흡하였을 때 [하나]하고 생각으로 센다.
한 호흡이 끝나면 다시 반복하여 열까지 세고 그 다음에는
다 시 하나부터 반복한다.


호흡은 들이쉴 때보다 토할 때에 더 정성을 드리도록 한다.
호흡은 항상 코로 한다.
속도는 평상시 보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하되 무리하지 않도록 한다.
호흡이 순숙해지면 자연히 미세하고 깊은 호흡이 되는 법이다.
호흡은 거칠면 안 된다. 서두르면 안된다.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고 하여야 한다.


몸에서 기운을 풀고 바른자세(특히 허리를 펼것)와 편안한 마음으 로
정성스럽게 하여야 한다.이상이 수식관(數息觀)의 기본 요령이다.
수식관이 익숙해지면 수는 헤아리지 않는다.
다만 호흡과정 만을 관하도록 한다.
호흡기초가 다져지면 공부에 큰 조도가 된다.
몸에서 병을 물리치고 수면이 단축되고 심신이 경쾌하여지며
정신집중력이 강해지고 의지에 의한 심신 통제력이 강화된다.
그리고 삼매를 키우는 터전이 굳어진다.
수식관은 반드시 참선한 선각자의 지도하에 행하여야 할 것을 거듭 말해둔다.


좌선기초가 익어지면 반드시 화두를 배워야 하므로 더욱 그렇다.

*調心-마음을 고른다. 이미 몸이 안정되고 호흡이 고르게 되면
저절로 번뇌가 끊어져 맑은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때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체 생각을 하면 안된다.
도 깨치기를 바란다거나,성인이 감응하기를 기다린다거나,
또는 이것이 좋은 공 부다 하는 분별심을 내어서는 안된다.
도무지 일체 생각을 말고 오직 공부를 지어갈 줄만 알아야 한다.
이것이 좌선의에 있어 마 지막 과정이다.

 

마땅히 선지식의 지시를 받아 공부를 지어가되 결코
그밖에 생각이 있어서는 안된다.
자각선사는 말하기를 {이와 같이 오래오래 지어가 모든 반연을
잊으면 저절로 한쪽(一片)을 이룰 것이니 좌선의 요긴한 기술이다.
생각컨대 좌선은 이것이 안락법문(安樂法門)인데 사람들이 도리어
병을 얻는 것을 흔히 보니 그 원인은 대개가
마음을 잘 못쓰는탓이라} 하였다.

*辨魔-공부하는 데는 마군의 장난이나 공부가 바로 되고
잘못됨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도가 높아지면 魔가 성한다.
마음이 밝아지고 삼매를 이루게 되면 스스로 여러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경계는 대체로 두가지다.
하나는 공부를 방해하고 마음을 흔들 리게 하는 마군의 장난이나
삼매력에 상응하는 기이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에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망념이 잠 복되어 있을 때,
혹은 경계를 대하여 마음에서 희한한 생각을 갖거나
그 경계를 인정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의 나타남이다.
밖으로 마의 장난이 온다든가,정력(定力)에 상응하는 기이하고
수승한 경계가 나타나는데에 관하여는 능엄경에 상세하다.
이러한 경계를 집착하면 공부가 퇴실한다.
경계가 나타나는 이유를 알아야 그에 대한 분명한 대책도 서는 것이니
공부인은 魔를 잘 분 별하고 대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선경계나 악경계는 그에 대한 마음에 있다.
첫째,마음이 어느정도의 정(定)을 이 루었을 때 그에 상응한 경계가 벌어진다.


정을 이루었을 때의 정의 핵심인 공부가 (예,화두) 분명치 않고
촛점을 잃었을 때 경계 가 벌어지는 것이므로 오로지
공부만 면밀하게 지어가면 일체 경계가 나타날 틈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공부인이 마음에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망념이 있으면 경계가 벌어진자.
그러므로 공부인은 일체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도 깨치기를 구하거나 불조 만나기를 바라거나 도가
현저하기를 기다리거나 하는 마음이 마를 부르는 초청장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세째는 마음이 본래로 형 상이 없는 것을 요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법은 마음에서 일어남이요,일심이 본래 형상이 없거늘
도문(道門)에 어찌 가히 나 타날 경계가 있을 것인가?] 하는
이 도리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에 경계가 나타났다는 자는 공부인의 마음자세 에
허점이 있거나 공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일단 알아 두어야 한다.

경계가 벌어지거든 공부가 곁길로 나 간 것을 곧 깨닫고
오직 본참공부를 향하여 마음을 돌려 면밀하게 지어가야 한다.
그러면 온갖 경계는 제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 로 없어지고
공부는 더욱 깊게 나아가게 된다.

 

공부는 오직 지어갈 줄만 아는 이것이 요긴한 것이다.
대체로 공부를 방해하는 선 악경계는 세 통로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요,둘째는 귀에 들리는 것이요,
세째는 마음에 알려오는 것이다.


공부 인이 이런 경계를 만나거든 모두가 다 아니라고 관하여야 한다.
아무리 경계가 수승하고 미묘법문을 설해오더라도
모두가 마경계 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가 벌어지는 원인이 자신의 마음에 샘(漏)
즉 망념의 뿌리가 남아 있어서 그런 줄을 알 고 마음을 크게 돌이켜
오직 공부에만 면밀하고 힘있게 파고 들어야 한다.
이런 때가 가히 지혜와 용맹심을 시험해 볼 만한 호시 절이다.

*護持-좌선 할때의 마음 상태를 어느 때나 끊임이 없도록 잘 지켜야 한다.
좌선에서 일어서 포행할 때와 같이 선실에서 나와 밖을
거닐더라도 항상 좌선하는 마음 상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좌선에서 일어서 나올 때는 조용히 몸을 움직이도록 하고 갑작
스레 일어서면 안된다. 자각 선사는 [어린아기를 다루듯이 하라]고 하였다.


또 자각선사는 定力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원각 경에도 [걸림이 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가 禪定에서 생긴다.] 하였다.


그런데 여기 정력이라 한 것에 대하여 한갖 마음을 움직 이지 아니하고 생각을 끊은 상태로 알아서는 큰 잘못이다.
여기의 정력은 좌선시의 고요하고도 말끔하고 또렷한 마음상태를 말하 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상태에서 지혜의 눈이 열리고 자성의 도를 보게 된다.
원래 참선법문은 습정(習定)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 고
견성(見性)을 말하고 철견(徹見)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원래로 습정이나 좌법이나 호흡법이라는 것이 논할 여지가 없다.


다만 말끔한 바른 눈초리에서 비로소 자성을 매(昧)하지 않는 것이므로 초참자에게 바른 눈을 열도록 좌선의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 다.
선실에서는 공부하다가 선실에서 빠져나오면 곧 망상과 잡사에 내맡기고 또 잠시 좌선하다가 다시 혼침산란에 빠져 든다면
이런 공부로는 횃불을 눈에 들어대도 마침내 불을 못 볼 것이다.


옛 조사가 이르기를 참선은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굴을 노리듯이,늙은 쥐가 궤짝을 썰듯이 하라.]고
하였으니 미루어 護持의 뜻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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