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샘터

오래된 말이 혀 위에서 사라질 때, 새로운 노래가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맑은 샘물 2013. 3. 13. 00:00

오래된 말이 혀 위에서 사라질 때, 새로운 노래가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머리를 잃고

가슴을 얻다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자 작가인 로라 심스가 들려주는 노르웨이의 동화에서

영웅은 세 가지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첫 번째 표지판에는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다.


'이 길을 따라 여행하는 사람은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길을 선택한다. 헤맬 염려도 없고,

자아가 부서지거나 정체성을 잃을 위험도 적다.

주위 모두가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그 여정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인류가 만든 방향 표지판인 신과 진리들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때로 고되긴 하지만 여행(travel)의 어원이 '고생(travail)'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인도 여행에서 느낀 점 하나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장소와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안전하고,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으며, '이 길을 따라 여행하면 무사히'

귀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들만 대상으로 운영하는 업소들이

곳곳에 늘고 있다.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가 쓴

'그대가 계획하는 삶은 그대가 살기에는 너무 작다'를 바꿔 적으면

'남의 길을 따라가는 인도 여행은 그대가 여행하기에는 너무 제한적이다'

라는 것이다.

 


두 번째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길을 여행하는 사람은 돌아올 수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가고 있는 길과 가지 않은 길의 경계에 놓여 있다.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일시적이고 불확실한

생각쯤으로 여긴다. 겁쟁이도 힘든 일은 감내할 수 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익숙한 길을 벗어나 위험과 의심에 뛰어든다.

변화에 저항하는 이유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영역을 시도하기보다는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현재에 머문다.

여행 초기부터 나는 동인도 시킴 지역을 여행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북동쪽으로는 티베트, 서쪽으로는 네팔, 동쪽으로는 부탄에 접한 인도 히말라야

의 끝자락이다. 마치 전생에 그곳에 산 적이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당시는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이어서 두려움이 앞섰다.

해마다 가이드북을 꼼꼼히 읽은 나머지 실제로 다녀온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끝내 가지 않았다. 어느 해 우연히, 원래는 다른 지역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기차표를 구할 수 없어서 갑자기 시킴으로 향하게 되었다.

추운 지역에 대처할 여행 용품도 갖추지 못했다. 막상 도착하니 두려움은 허상

그 자체였다. 몇 번을 다시 갈 정도로 정겹고 아름답고 본향에 온 듯 편안했다.

여행 지식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았다. 시킴을 여행한 적 있는 타고르는 썼다.

'오래된 말이 혀 위에서 사라질 때, 새로운 노래가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과거의 길이 없어진 곳에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새 나라가 나타난다.'



세번째 표지판

영웅이 갈림길에서 맞닥뜨린 세 번째 표지판은 이것이다.


'이 길을 여행하는 사람은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물론 동화 속 영웅은 이 세 번째 길을 선택했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미궁 속으로 뛰어든다.

세상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자신이 직접 아마를 재배해 짠 실을

들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괴물을 죽이지만 실제로 그

가 죽인 것은 두려움에 찬 자아이다. 그가 들어간 동굴은 존재의 중심이었다.

조셉 캠벨은 말한다.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은 지리적으로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저

항을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여행

이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우리가 지쳐서 쓰러지려는 곳, 그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는 '기꺼이 고통받다(passio)'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가장 큰 모험은 타인들과 세상이 부여한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의 정체성을 부수

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고통을 기꺼이 경험하는 일이다. 그 여행을 끝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생존만 모색하고 있다면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장소라는 것을 그 여

행이 가르쳐 준다.

 

러시아의 동화에서도 영웅은 자주 갈림길에 나타난다.

세 방향의 표지판에는 용기를 꺾는 안내문만 적혀 있다.

'똑바로 가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왼쪽 길을 따라가면 말을 잃을 것이다.'

'오른쪽 길로 가면 머리를 잃을 것이다.'

당연히 영웅은 오른쪽 길로 간다.

머리를 잃고 그는 심장이 펄떡이는 가슴을 얻는다.

그래서 영웅이 된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 글 : 류시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