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무부처와 금부처
사진14 아이들과 부처님
나무부처와 금부처
" 이젠 제법 추운걸. "
나무부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습니다. 옆에는 금부처가 점잖게 앉아 있었습니다.
" 금부처야, 넌 춥지 않겠구나. 그렇게 금으로 온몸을 둘러쌌으니 ...... , "
나무부처가 물었습니다.
" 춥지는 않지만 몸이 좀 무겁다. "
금부처가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습니다.
" 그래도 넌 이 절에서 가장 인기가 있으니 그 정도는 참아야지. "
나무부처가 빈정대듯 놀리자 금부처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습니다.
이 때 신도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왔습니다.
" 아니 새벽 예불도 시작되기 전에 웬일들이지. "
금부처가 놀라서 묻자 나무부처는
" 입시철이 되었잖아, 오라 그렇지. 넌 작년 이맘때는 없었으니까.
이제 두고 봐. "
사람들은 모두들 금부처 앞에서만 향을 피우고 절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평소 나무부처가 잘 아는 신도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금부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나무부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소원성취를
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림 14-1
나무부처는 올 겨울이 더욱 쓸쓸하고 추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겨울이 오고 법당안에 햇님이 놀러 오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올 봄서부터 주지 스님이 서원을 세워 만드신 금부처에게 그만 햇볕이 제일 잘 드는 자리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예불을 드리기 위해 스님들이 법당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서
" 스님, 이번에는 우리 아들을 꼭 합격하도록 도와주세요. "
하며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불도 금부처를 향해 시작되고 끝났습니다.
나무부처에게는 정말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일날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주지 스님이 젊은 스님들에게 물었습니다.
" 요즘 법당을 누가 청소하지. "
" 네 김행자입니다. "
한 스님이 대답하자 주지 스님은
" 저 나무부처는 색이 몹시 바랬군, 법당이 어두워 보이니 치우라고 하고,
여기 금부처님은 잘 좀 닦도록 시키게. "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 아 이제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거람. "
나무부처는 자신의 신세가 딱하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 나도 색깔만 다시 칠하면 어느 부처 못지않게 잘 생기고 또 영험도 있단
말이야. "
이렇게 외쳤지만 어떤 스님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빠져 나간 법당 안으로 김행자가 다리를 절룩 거리며 들어왔습니다.
김행자는 벌써 오래 전에 출가했지만 목발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로 몸이 불편해서
아무도 그를 스님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를 스님으로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림 14-2
그래도 김행자는 아무런 불평없이 묵묵히 궂은 일을 하며 나름대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김행자가 젊은 스님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책을 빌릴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들은
" 부처님께서도 깨진 수레는 굴러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절름
발이가 어떻게 어려운 *구도의 길을 갈 수 있겠나. "
하며 웃었습니다.
김행자는 금부처보다 나무부처를 더 좋아했습니다. 머리와 어깨의 먼지를 털어 주는 것도 그였고,
향을 피우거나 공양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도 김행자였습니다.
나무부처는 김행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습니다. 이젠 김행자의 손에 들려 잘해야 헛간 같은 데에 가서 썩거나 버려지겠지.
그런데 뜻밖에도 김행자는
" 여기 쓸쓸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제 방으로 가는 것이 나으실 거예요. "
하며 나무부처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김행자 방으로 거처를 옮긴 나무부처는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날이 갈수록
친근감이 들고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김행자의 하루 수행 생활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행자의 하루는 온통 절에 계신 모든 스님들을 봉양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틈만 나면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으로 달려가 문풍지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 정말 훌륭한 부처님의 제자다. "
나무부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김행자를 구도의 길로 이끌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아주 오래 전에 어느 *해탈한 스님이 만드셨다는 이 나무부처는 오랫동안 영험이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전설적인 애기는 믿지 않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것만 믿으려 했습니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고,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이 깊어 참선에 들어갔던 김행자는 자신이 깜빡 졸았다는 사실에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 이게 웬일일까 ? "
한겨울에도 김행자는 방에 불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엉덩이 밑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까 ! 더욱 놀란 것은 김행자 앞에 그렇게도 갖고
싶어하던 경전이 놓여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낡은 나무부처밖에는 없었습니다. 나무부처의 미소는 어느 때보다도 그윽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강원 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스님들이 외우는 글귀를 훔쳐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 때 부터 절에는 이상한 소문이 번져 나갔습니다.
" 김행자 머리가 좀 이상해졌나봐. "
" 옛날에는 부지런하더니 요즘에는 게을러져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대요. "
" 나무부처를 보며 혼자 웃다가, 무엇인지 중얼중얼하고 그런대요. "
" 글쎄 부처님이 깨진 수레는 굴러갈 수 없다고 했잖아요. "
이렇게 밖에서 수근수근대도 김행자는 끝없는 구도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제는 무엇인지 잡힐 듯도 보일 듯도 합니다.
*용맹정진 ... 정말 죽음을 무릎쓴 고행의 길이었습니다. 젊은 스님들은 주지 스님에게 김행자가 점점 미쳐가니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아, 이를 어쩐다. "
주지 스님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혹독한 추위가 몰려왔을 때 주지 스님은 결심했습니다.
" 그렇지, 금부처님한테 삼천 배를 드리고 이 문제를 한번 여쭤 봐야지. "
주지 스님은 *가사장삼을 갖추고 법당 안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합장을 하고는 금부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 앗 ! "
주지 스님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셨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스님들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금부처를 본 순간 모두
놀라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누런 황금빛 금부처가 흙빛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습니다.
" 김행자 짓이다 ! "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 김행자가 나무부처만을 끼고 돌더니 금부처님의 금박을 저렇게 벗겨
놓았다. "
이 소리가 끝나자마자 스님들은 모두 김행자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화가 난 스님들은 김행자의 방을 벌컥 열어젖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스님들은 온몸이 얼어 붙은 듯 꼼짝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행자의 방에서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한 빛과 감미로운 향기와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 스님들의 마음 속에 있는 증오심과 온갖 의심과 허상을 보아왔던 탐욕이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스님들은 방 안에서 나무부처와 함께 장엄하게 앉아 있는 *해탈한 스님
아니 부처님을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
□ 찾아보기 □
* 구 도 : 깨닫고자 노력하는 것.
* 용맹정진 :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르고 훌륭하다는 것을 믿고 힘써 노력하는 것.
* 가사장삼 : 흔히 얻은 낡은 옷을 조각조각 꿰매어 만든 스님이 입는 옷.
* 해 탈 :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동심 해탈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나한이 된 불목하니 (0) | 2011.03.22 |
---|---|
12. 자선당을 불태운 일리사 (0) | 2011.03.22 |
11. 꿈꾸는 의자 (0) | 2011.03.22 |
10. 독을 바른 주사위 (0) | 2011.03.22 |
9. 아판나카의 지혜 (0) | 2011.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