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동산

“경허, 주색 후회하며 삼수갑산 은둔”

맑은 샘물 2012. 5. 11. 01:14

“경허, 주색 후회하며 삼수갑산 은둔” : 윤창화 대표, <불교평론>에 ‘경허의 주색…’ 논문 발표

 

 

 

 

 

윤창화 민족사 대표

 

 

 

 

“경허, 주색 후회하며 삼수갑산 은둔”

 

경허 “잘못 알지만 습기 때문에”

경허 열반 100주년은 지계정신 고취 강조

“경허 선사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됨을 알았으며 그로 인한 비난으로 삼수갑산에 은둔했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받는 경허 선사의 입적 100년을 맞아 그의 무애행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와 눈길을 끈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8월 30일 발간예정인 <불교평론> 가을호의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 논문에서 경허 선사가 자기 자신의 삶을 변명하거나 후회한 내용들을 최초로 소개했다.
 

이 논문에서는 경허 선사 스스로 자신의 삶에 내린 평가가 실려 있다.
윤창화 대표는 ‘경허와 화엄사 강백 진응(震應) 스님과의 대화’를 예로 들며 경허 선사가 주색과 같은 자신의 행위를 후회했다.
 

 

대화에서 진웅 스님은 “낮이면 술, 밤이면 여자를 부르라하는데 해인사 인파(印波)화상은 일평생에 색(色)을 멀리하며 설한풍에도 마루에서 가르쳤다하는데 어찌 화상은 그만한 것도 제어못하니 후생의 사범(師範)이 되기를 기약하겠습니까?”라고 물었으며 이에 경허 선사는 부끄러움을 토했다고 전한다. 경허 선사는 “‘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 風靜波尙湧, 理顯念猶侵(돈오는 비록 부처와 동일하지만 다생의 습기는 깊어서, 바람은 고요해도 파도는 용솟음치고, 이치는 분명하지만 생각은 여전히 침노한다)’는 선어록의 글을 들며 당신이 출가한 광주 청계사 풍토가 그러해 습기로 어쩔 수 없다”고 잘못을 인정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윤창화 대표는 경허 선사는 자신의 주색에 대해 “대승은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고 식색은 인간 본능이다”고 말한 부분을 들며 이러한 경허 선사의 입장이 후대에도 지계정신에 대한 중요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삼수갑산행은 비난에 대한 은둔
 

윤창화 대표는 이러한 경허 선사의 행위로 인해 당시 불교계에서도 경허 선사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경허 선사는 말년에 결국 자신의 행위가 불교계 폐해를 끼침을 인식했다”며 경허 선사가 <취은화상행장>에서 ‘부처님 교화에도 폐단을 끼쳐 백가지 잘못을 함께 일으켜서 도덕(道德)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데, 문장으로 또 어떻게 구제할 수 있으리오? 그래서 문묵(文墨)을 놓은지 수년이 됐다’고 말한 부분을 예시로 들었다.
 

윤 대표는 “경허 선사의 삼수갑산행은 당시 승단과 세인들로부터 ‘악마(惡魔)’, ‘마종(魔種)’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인한 것으로 결국 은둔을 선택했다”며 경허 선사의 삼수갑산행이 도피적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후학들은 반면교사 삼아야
 

윤 대표는 “이를 보아온 만공, 한암과 같은 제자들은 경허 선사에 대해 ‘선(善)은 부처, 악은 호랑이보다 더했다(善惡過虎佛)’, ‘법을 따르는 것은 좋으나 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후학들에게 일렀다”며 “제자들이 삶을 보고 오히려 철저히 계를 지키 결국 스승인 경허 선사를 높게 평가받게 했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끝으로 “경허 선사가 전통선을 다시 살린 ‘공’이 높지만 막행막식으로 계율 의식을 무너뜨리고 후대 수행자들로 하여금 주색을 답습하게 한 것은 일대 과오”라며 “현대 수행자들은 그의 삶을 반면교사로 삶고 지계정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1972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한암선사의 서간문 고찰’, ‘무자화두 십종병에 대한 고찰’, ‘성철의 오매일여관 비판’ 등이 있다. 저서로는 <근현대 한국불교명저 58선> 등을 냈다.

 

 

 

 

경허 선사 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