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스님의 구도심
아주 옛날, 비단 행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효성이 지극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단 짐을 짊어지고 강원도 대관령고개를 넘어가던 중,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고 있던 그는 이상한 노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더기를 입은 노스님은 길 옆 풀숲에 서서, 한참 동안 꼼짝을 않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궁금하여 노스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 아까부터 무얼 하고 계십니까?”
노스님은 자비로운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은 채
“잠시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키고 있는 중일세.”
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다시 물었어요.
“공양이요? 어떤 중생에게 무엇을 공양하고 계신가요?”
노스님은 여전히 그 자비로우신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옷 속에 있는 이와 벼룩에게 피를 먹이고 있네. 내가 움직이면 불편할 것 같아서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네.”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은 청년은 비단 장수를 그만두고 스님을 따라가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뒤를 따라 오대산 관음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단을 팔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스님의 자비로우심에 느낀바가 있어 저도 도를 닦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따라 왔습니다. 저를 부디 스님의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노스님이 말씀하셨어요.
“네가 도를 닦겠다고? 그렇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느냐?”
“예, 스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몇 번씩이나 청년의 다짐을 받으시고 나서야 노스님은 겨우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 노스님은 행자가 된 청년에게 커다란 가마솥을 부엌에다 옮겨 걸라고 시켰습니다. 행자는 스님이 시키는 대로 흙을 퍼 와서 거기에다 짚을 섞어 이기고 커다란 솥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자 이미 한 낮이 지나 하루해가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노스님은 부엌에 들어와 솥을 걸어 놓은 것을 보시고는 다시 말씀하셨어요.
“솥은 잘 걸었다마는 이제 이쪽 아궁이에는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저쪽 아궁이로 옮겨 걸도록 해라.”
그 다음날 아침, 행자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노스님이 시키는 대로 이쪽 아궁이에서 솥을 떼어 내어 저쪽 아궁이로 옮겨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마무리까지 잘 하였습니다. 얼마 뒤 노스님이 들어오셨어요. 그러더니 화난 목소리로 꾸짖는 겁니다.
“이놈! 이것도 솥이라고 걸었느나? 한쪽으로 틀어졌으니 다시 걸어라.”
그러고는 들고 계시던 석장(錫杖)으로 솥을 밀어 주저 앉혀 놓고 나가 버리셨어요. 행자가 보기에는 틀어진 곳이 없었지만, 말없이 다시 솥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솥을 걸고 허물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드디어 그의 굳은 결심과 구도심을 인정하시게 되었고 그에게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는 뜻으로 ‘구정’이라는 법명을 내리셨어요. ‘구’는 아홉이고 ‘정’은 솥이라는 뜻이랍니다.
구정 스님은 열심히 수행하여 뒷날 크게 명성을 떨쳐, 구정선사라 불리셨습니다.
스님의 구도 정신과 수행은 오늘날에도 입산 출가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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