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3. 命偈 -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
3. 命偈 -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
오조 홍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이 다 모이자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상좌는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그 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삼칸의 복도에 <능가변상>과 오조대사가 가사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공양해서,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자 벽을 살펴본 뒤 다음날 착수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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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해
1.
원래의 뜻은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라는 것. 그러나 '생사의 일(生死事)'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마음의 생멸도 암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양자는 별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불교의 시각이다. 혜능의 5대 제자의 한 사람이라는 영가현각*이 혜능을 만났을 때의 문답이 원대본의 참청기연 편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육조께서 물으셨다. "무릇 사문이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길래 도도하게 거만(大我慢)을 부리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빠릅니다."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째서 생사 없음을 체득하여 빠름 없는 도리를 통달하려 하지 않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체득함은 본래 남이 없고, 통달함은 빠름이 없습니다."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선사가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곧 작별인사를 하니,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너무 빠르지 않는가?"
선사가 말하였다. "본래 움직임이 없는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선사가 말했다. "스님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생멸이 없는 뜻을 매우 잘 아는구나."
선사가 말했다. "생멸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뜻이 없으면 누가 분별을 하는가?"
선사가 말했다 "분별 또한 뜻이 아닙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도록 하라."
그래서 그를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렀고, 후에 [증도가(證道歌)]와 [영가집(永嘉集)]을 지어서 세상에 유행케 하였다.(이 내용은 [선문염송집] 제122칙에 석장을 떨치고 병을 듬 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음)
*영가현각(665-713) : 같은 참청기연 편의 위 기록 앞에는 영가현각이 육조 대사를 찾아온 경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현각 선사는 영가 사람으로 성이 대(戴)씨다. 젊었을 때부터 경과 논을 익혀으며 천태(天台)의 지관(止觀) 법문에 특히 정통하였는데, 유마경을 보다가 마음을 밝혔다. 우연히 육조의 제자인 현책(玄策)이 찾아와서 만나 같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의 말이 모두 조사들의 뜻과 일치하였다. 현책이 물었다. "스님께 법을 준 스승이 누구입니까?" 내가 방등(方等) 경론을 읽을 때에는 각각 스승이 있으었나, 그 뒤 유마경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깨달았지만 증명해 줄 분이 없습니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그것이 가능했겠지만, 위음왕불 이후에는 스승이 없이 스스로 깨달았다 하는 것은 모두 천연외도(天然外道)입니다." "그러면 스님께서는 나를 위해 증명해 주십시오." "나의 말은 가볍습니다. 조계산에 육조 대사가 계신데 사방에서 찾아와 법을 받고 있으니 만약 가시겠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현각이 현책과 함께 조계산에 와서 대사를 뵙고 주위를 세 번 돌고 석장을 떨치고 서 있었다.]
2.
복덕이라는 수확이 생산되는 밭이라는 뜻. 불. 법. 승 삼보를 비유하는 뜻으로 쓰인다. 용수가 쓴 [대지도론]에는 "부처가 제일의 복전이다"라고 하고 있다.
3.
사람의 본래 성품에 구비되어 있는 반야의 지혜라는 뜻. 불성사상이 전제되어 있다.
4.
원문의 [處分]은 지시, 명령, 분부라는 뜻.
5.
[경덕전등록] 권제4 북종 신수선사 편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북종 신수선사는 개봉위 사람으로 성은 이씨였다. 어려서 유교를 가까이 하여 두루 섭렵하더니 후에 출가하여 스승을 찾고 도를 물었다. 기주 쌍봉에 있는 동산사에 가서 5조 홍인대사를 만나 좌선으로 업을 삼다가 참으로 나의 스승이라고 탄복한 후, 고행하기를 마음에 맹세하고 나무하기아 물긷기를 자기의 일로 알고 행하며 도를 구하였다. 홍인이 말없이 그를 알아보고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말했다. "내가 제도한 사람이 많지만, 깨달아 앎(悟解)에 그를 미칠 사람이 없다."
홍인이 열반에 든 뒤에 강릉의 당양산에 머물렀는데, 당의 측천무후가 듣고 서울로 불러서 궁내의 도량에서 공양하고 더욱 공경스런 예를 베풀었다. ~ 중종이 즉위하자 정중한 예를 거듭하였다. 대사 장열(張說)이 법요를 물으니 대사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온갖 불법을 자기 마음에 갖추었거늘 마음으로써 밖으로 구하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는 것(一切佛法 自心本有 將心外求 捨父逃走)'
신룡2년(706년) 동도의 천궁사에서 열반에 드니 대통(大通)선사라 시호를 내렸다. 제자인 보적과 의복 등은 조정과 민간 양쪽위 존경을 받았다.
6.
원래의 상좌에 앉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불가에서는 오랜 수행을 쌓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승려를 의미하고, 특히 선문에서는 선원(禪院)의 선배로서 법위(法位)가 위인 승려에 대한 경칭으로 쓰임.
7.
이 무렵 중국에서는 각종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변상도(變相圖)가 유행하였다고 한다. 능가변상이라 함은 <능가경>의 내용을 형상화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능가경>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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