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Sutta-nipata) / 제1장 사품(蛇品) 3
숫타니파타
(Sutta-nipata)
제 1 장 사품(蛇品)
URAGAVAGGA.
뱀
URAGASUTTA
1-9. 설산(雪山)에 사는 사람
HEMAVATASUTTA
A dialogue between two Yakkhas on the qualities of Buddha. They go to Buddha, and after having their questions answered they, together with ten hundred Yakkhas, become the followers of Buddha.
(153)
칠악야차(七岳夜叉)가 말했다.
"오늘은 보름, 포살(布薩)의 날이다. 눈부신 밤이 가까와졌다.
자,우리들은 세상에서도 뛰어난 스승 고오타마를 뵈러 가자."
'To-day is the fifteenth, a fast day; a lovely
night has come,'--so said the Yakkha Satagira,--'let us (go and) see the renowned Master Gotama.'
(154)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 분의 마음은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해 알맞게 잘 대해줄 수있을까?
그리고 원하는 것이나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자제할 수 있을까?"
'Is the mind of such a one well disposed towards all beings?'--so said the Yakkha Hemavata,--'are his thoughts restrained as to things wished for or not wished for?'
(155)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 분의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알맞게 잘 대해줄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나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잘 자제될 수 있다."
'His mind is well disposed towards all beings, (the mind) of such a one ,'--so said the Yakkha Satagira,--'and his thoughts are restrained as to things wished for or not wished for.'
(156)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을까? 그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있을까?
그는 게으름에서 떠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는선정(禪定)을
그만두지 않을것인가?"
'Does he not take what has not been given (to him)?'--so said the Yakkha Hemavata,--'is he self-controlled (in his behaviour) to living beings? is he far from (a state of) carelessness? does he not abandon meditation?'
(157)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다.
그는 산 것을 죽이지 않으려고 자제하고 있다.
그는 게으름에서 떠나 있다.
깨달은 분(부처님)은 선정(禪定)을 그만 두지 않는다."
'He does not take what has not been given (to him),'--so said the Yakkha Satagira,--'and he is self-controlled (in his behaviour) to living beings, and he is far from (a state of) carelessness; Buddha does not abandon meditation.'
(158)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거친 욕설을 하지 않을까?
헐뜯는 말을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까?"
'Does he not speak falsely?'--so said the Yakkha Hemavata,--'is he not harsh-spoken? does he not utter slander? does he not talk nonsense?'
(159)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거친 욕설을 하지 않는다.
그는 헐뜯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He does not speak falsely,'--so said the Yakkha Satagira,--'he is not harsh-spoken, he does not utter slander, with judgment he utters what is good sense.'
(160)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속된 즐거움에 빠지지 않을까? 그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을까?
어리석음을초월했을까?
그리고 제법(諸法)에대해서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을까?"
'Is he not given to sensual pleasures?'--so said the Yakkha Hemavata,--'is his mind undisturbed? has he overcome folly? does he see clearly in (all) things (dhammas)?'
(161)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속된 즐거움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다.
모든 어리석음을초월했다. 그리고 제법(諸法)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He is not given to sensual pleasures,'--so said the Yakkha Satagira,--'and his mind is undisturbed;he has overcome all folly; Buddha sees clearly in (all) things.'
(162)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갖추고 있을까? 그의 행동은 청정할까?
그의 온갖 번뇌의 흐름이 끊어졌을까?
그는 이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까?"
'Is he endowed with knowledge?'--so said the Yakkha Hemavata,--'is his conduct pure? have his passions been destroyed? is there no new birth (for him)?'
(163)
칠악야차는 대답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갖추었다. 그의 행동은 청정하다.
그는 온갖 번뇌의 흐름을 끓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다."
'He is endowed with knowledge,'--so said the Yakkha Satagira,--'and his conduct is pure; all his passions have been destroyed; there is no new birth for him.
(163a)
설산야차가 말했다.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어울린다.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네가 찬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The mind of the Muni is accomplished in deed and word; Gotama, who is accomplished by his knowledge and conduct, let us (go and) see.
(163b)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어울린다.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네가 따라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4)
칠악야차가 말했다.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어울린다.
자, 우리는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고오타마를 뵈러 가자."
(165)
설산야차가 말했다.
"그 성인의 정강이는 영양(羚羊)과 같다.
여위고 가늘어 총명하고 소식(小食)해서 탐내지 않고,
숲속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있다.우리는 고오타마를 뵈러 가자.
'Come, let us (go and) see Gotama, who has legs like an antelope, who is thin, who is wise, living on little food, not covetous, the Muni who is meditating in the forest.
(166)
온갖 속된 즐거움을기대하지 않고, 마치 사자처럼,
코끼리처럼 홀로 가는 그에게 가서 우리는 물어 보자.
죽음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을."
'Having gone to him who is a lion amongst those that wander alone and does not look for sensual pleasures, let us ask about the (means of) deliverance from the snares of death.
(167)
두 야차가 같이 말했다.
"설명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 모든 법의궁극에 통달하고
원망과 공포를 넘어서 깨달은분,고오타마에게 우리는 물어 보자."
'Let us ask Gotama, the preacher, the expounder, who has penetrated all things, Buddha who has overcome hatred and fear.'
(168)
설산야차가 말했다.
"세상은 무엇에서 생겨납니까? 무엇에 대해 사랑하게 됩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해 있으며,
또 무엇 때문에 해를 입고 있습니까?"
'In what has the world originated?'--so said the Yakkha Hemavata,--'with what is the world intimate? by what is the world afflicted, after having grasped at what?'
(169)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설산에 사는 자여, 여섯 가지 것으로인하여 세상은 생겨나고,
여섯 가지 것에 대해서 사랑하게 되고,
사람들은여섯 가지 것에 집착하고 있으며,
또그 여섯 가지 것에 해를 입고 있느니라."
'In six the world has originated, O Hemavata,'--so said Bhagavat,--'with six it is intimate, by six the world is afflicted, after having grasped at six.'
(170)
"세상 사람들이해를 입는다는 그 집착이란 무엇입니까?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Hemavata said: 'What is the grasping by which the world is afflicted? Asked about salvation, tell (me) how one is released from pain?'
(171)
"세상에는 다섯 가지의 욕망의 대상이 있고,
의지(意)의 대상을 여섯번째라고 한다.
그런 것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난다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Bhagavat said: 'Five pleasures of sense are said to be in the world, with (the pleasure of) the mind as the sixth; having divested one self of desire for these, one is thus released from pain.
(172)
이와 같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너희에게 여실(如實)하게 밝히었다.
이 것을 나는너희들에게 말한다.
"이렇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This salvation of the world has been told to you truly, this I tell you: thus one is released from pain.'
(173)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거센 흐름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겠습니까?
설 데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깊은 바다에서
어떤 사람이 가라앉지않을 수 있겠습니까?"
Hemavata said: 'Who in this world crosses the stream (of existence)? who in this world crosses the sea? who does not sink into the deep, where there is no footing and no support?'
(174)
"항상 계(戒)를 몸에 지니고, 지혜가 있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선정(禪定)하며염원(念願)이 있는 사람만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능히 건널 수 있다.
Bhagavat said: 'He who is always endowed with virtue, possessed of understanding, well composed, reflecting within himself, and thoughtful, crosses the stream that is difficult to cross.
(175)
속된 즐거움의생각에서 떠나 모든 속박에서 초월하고,
환락의 마음을 멸해 버린 사람, 그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지 않는다."
'He who is disgusted with sensual pleasures, who has overcome all bonds and destroyed joy, such a one does not sink into the deep.'
(176)
설산야차가 말했다.
"깊은 지혜가 있고 미묘한 뜻을 보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속된 즐거움에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서 해탈하여
천상의 길을 가는 저 위대한 선인(仙人)을 보라
Hemavata said: 'He who is endowed with a profound understanding, seeing what is subtile, possessing nothing, not clinging to sensual pleasures, behold him who is in every respect liberated, the great Isi, walking in the divine path.
(177)
세상에 이름이 높고 미묘한 뜻을 보며, 지혜를주고
속된 즐거움의집착에서 떠나모든 것을 알고 현명하며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He who has got a great name, sees what is subtile, imparts understanding; and does not cling to the abode of sensual pleasures, behold him, the all-knowing, the wise, the great Isi, walking in the noble path.
(178)
오늘 우리는 아름다운 새벽을, 눈부신 태양의 떠오름을 잘 보았다.
거센 흐름을 건너 번뇌의 흐름이 없는 정말,
깨달은 분을보았기 때문이다.
'A good sight indeed (has met) us to-day, a good daybreak, a beautiful rising, (for) we have seen the perfectly enlightened (sambuddham), who has crossed the stream, and is free from passion.
(179)
여기 천이나 되는야차 무리들은 신통력이 있고 명성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당신께 귀의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위 없는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These ten hundred Yakkhas, possessed of supernatural power and of fame, they all take refuge in thee, thou art our incomparable Master.
(180)
저희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산에서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참으로 깨달은 이와 참된 진리에 예배하면서."
'We will wander about from village to village, from mountain to mountain, worshipping the perfectly enlightened and the perfection of the Dhamma[1].'
* 1. Dhammassa ka sudhammatam.
Hemavatasutta is ended
* 칠악야차(七岳夜叉 / Satagira yakkha) :
중인도의 사따 산에 살던 야차이다.
야차는 본래 신적인 존재 영적인 존재를 의미했으나
후기에는 나쁜 귀신의 일종으로 생각되었다.
* 포살(布薩 / uposatha) : 한 달에 보름과 그믐, 두 차례 출가수행자들은
한 곳에 모여 계율을 읽고, 지은 죄가 있으면 참회한다.
재가신도들은 그 날은 단식하면서 계를 더 지키고 공부도 더 하나
출가수행자들에게 공양을 드린다.
* 巴利原典에는 총명하고가 아니고 의젓하고(viram)이다.
* 巴利原典에는 '코끼리처럼'은 없고 '사자처럼 홀로 가는 龍에게
(siham ekcaram nagam)'이다.
* 여섯 가지 것은 눈, 코, 귀, 혀, 몸, 뜻을 가리킨다.
이를 육근(六根)이라 한다.
*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은 형상, 소리, 향기, 맛, 감촉등
오관(五官)의 대상을 말한다.
1-10. 알라바까 야차(夜叉)
ALAVAKASUTTA
The Yakkha Alavaka first threatens Buddha, then puts some questions to him which Buddha answers, whereupon Alavaka is converted.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거룩하신 부처님께서는
알라비 나라 알라바까 야차의 처소에 머물고 계셨다.
그 때 알라바까 야차는 밖에서 돌아오자 스승께 와서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 주시오."
"좋다, 친구여."하고, 스승은 나가셨다.
또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친구여."하고, 스승은 들어가셨다.
또 다시 알라바까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 주시오."
"좋다, 친구여."하고 스승은 다시 나가셨다.
또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친구여."하고, 스승은 또 들어가셨다.
세번째 또 알라바까 야차는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친구여."하고, 스승은 나가셨다.
또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친구여."하고, 스승은 들어가셨다.
네번째 또 알라바까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 주시오."
이 때 스승은 대답하셨다.
"그렇다면나는 더 나가지 않겠다. 이제는 네 할 대로 해라."
"사문이여, 제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제게 대답을 못한다면, 당신의 마음을 산란케 하고
당신의 심장을 찢은 뒤 두 다리를 잡아 간지스강 건너로 내던지겠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친구여, 천, 악마, 범천을 포함한 세계에서,
그리고 사문, 바라문, 천신(天神), 인간을 망라한 산 것 중에서,
내 마음을 산란케 하고 내 심장을 찢고 두 다리를 잡아
간지스강 건너로 내던질 만한 자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친구여, 그대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나 물어 보라."
알라바까 야차는 스승에게 다음의 게송으로써 말을 걸었다.
At one time Bhagavat dwelt at Alavi, in the realm of the Yakkha Alavaka. Then the Yakkha Alavaka went to the place where Bhagavat dwelt, and having gone there he said this to Bhagavat:
'Come out, O Samana!'
'Yes, O friend!' so saying Bhagavat came out.
'Enter, O Samana!'
'Yes, O friend!' so saying Bhagavat entered.
A second time the Yakkha Alavaka said this to Bhagavat: 'Come out, O Samana!'
'Yes, O friend!' so saying Bhagavat came out.
'Enter, O Samana!'
'Yes, O friend!' so saying Bhagavat entered.
A third time the Yakkha Alavaka said this Bhagavat: 'Come out, O Samana!'
' Yes, O friend!' so saying Bhagavat came out.
'Enter, O Samana!'
[1. Dhammassa ka sudhammatam.]
'Yes, O friend!' so saying Bhagavat entered.
A fourth time the Yakkha Alavaka said this to Bhagavat: 'Come out, O Samana!'
'I shall not come out to thee, O friend, do what thou pleasest.'
'I shall ask thee a question, O Samana, if thou canst not answer it, I will either scatter thy thoughts or cleave thy heart, or take thee by thy feet and throw thee over to the other shore of the Ganga.'
'I do not see, O friend, any one in this world nor in the world of gods, Maras, Brahmans, amongst the beings comprising gods, men, Samanas, and Brahmanas, who can either scatter my thoughts or cleave my heart, or take me by the feet and throw me over to the other shore of the Ganga; however, O friend, ask what thou pleasest.'
Then the Yakkha Alavaka addressed Bhagavat in stanzas:
(181)
"이 세상에서사람에게 으뜸가는 재산은 무엇입니까?
어떠한 선행(善行)이 안락을 가져 옵니까?
참으로 맛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최상의 생활입니까?"
'What in this world is the best property for a man? what, being well done, conveys happiness? what is indeed the sweetest of sweet things? how lived do they call life the best?'
(182)
"이 세상에서는 믿음이 사람에게 으뜸가는 재산이다.
진리의 법에따라 행한 법선행(法善行)이 두터우면 안락을 가져 온다.
진실이 맛 중의 맛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Bhagavat said: 'Faith is in this world the best property for a man; Dhamma, well observed, conveys happiness; truth indeed is the sweetest of things; and that life they call the best which is lived with understanding.'
(183)
"사람은 어떻게 해서 거센 흐름을 건넙니까?
어떻게 해서 바다를 건넙니까? 어떻게 해서 고통을 초월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완전히 청정해질 수 있읍니까?"
Alavaka said: 'How does one cross the stream (of existence)? how does one cross the sea? how does one conquer pain? how is one purified?'
(184)
"사람은 믿음으로써 거센 흐름을 건너고, 성실함으로 바다를 건넌다.
정진으로써 고통을 초월하고, 지혜로써 완전히 청정해진다."
Bhagavat said: 'By faith one crosses the stream, by zeal the sea, by exertion one conquers pain, by understanding one is purified.'
(185)
"사람은 어떻게 해서 지혜를 얻습니까? 어떻게 해서 재물을 얻습니까?
어떻게 해서 명성을 떨칩니까? 어떻게 해서 친교를 맺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을 때 걱정이 없겠습니까?"
Alavaka said: 'How does one obtain understanding? how does one acquire wealth? how does one obtain fame? how does one bind friends (to himself)? how does one not grieve passing away from this world to the other?'
(186)
"아라한(阿羅漢)들의 열반을 얻는법(法)를 믿고 성실하고총명하다면,
가르침을 받으려는 열망에 의해서 지혜를 얻는다.
Bhagavat said: 'He who believes in the Dhamma of the venerable one s as to the acquisition of Nibbana, will obtain understanding from his desire to hear, being zealous and discerning.
(187)
할 만한 일을 참을성 있게 노력하는 자는 재물을 얻는다.
진실은명성을 얻고무엇인가를 줌으로써 친교를 맺는다.
'He who does what is proper, who takes the yoke (upon him and) exerts himself, will acquire wealth, by truth he will obtain fame, and being charitable he will bind friends (to himself).
(188)
믿음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진실, 진리(法), 굳은 마음,
보시 이 네가지 법(法)이 있으면, 그는 내세에 가서도 걱정이 없다.
'He who is faithful and leads the life of a householder, and possesses the following four Dhammas (virtues), truth, justice (dhamma), firmness, and liberality,--such a one indeed does not grieve when passing away.
(189)
만일 이 세상에 진실, 자제, 보시, 인내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널리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물어 보라."
'Pray, ask also other Samanas and Brahmanas far and wide, whether there is found in this world anything greater than truth, self-restraint, liberality, and forbearance.'
(190)
"무엇 때문에 다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널리 물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내세에서도 유익한 일을 깨달았습니다.
Alavaka said: 'Why should I now ask Samanas and Brahmanas far and wide? I now know what is my future good.
(191)
아아, 깨달으신 분께서 알라비에 살러 오신 것은,
저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보시하면 어째서 위대한 과보가 얻어지는가를 알았습니다.
'For my good Buddha came to live at Alavi; now I know where (i.e. on whom bestowed) a gift will bear great fruit.
(192)
저는 시골에서 시골로, 도시에서 도시로 돌아다니겠습니다.
깨달으신 분과 가장 뛰어난진리의 법에 예배하면서."
'I will wander about from village to village, from town to town, worshipping the perfectly enlightened (sambuddha) and the perfection of the Dhamma.'
Alavakasutta is ended
1-11. 승리
VIGAYASUTTA
- 육체에 대한 가르침 -
A reflection on the worthlessness of the human body; a follower of Buddha onl y sees the body as it really is, and consequently goes to Nibbana.--Comp. Gataka I, p. 146.
(193)
걷거나 서며, 혹은 앉고 눕거나, 몸을 구부리고 또는 편다.
이것이 신체의 동작이다.
If either walking or standing, sitting or lying, any one contracts (or) stretches (his body, then) this is the motion of the body.
(194)
신체는 뼈와 힘줄로 연결되어 있고, 내피(內皮)와
살과 살갗으로 덮여져 있어,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The body which is put together with bones and sinews, plastered with membrane and flesh, and covered with skin, is not seen as it really is.
(195)
신체 내부는 장과 위로 가득 차 있고,
간장, 방광, 심장, 폐장, 신장, 비장이 있다.
It is filled with the intestines, the stomach, the lump of the liver, the abdomen, the heart, the lungs, the kidneys, the spleen.
(196)
콧물, 침, 땀, 기름, 피, 관절액, 담즙, 기름이 있다.
With mucus, saliva, perspiration, lymph, blood, the fluid that lubricates the joints, bile, and fat.
(197)
또 그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 나온다.
눈에서는 눈꼽, 귀에서는 귀지.
Then in nine streams impurity flows always from it; from the eye the eye-excrement, from the ear the ear-excrement,
(198)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때로는 담즙을 뱉고 때로는 침을 뱉는다.
온 몸에서는 땀과 때를 배설한다.
Mucus from the nose, through the mouth it ejects at one time bile and (at other times) it ejects phlegm, and from (all) the body come sweat and dirt.
(199)
또 그 머리는비어(空洞) 있고 뇌수로차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명(無名)에 이끌려서
그것을 깨끗한 것으로 알고 있다.
Then its hollow head is filled with the brain. A fool led by ignorance thinks it a fine thing.
(200)
또 죽어서 몸이 쓰러졌을 때에는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And when it lies dead, swollen and livid, discarded in the cemetery, relatives do not care (for it).
(201)
개, 여우, 늑대, 벌레들이 파 먹고
까마귀나 독수리 같은 새 짐승이 쪼아 먹는다.
Dogs eat it and jackals, wolves and worms; crows and vultures eat it, and what other living creatures there are.
(202)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분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에.
The Bhikkhu possessed of understanding in this world, having listened to Buddha's words, he certainly knows it (i.e. the body) thoroughly, for he sees it as it really is.
(203)
`저 죽은 시체도 살아 있는 이 몸뚱이와 같은 것이다.
살아 있는 이 몸뚱이도 죽은 저 시체처럼 될것이다'고
안팎으로 몸에 대한 욕망에서 떠나야 한다.
"As this (living body is) so is that (dead one ), as this is so that (will be[1]); let one put away desire for the body, both as to its interior and as to its exterior."
(204)
이 세상에서 애욕을 떠난 지혜로운 수행자는,
죽지 않고 고요하고 멸하지 않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다.
Such a Bhikkhu who has turned away from desire and attachment, and is possessed of understanding in this world, has (already) gone to the immortal peace, the unchangeable state of Nibbana.
(205)
인간의 이 몸뚱이는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어,
꽃이나 향으로 보호되고 있다.
온갖 오물이 가득 차 여기 저기서 흘러 나오고 있다.
This (body) with two feet is cherished (although) impure, ill-smelling, filled with various kinds of stench, and trickling here and there.
(206)
이런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를 높이 생각하고
남을 업신여긴다면 그는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He who with such a body thinks to exalt himself or despises others--what else (is this) but blindness?
Vigayasutta is ended.
1-12. 성인(聖人)
MUNISUTTA.
- Definition of a Muni.
(207)
친한 데서 두려움이 생기고,
가정을 가지고 생활하는데서 더러운 먼지가 낀다.
친함도 없고 가정생활도 없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성자(聖者)의 인생관(munidassana)이다.
From acquaintanceship arises fear, from house-life arises defilement; the houseless state, freedom from acquaintanceship--this is indeed the view of a Muni.
(208)
이미 돋아난 번뇌의 싹을 잘라 버리고, 새로 심지 않고
지금자라나는 번뇌를 기르지 않는다면,
이 홀로 가는 사람을 성인이라 부른다.
저 위대한 선인(仙人)은 고요한 경지를보았다.
Whosoever, after cutting down the (sin that has) arisen, does not let (it again) take root and does not give way to it while springing up towards him, him
the solitarily wandering they call a Muni; such a great Isi has seen the state of peace[1].
*1. Yatha idam tatha etam
Yatha etam tatha idam.]
(209)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자리를 살피고 그 씨를 헤아려 알고
,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생(生)을 멸해 구경(究竟)을 보는 성자이고,
망상을 버려 미궁에 빠진 자의 무리 속에 끼지 않는다.
Having considered the causes (of sin, and) killed the seed, let him not give way to desire for it; such a Muni who sees the end of birth and destruction (i.e. Nibbana), after leaving reasoning behind, does not enter the number (of living beings)[2].
* 1. Yo gatam ukkhigga na ropayeyya * 2. Samkhaya vatthuni pamaya bigam (210)
Gayantam assa nanuppavekkhe
Tam ahu ekam muninam karantam,
Addakkhi so santipadam mahesi.
Sineham assa nanuppavekkhe,
Sa ve muni gatikhayantadassi
Takkam pahaya na upeti samkham.
모든 집착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 그 어느 곳도 바라지 않고,
탐욕을 떠나 욕구가 없는 성인은 무엇을 하려고 따로 구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피안(彼岸)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He who has penetrated all the resting-places[3] (of the mind, and) does not wish for any of them,--such a Muni indeed, free from covetousness and free from greediness, does not gather up (resting-places), for he has reached the other shore.
*3. Nivesanani. Comp. Dutthaka, v. 6.
(211)
모든 것을 이기고 온갖 것을 알며, 지극히 총명하고
어떤 사물에 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애착을 끊어 해탈한 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The man who has overcome everything, who knows everything, who is possessed of a good understanding, undefiled in all things (dhamma), abandoning everything, liberated in the destruction of desire (i.e. Nibbana), him the wise style a Muni[4].
* Comp. Dhp. v. 353.'I have conquered all, I know all, in all conditions of life I am free from taint; I have left all, and through the destruction of thirst I am free; having learnt myself, whom shall I teach?'
(212)
지혜의 힘이 있고, 계율과 맹세를 잘 지키고, 마음이 한결같고
선(禪)을 하며, 생각이 깊고, 집착에서 벗어나 거칠지 않고,
번뇌의 흐름이 없는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The man who has the strength of understanding, is endowed with virtue and (holy) works, is composed, delights in meditation, is thoughtful, free from ties, free from harshness (akhila), and free from passion, him the wise style a Muni.
(213)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않은 성자,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은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The Muni that wanders solitarily, the zealous, that is not shaken by blame and praise, like a lion not trembling at noises, like the wind not caught in a net, like a lotus not soiled by water, leading others, not led by others, him the wise style a Muni.
(214)
남들이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목욕탕에있는 기둥처럼
태연하게 행동하고, 애욕을 떠나 모든 감관(感官)을 잘 가라앉힌 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Whosoever becomes firm as the post in a bathing-place, in whom others acknowledge propriety of speech, who is free from passion, and (endowed) with well-composed senses, such a one the wise style a Muni.
(215)
베짜는 북처럼 똑바로 스스로서서 모든 악한 행위를 싫어하고,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살피는 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Whosoever is firm, like a straight shuttle, and is disgusted with evil actions, reflecting on what is just and unjust, him the wise style a Muni.
(216)
자제하여 악을 행하지 않고,
젊을 때나 중년이 되어서도 성자는 자신을 억제한다.
그는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한테서 괴로움을 받지도 않는다.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Whosoever is self-restrained and does not do evil, is a young or middle-aged Muni, self-subdued, one that should not be provoked (as) he does not provoke any, him the wise style a Muni.
(217)
남이 주는 것으로 생활하면서, 새 음식이거나 먹던 음식이거나,
또는 남은 찌꺼기를 받더라도, 먹을 것을 준 사람을 칭찬하지도 않고
화를 내어 욕을 하지도 않는다면,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Whosoever, living upon what is given by others, receives a lump of rice from the top, from the middle or from the rest (of the vessel, and) does not praise (the giver) nor speak harsh words, him the wise style a Muni.
(218)
성(性)의 접촉을 떠나서 지내며,
어떠한 젊은 여자에게도 속박되지않으며,
교만하지도 태만하지도 않은 해탈한 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The Muni that wanders about abstaining from sexual intercourse, who in his youth is not fettered in any case, is abstaining from the insanity of pride, liberated, him the wise style a Muni.
(219)
세상을 잘 알고, 최고의 진리를 보고, 거센 흐름과 바다를 건넌 사람,
속박을 끊고 의존하지 않으며, 번뇌의 흐름이 없는사람,
어진이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The man who, having penetrated the world, sees the highest truth, such a one , after crossing the stream and sea (of existence), who has cut off all ties, is independent, free from passion, him indeed the wise style a Muni.
(220)
'출가한 이와 집에 있는 이' 둘은 거처와 생활 하는 법이 같지 않다.
집에 있는 이는 처자를 부양하지만, 계를 잘 지키는 이(출가자)는
무엇을 보아도 내것이라는 집착이 없다.
집에 있는 이는 남의 목숨을 해치면서 절제하기 어렵지만,
성자는 자제하고 항상 남의 목숨을 보호한다.
Two whose mode of life and occupation are quite different, are not equal: a householder maintaining a wife, and an unselfish virtuous man. A householder (is intent) upon the destruction of other living creatures, being unrestrained; but a Muni always protects living creatures, being restrained.
(221)
마치 하늘을 날으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백조를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집에 있는 이는 세속을 떠나
숲속에서 명상(禪)하는 성자나 수행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As the crested bird with the blue neck (the peacock) never attains the swiftness of the swan, even so a householder does not equal a Bhikkhu, a secluded Muni meditating in the wood.
/Munisutta is ended.
/Uragavagga is 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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