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28 ,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 누리지도 탐하지도 않는다
성동구청 분수대 앞에 핀 연꽃봉오리
월호스님 성동구청에서 생활법문 강의하시던 날 동참, 월호스님 싸인받았어요 향지산 촬영
금강경
28 ,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 누리지도 탐하지도 않는다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何以故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故 須菩提 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덕고 수보리 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須菩提 菩所 所作福德 不應貪着 是故 說不受福德
수보리 보살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 설불수복덕
28 ,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 누리지도 탐하지도 않는다
"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항하 강의 모래 수효 같이 많은 세계에
7보를 가득채워 보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온갖법이 나 없는 줄 알아서
확실한 지혜를 이룬다면 이 보살은 저 보살의 공덕보다 훨씬 나으리니,
수보리야 !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나이까 ? "
" 수보리야, 보살들은 지은 복덕을 탐내거나 고집하지 않으므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 하느니라. "
월호 스님의 한글 넉자배기 금강경
금강경 제28분과 : 복덕을 가지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
수보리야, 한 보살이 항하사와 같은 수의
세계에 - 가득 채운 칠보로써 보시하고,
다른 이는 일체 법에 " 나 없음" 을 알아차려
참아냄을 이룬다면, 이 보살은 앞서보다
얻은 공덕 뛰어나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보살들은 복과 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여, 어찌하여 보살들은 복과 덕을
받아 갖지 않습니까 ?
수보리야, 보살은 - 지은 바의 복과 덕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복과 덕을 받아 갖지
않는다고 설하니라.
28. 복덕을 가지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 (1)
무한한 보배가 담긴 다이아몬드 수트라, 금강경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공부 시간입니다.
다 같이 합장하시고 마하반야바라밀 세 번 염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네, 오늘도 행불 독송집「본마음 참나」88쪽 제28분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수보리야, 한 보살이 항하사와 같은 수의 세계에 가득 채운 칠보로써 보시하고, 다른 이는 일체 법에‘나 없음’을 알아차려 참아냄을 이룬다면, 이 보살은 앞서보다 얻는 공덕 뛰어나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보살들은 복과 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
네에... 오늘도 금강경 28분과 불수불탐분 이죠.
복덕을 가지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
이 앞서도 계속 나왔던 비유죠.
네에... 앞서서도 보살이 항하사와 같은 수의 세계 ...
항하사라는 것은 갠지스 강의 모래알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그렇게 많은 그런 숫자의 세계에 가득채운 칠보로써 보시하고, 또한 보살은 일체 법에 ‘나 없음’을 알아차려 참아냄을 이룬다면, 이 보살은 세상을 가득 채운 칠보로써 보시한 보살 보다 뛰어나다.
왜냐?
보살들은 복과 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
이 참아 낸다는 것
보살의 우리가 보통 육바라밀을 얘기하죠.
보시, 지계, 인욕
인욕 이게 바로 참아냄 이죠.
그런데 참아냄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나 없음을 알아차려 참는 것과
내가 있으면서 참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아법에 통달한 인욕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욕이다.’라고 하는 거죠.
왜냐?
내가 있으면서 나와 남을 갈라놓고 ‘저 사람이 나에게 이런 짓을 했지만 나는 참는다.’ 왜냐? ‘경전에서 참으라고 했으니까, 부처님께서 참으라고 했으니까, 월호스님이 참으라고 했으니까’이건 오래 못 갑니다.
왜냐? 내가 있기 때문에 억지로 이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땐 가는 터져 버립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더 큰 업장으로 크게 터질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있으면서 참아내는 것은 진정으로 참아내는 것이 아니고,
무아법에 통달에서 참아냄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참아냄이죠.
그것이 진짜 오래갈 수 있는거죠. 궁극적으로...
왜냐?
참는다고 하는 생각 ‘내가 저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참는다.’이런 생각 자체가 아상, 인상 이게 다 결부 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오래 갈 수가 없어요. 에... 금강경의 우리 앞부분에 그런 비유담이 나왔죠.
부처님께서 수행자로 있을 때에 가리왕이 와가지고, “네가 지금 내 궁녀들을 데리고 뭘 하고 있는거냐” 가리왕이 자기 궁녀들을 데리고 야유회를 왔다가 질펀하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낮잠을 잤죠. 낮잠을 자는 사이에 그 궁녀들이 그 근처로 꽃구경을 간 거예요. 다니다가 보니까 한 수행자가 나무 밑에 단정하게 앉아서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가서 이제 “당신 뭐하는 거요, 왜 그러고 앉아 있소?”하고 물어보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그때 낮잠을 자고 있던 가리왕이 일어나서 가보니까 아니 나의 궁녀들이 저 수행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바로 질시가 난거예요. ‘내 것인데...’ 그래가지고 수행자에게“당신 지금 뭐하는 거냐”고, “내 궁녀들을 히롱하려고 하는 거냐”고 다그치니까 그 수행자는 사실 아무죄도 없죠. “나는 그저 나무 밑에 앉아서 참선하고 있었을 뿐인데 당신의 궁녀들이 와서 나한테 말을 붙였을 뿐인데 내가 이걸 그래서 말을 붙이 길래 대답을 해줬을 뿐인데 왜 나한테...”이렇게 대답을 한거죠. 그냥 있는 그대로 그러나 이왕은 질투심에 마음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갈 수 없어요. “어~ 그래 니가 진정한 수행자냐? 그렇다면 수행자는 잘 참아낸다 던데 팔을 끊어도 괜찮겠네?”그래서 팔을 끊었습니다. 다리도 끊었습니다. 이거로 수행자를 시험에 들게 한거죠. 그랬을 때에 이 수행자는 정말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거기에 분한 마음 한탄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요.
그게 바로 무아법에 입각한 인욕이라고 해요. 그게...
너무나 억울한 상황에서도 분노하거나 한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다시 몸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오히려 가리왕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 자리에서 분노하거나, 한탄했다면 그런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질 수가 없었죠. 그러나 분노하고, 한탄하지 않고 무아법에 통달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인욕이 된 것입니다.
오가해에 야부스님 게송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이처여롱이요 구설여아로다.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되 벙어리와 같도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적 있죠. 제가 인천 용화사 선방에서 살 때에 그 법당 앞에 원숭이가 세 마리 있었다. 한 마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고, 한 마리는 두 눈을 가리고 있고, 한 마리는 두 귀를 가리고 있었다.
석조로 만든 원숭이 상이 지금도 있다고 합니다.
헌데 그게 바로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잘 표현한 거다.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여도 벙어리 같고’이런 마음가짐이야 말로 진정한 인욕바라밀이다. 이걸 나타내 주는 거죠.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에 분별이 나지 않음이요, 입을 열고 혀를 움직여도 분별이 나지 않음이다. 나지 않는 것까지도 나지 않으면 어찌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와 같을 뿐이리오. 이는 곧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춤과 같고 빈 벙어리와 같을 뿐이리오. 이는 곧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춤과 같고 빈 골짜기가 소리에 응함과 같아서 비추고 응하되 비추고 응한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말하되 항상 모든 근(육근)에 응하여 쓰되 그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라.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추는 것과 같다는 거죠. 밝은 거울에 때가 끼지 않으면 사물을 비추는 것과 같죠. 또 빈 골자기가 소리 없는 것과 같다. 골자기가 쫘악 비어있으면 메아리가 더 잘 친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것이야 말로 분별심을 쉬되 분별력을 증장하는 경지죠. 오히려 말을 안 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말하고 싶어도 벙어리인 척 이렇게 수행을 하다 보면 오히려 진정으로 보이고, 진정으로 들리고, 진정으로 말 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분별심은 쉬어짐
분별심이 쉬어 질수록 분별력은 증장 한다는 거죠. 판단력은 오히려 더 명단해 집니다. 그것은 무엇과 같느냐 마치 저 맑은 거울이 사물을 비춘거와 같고, 빈 골자기가 소리에 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경지가 올라서게 된다는 거죠. 그것이야 말로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은 그런 경지라고 하는 것 입니다.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
월호스님 금강경강의 : BBS 불교방송에서
해 설
不受不食分 (第 二十八) 제 28 : 불수불탐분
①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고(知一切法無我) :
일체법(一切法)이란, 일체 만물이 갖는 진리와 같은 것이다. 이 일체법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무아를 알아야만 한다.
일체법에서 무아임을 알았으면, 인(忍)을 얻을 수 있다. 인(忍)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시기하지 않는 마음(瞋心)을 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진리에 안주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법을 인정하면 자연히 무아임을 알게 되며, 따라서 인(忍)을 얻어 행(行)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일체법(一切法)
② 인(忍) :
원어 크산티(Ksanti)의 의역. 인내, 즉 참는 것 외에, 인가결정(忍可決定)의 뜻으로도 쓰인다.
인가결정이란 인정하여 확실하게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환경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성내거나 불쾌한 마음을 내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 또는 도리에 마음을 순응시키어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러, 외부에서 오는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말할 때도 있고, 또
확실히 인정하여 확정한다는, 인가(印可)의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인에는 2인(二忍), 3인(三忍), 4인(四忍), 5인(五忍), 6인(六忍), 10인(十忍), 14인(十四忍)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2인(二忍)은 중생인이라고 하며, 일체 중생에게 성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참는 것을 말한다. 2忍이란 말은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의 두 가지를 뜻하는 것이다.
생인(生忍)은 남이 나를 욕하고 때리고 해롭게 해도 성내지 않고 잘 참는 것이며,
법인(法忍)은 추위 · 더위 · 굶주림 · 생로병사 등에 대해 번민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잘 참고, 희노애락 등 정신적인 번뇌를 잘 참아내는 것이다.
3인(三忍)은 내원해인(耐怨害忍) · 안수고인(安受苦忍) · 관찰법인(觀察法忍)의 세 가지를 말하고,
4인(四忍)은 무생인(無生忍) · 무멸법인(無滅法忍) · 인연인(因緣忍) · 무주인(無住忍)의 네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무생인(無生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자성이 공적(空寂)해서 본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서 보살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참아가는 것이다.
무멸법인(無滅法忍)은 일체의 법은 본래 생기는 법도 없고 또한 멸하는 법도 없는 것이라는 진리를 몸소 인정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인연인(因緣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인연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며,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보살이 이 법을 몸소 인정하게 되면 금계(禁戒)의 죄를 능히 초월한다.
무주인(無住忍)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5인(五忍)은 복인(伏忍) · 신인(信忍) · 순인(順忍) · 무생인(無生忍) · 적멸인(寂滅忍)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다시 또 인을 행하는 사람은 우선 때리거나 욕하는 자를 보면,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같이 하여 그 성내거나 욕하는 것에 더욱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이것을 사랑함이 더욱 더 깊어진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는 그 업인연은 전세에 내 스스로가 지은 것이다. 지금 마땅히 이것을 받아야 한다. 만일 성을 내면 과보를 더욱 지어 나중에도 또 苦가 된다. 언제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 ? 만일 이것을 참는다면 苦를 떠날 수 있으리라. 이 때문에 성을 내서는 안된다' 라고.
이와 같이 모든 인연으로 성냄을 힐책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중생인(衆生忍) 가운데로 들어선다. 들어서고 나서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는, 아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다. 단지 제법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수많은 관목인(關木人)의 행위와 같이 능히 동작한다 하더라도 안으로 主가 없다.
身도 또 이와 같아서 단지 피골(皮骨)이 상지(相持)하고 심풍(心風)이 바뀜에 따라 생각들도 생멸하여, 무상공적(無常空寂)으로서 짓는 자도 없다. 본래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다. 단 진도허광(瞋倒虛狂) 때문에 범부의 마음에 집착함이 있을 뿐이다>라고. 이와 같이 사유하고 나면, 중생은 없다.
중생이 없으면 이미 법이 속할 바가 없다. 단지 인연이 화합할 뿐으로 자성(自性)도 없다. 중생이라는 것은 화합을 견고히 하여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법도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이해서 법인(法忍)을 얻는다. 이 중생인과 법인을 얻기 때문에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대정신수대장경' 25, p.281 上 中]
③ 복덕(福德) :
복은 복리,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 복되게 하는 것이고, 德은 얻었다는 뜻이다.
즉 복을 얻었다는 뜻으로 복덕이라 한다.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고(知一切法無我) :
일체법(一切法)이란, 일체 만물이 갖는 진리와 같은 것이다. 이 일체법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무아를 알아야만 한다.
일체법에서 무아임을 알았으면, 인(忍)을 얻을 수 있다. 인(忍)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시기하지 않는 마음(瞋心)을 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진리에 안주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법을 인정하면 자연히 무아임을 알게 되며, 따라서 인(忍)을 얻어 행(行)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인(忍) :
원어 크산티(Ksanti)의 의역. 인내, 즉 참는 것 외에, 인가결정(忍可決定)의 뜻으로도 쓰인다.
인가결정이란 인정하여 확실하게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환경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성내거나 불쾌한 마음을 내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 또는 도리에 마음을 순응시키어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러, 외부에서 오는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말할 때도 있고, 또
확실히 인정하여 확정한다는, 인가(印可)의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인에는 2인(二忍), 3인(三忍), 4인(四忍), 5인(五忍), 6인(六忍), 10인(十忍), 14인(十四忍)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2인(二忍)은 중생인이라고 하며, 일체 중생에게 성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참는 것을 말한다. 2忍이란 말은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의 두 가지를 뜻하는 것이다.
생인(生忍)은 남이 나를 욕하고 때리고 해롭게 해도 성내지 않고 잘 참는 것이며,
법인(法忍)은 추위 · 더위 · 굶주림 · 생로병사 등에 대해 번민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잘 참고, 희노애락 등 정신적인 번뇌를 잘 참아내는 것이다.
3인(三忍)은 내원해인(耐怨害忍) · 안수고인(安受苦忍) · 관찰법인(觀察法忍)의 세 가지를 말하고,
4인(四忍)은 무생인(無生忍) · 무멸법인(無滅法忍) · 인연인(因緣忍) · 무주인(無住忍)의 네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무생인(無生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자성이 공적(空寂)해서 본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서 보살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참아가는 것이다.
무멸법인(無滅法忍)은 일체의 법은 본래 생기는 법도 없고 또한 멸하는 법도 없는 것이라는 진리를 몸소 인정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인연인(因緣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인연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며,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보살이 이 법을 몸소 인정하게 되면 금계(禁戒)의 죄를 능히 초월한다.
무주인(無住忍)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5인(五忍)은 복인(伏忍) · 신인(信忍) · 순인(順忍) · 무생인(無生忍) · 적멸인(寂滅忍)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다시 또 인을 행하는 사람은 우선 때리거나 욕하는 자를 보면,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같이 하여 그 성내거나 욕하는 것에 더욱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이것을 사랑함이 더욱 더 깊어진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는 그 업인연은 전세에 내 스스로가 지은 것이다. 지금 마땅히 이것을 받아야 한다. 만일 성을 내면 과보를 더욱 지어 나중에도 또 苦가 된다. 언제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 ? 만일 이것을 참는다면 苦를 떠날 수 있으리라. 이 때문에 성을 내서는 안된다' 라고.
이와 같이 모든 인연으로 성냄을 힐책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중생인(衆生忍) 가운데로 들어선다. 들어서고 나서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는, 아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다. 단지 제법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수많은 관목인(關木人)의 행위와 같이 능히 동작한다 하더라도 안으로 主가 없다.
身도 또 이와 같아서 단지 피골(皮骨)이 상지(相持)하고 심풍(心風)이 바뀜에 따라 생각들도 생멸하여, 무상공적(無常空寂)으로서 짓는 자도 없다. 본래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다. 단 진도허광(瞋倒虛狂) 때문에 범부의 마음에 집착함이 있을 뿐이다>라고. 이와 같이 사유하고 나면, 중생은 없다.
중생이 없으면 이미 법이 속할 바가 없다. 단지 인연이 화합할 뿐으로 자성(自性)도 없다. 중생이라는 것은 화합을 견고히 하여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법도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이해서 법인(法忍)을 얻는다. 이 중생인과 법인을 얻기 때문에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_()_
'심금의 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경 30 ,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 하나로 된 이치의 모습 (0) | 2010.02.10 |
---|---|
금강경 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 나타난 위의가 고요하다 (0) | 2010.02.10 |
금강경 27 ,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0) | 2010.02.10 |
금강경 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 법신은 형상이 아니다 (0) | 2010.02.10 |
금강경 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 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다 (0) | 2010.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