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의 향기

신심명 읽기 1,

맑은 샘물 2010. 11. 22. 00:08

 

 

독선(讀禪) - 신심명 읽기 1.


김태완

 

 


법(法)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불교 공부, 선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 허망한 세간법에 길들여진 상태를 변화시켜 진실한 출세간법에 눈뜨기 위한 것이요, 이름과 모양을 따라 다니는 습관을 바꾸어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근원에 머물기 위한 것이요, 모든 경험을 둘로 나누고 분별하여 보는 눈을 바꾸어 둘 아니고 나눌 수 없는 실재를 보는 눈을 갖추기 위한 것이요, 겉으로 드러난 의식이라는 무상한 물결만을 보던 버릇이 바꾸어 변화 없는 물을 보기 위한 것이다. 요컨대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망상을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전도몽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는 것이 바로 불교 공부요 선 공부이다.

그러므로 공부의 안내서가 되고 지침서가 되고 교과서가 되는 경전과 조사의 어록은, 이러한 공부의 목적에 알맞은 내용과 의도를 갖추고 있다. 그 내용으로 보면 이름과 모양에 구속되어 있는 전도몽상의 상황을 부수고<파사(破邪)>, 진실한 실재에 눈뜨게 하려는<현정(顯正)> 설명과 비유와 지침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그 의도로 보면 삿됨을 부수고 바름을 드러내려는 설명과 비유와 지침을 단순히 말로써만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경험하고 실천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경전과 조사의 어록을 읽고 불교와 선을 공부하는 사람도 마땅히 그러한 내용에 알맞고 그러한 의도를 달성하려는 마음가짐과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한 뒤에는 바로 그 내용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의 실천은 따로 장소와 시간을 기다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 자리에서 즉시 전도된 망상을 바로잡아서 바른 법을 보는 눈을 갖추는 것이 경을 읽고 조사어록을 읽는 목적이다.

예컨대, “상(相)을 상이 아니라고 보아야 여래를 본다”라는 경전의 구절을 읽는다고 하자. 이 구절의 의미를 단순히 이해하는 데에는 하등의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의 뜻을 이해하였다고 하여 이 경전의 구절을 제대로 읽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말의 뜻을 따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상(相)을 상으로만 보는 행위이므로, 상을 상이 아니라고 보라는 경전의 요구를 전혀 실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로 “상(相)을 상이 아니라고 보아야 여래를 본다”라는 경전의 구절을 제대로 읽는 것은, 이 말이 요구하는 바를 이 자리에서 바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구절을 읽되, 이 구절의 뜻을 이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서 상을 상이 아니게 뜻을 뜻이 아니게 말을 말이 아니게 즉시 즉시 보는 것이다.


경전과 조사어록을 읽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름과 뜻이라는 상(相)에 구속되어 끌려다니는 미혹된 상황을 바로잡아서 불이(不二)의 눈으로 글을 읽고 세계를 보도록 심안(心眼)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올바른 독경(讀經)이요 독선(讀禪)이다. 앞으로의 신심명(信心銘) 읽기 역시 단순한 글읽기가 아니라 반야(般若)의 심안(心眼)을 가지고 읽는 훈련이 되도록 이끌어 나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이 글을 진지하게 읽고 또 읽는 가운데 반야의 심안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신심명(信心銘)>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至道無難)

지극한 도를 지극한 도라고 말하지 않으면, 지금 이대로 지극한 도일 뿐이다. ‘지극하다’는 것도 ‘도’라는 것도 ‘어렵다’는 것도 ‘않다’는 것도 다만 말일 뿐이다. 말은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모양을 의식(意識)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듣고 연상(聯想)하는 모양은 실질이 없는 허망한 물거품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물거품이 일어나도 그것 역시 물일 뿐이듯이, 아무리 말을 하더라도 말에 속지 않으면 모두가 진실한 도일 뿐이다.

 

다만 가리고 선택하지만 말라.(唯嫌揀擇)

지금 가리고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 색깔을 따르고 소리를 따르고 냄새를 따르고 맛을 따르고 의식을 따라서 이것과 저것을 분별한다면, 물거품을 모양 따라 구별하면서 물을 찾으려는 것과 같이 헛된 짓이다. 그러나 흘러가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거품의 변화 가운데에서 바로 물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듯이, 가리고 선택하는 행위의 흐름 가운데에서 마음의 본성을 깨달을 수가 있다. 단지 행위하기만 하고 그 행위를 의식 위에 그림으로 그리지는 말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만 않으면,(但莫憎愛)

싫어함은 무엇이고 좋아함은 무엇인가? 싫어함과 좋아함에는 어떤 차별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싫어함과 좋아함에 다름이 없는가? 비유하면, 싫어함은 팔을 뻗어서 밖으로 밀어내는 행동이고, 좋아함은 팔을 오므려 안으로 끌어안는 행동이다. 하나의 팔을 뻗기도 하고 오므리기도 하는 것이니, 뻗고 오므리는 모양에 차별이 있다. 그러나 뻗는 행동과 오므리는 행동에 안과 밖이라는 차별을 두지 않으면, 다만 하나의 팔이 활발발하게 드러날 뿐이다.

 

막힘 없이 밝고 분명하리라.(洞然明白)

손가락 하나 움직임에서 드러나고, 눈 한 번 깜짝임에서 드러나고, 말 한 마디 함에서 드러나고, 눈길 한 번 돌리는 데서 드러나고, 발 한 걸음 옮기는 데서 드러나고, 바람소리에서 드러나고, 태양빛에서 드러나고, 손 위에서 드러나고, 발 밑에서 드러나고, 생각 위에서 드러나고, 분노 속에서 드러나고, 슬픔 속에서 드러나고, 욕망 속에서 드러나고, 지금 이렇게 글을 보고 있는 이 순간 바로 눈 앞에서 명백히 드러나니, 어떻게 숨기고 막힘이 있을 것인가?

 

 

 

 

2007년 8월 1일 - 4일 까지 3박 4일 동안 진행된 지리산에서의 여름 정진법회에서 행한 신심명 설법을 녹취하여 김태완 선생님이 직접 수정하신 법문이 <선으로 읽는 신심명>이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침묵의 향기"에서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예쁘게 디자인하여 양장본으로 만들었습니다. 선원이나 서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가격은 14,000원입니다.

 

 

 

무심선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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