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통 스님은 신라시대 분이신데, 이 이야기는 스님이 출가하기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그는 산에서 놀다가 수달을 한 마리 잡아와, 그 수달을 잡아먹고 뼈를 뒤뜰에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어제 버린 수달의 뼈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핏자국이 있었어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는 그 핏자국을 따라 가 보았어요. 그 핏자국은 계곡으로 향해 있었고 그 흔적을 따라 가보니 어느 풀숲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풀숲 둥지 안에는 뼈만 남은 수달이 다섯 마리의 새끼를 꼭 감싸 안고 있는 거예요. 너무도 놀란 그는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았습니다. 미물이라 여겼던 짐승도 죽어서까지 자기 자식을 잊지 못하는 귀한 생명임을 알고 나니, 산 목숨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귀중함을 깨달아서 이제까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살생한 모든 생명들에게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참된 진리의 길을 찾아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습니다. ‘혜통’이라는 법명을 받고 수행하던 스님은 당시 유명했던 당나라의 무외 삼장법사를 찿아가 배우기를 청했지요.
“어디에서 나를 찾아왔느냐?” 삼장법사가 물었습니다.
“오직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멀리 신라 땅에서 왔습니다.” 혜통 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쪽 변방 오랑캐가 아니냐? 어찌 불법을 담을 그릇이 될 수 있겠는가?” 삼장법사의 말씀에 혜통 스님은 다시 대답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지방이야 동서남북이 있지만 어찌 진리를 구하는 마음에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삼장법사는 혜통 스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혜통 스님은 삼장법사의 문하에서 구박을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삼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삼장법사께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삼장법사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했습니다.
혜통 스님은 법을 얻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기로 작정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화로를 머리에 이고 삼장법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순간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혜통 스님의 머리가 터져버렸고 스님은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삼장법사가 놀라 화로를 치우고 혜통 스님의 머리를 만지면서 주문을 외우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머리는 곧 아물면서 소생하였습니다. 그때 생긴 흉터의 모양이 ‘王(왕)’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를 왕화상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리고 삼장법사는 그의 깊은 도량을 인정하여 그에게 심오한 불교의 진리를 모두 전수(傳授)하였다고 합니다.
혜통 스님은 고국인 신라로 돌아와 신라 진언종(眞言宗)의 초대 조사가 되어 불법을 널리 폈으며 신통력 또한 뛰어나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하는 이적을 보이기도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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