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의 향기

달마어록20. 수행론(修行論)

맑은 샘물 2010. 9. 9. 00:00

 

달마어록20. 수행론(修行論)

 

 

 

 

달마대사

 

 

달마어록20. 수행론(修行論)


경전을 통틀어서 부처는 중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좋은 일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좋은 일이란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며, 꺼지지 않는 등잔에 불을 밝히고, 하루에 여섯 번씩 참선을 하고, 탑을 돌며 단식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을 지켜보는 것에 이 모든 수행이 다 들어 있다. 그때 이 모든 일들은 하나의 부수적인 일이 된다.

부처의 경전에는 셀 수 없는 비유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중생이 마음의 표면만 겉돌 뿐 깊숙한 것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서 그 오묘함을 나타내었다. 내면의 수행 대신 외부적인 일에만 집중하면서 축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대들이 절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상가라마, 즉 청정한 곳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삼독심에 물들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의 감각의 문을 청정하게 지켜야 한다. 그의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며 안과 밖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절을 짓는 것이다.
불상을 조성하는 것 역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모든 종류의 수행을 닦는 것에 해당된다.

그리고 향을 사르는 것은 물질적인 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다르마의 향이다. 그리하면 무명과 악한 행위가 그 향내와 함께 멀리 사라질 것이다.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 그는 제자들에게 그런 귀한 향에 깨어 있음의 불을 붙이리라고 말했다. 그것은 십방(十方)의 모든 부처를 공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날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백단향이나 유향으로 만든 물질적인 향에 불을 붙이고, 오지도 않을 미래의 축복을 빌고 있다.

미덕의 꽃을 뿌리는 것 역시 같은 진리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다르마를 말하는 것에 해당되며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며 진아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여래는 자기를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꽃을 꺾어 식물에 해를 끼치도록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여래의 가르침을 잘 지켜나가는 사람은 천상과 이 땅에서 어떤 생명의 모습도 해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실수로 어떤 생명을 해쳤다면 그대는 그 대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계를 어기고 앞날의 복을 받기 위해서 생명을 해치는 자는 더욱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떻게 축복을 슬픔으로 바꾸려고 하는가?
꺼지지 않는 등불은 완전한 깨어 있음을 나타낸다.

오래 전에 연등불(練燈佛)이라고 하는 부처가 있었다. 그 이름의 뜻은 그의 양미간에 있는 터럭에서 나온 빛이 무수한 세계를 비출 수 있다고 하는 뜻이다. 그러니 기름 등잔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루에 여섯 번 참선하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을 다스리라는 뜻이다.
탑 주위를 도는 것은 곧 탑이 그대의 몸과 마음이다. 그대의 깨어 있음이 멈추지 않고 몸과 마음의 주위를 돌 때 그것을 곧 탑돌이라고 부른다.
단식을 하는 것도 같은 진리를 담고 있다. 단식을 하는 것은 그대의 몸과 마음이 흩어지거나 방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번 그대가 미혹의 음식 먹기를 멈춘 뒤에 그대가 그것을 다시 만진다면 그것은 단식을 깨뜨리는 것이다. 한번 그대가 그것을 깨뜨리고 나면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축복도 받지 못한다.

이 세상은 진실을 보지 못하는 미혹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모든 형태의 악에 물들게 한다. 그들은 정욕에 마음껏 탐닉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일상의 음식 먹기를 그만두고는 그것을 단식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방편을 이해하고 인연을 맞추어야 한다. 방편에는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무위를 모두 갖추고 있다. 예배란 존경과 겸양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대의 진아에 대해 존경하는 것이고 미혹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악한 욕망을 몰아내고 착한 생각에 머무르면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더라도 그것은 바로 예배가 된다.

외부 세계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 대신에 내면으로 향한 수행에 실패한 사람은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무지와 증오와 악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위엄 있는 태도와 성현 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음으로써 남을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생사의 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러 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