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주정뱅이 화가와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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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화가와 부처님
황룡사는 아주 오래된 절입니다.
도심지 한가운데 있어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예불을 드리는 곳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이 절 입구에는 거리의 화가가 나타나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꾸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뜻 이 화가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사람은 별로없었습니다.
남루한 옷과 수염으로 꺼칠한 얼굴에 늘 술냄새를 풍겨 주정뱅이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술꾼에게도 단골 손님은 있었습니다. 황룡사에 계신다는 어느 스님이었습니다.
" 그래 오늘도 허탕친 모양이군. "
손님이 없어 하품을 하고 있는 화가 앞에 스님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 네 스님, 이러다간 굶어 죽겠어요. "
화가가 반가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 그럼 오늘도 내 얼굴을 그려 줄텐가. "
" 매일 스님 얼굴만 보니 지겹기도 하지만 그림값만 두둑히 내시면 그려
드리죠. "
" 나는 머리카락이 없으니 그림값을 깎아 주어야 하지 않겠나. "
" 그 대신 스님은 코와 귀가 남보다 크시니까 더 내셔야돼요. "
"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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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화가는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함께 웃었습니다.
화가는 이렇게 돈이 떨어질 만하면 찾아오는 스님이 고마왔습니다. 그가
이 곳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스님과 오랫동안 맺어온 우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때 황룡사에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원력으로 큰 법당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는데 아직 *탱화나 벽화를 그릴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 불화를 그리는 데는 손재주만 가지고는 안 되느니라. 욕심이 없어야 하며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
주지 스님의 이런 고집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이 절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찾아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 자네도 주지 스님을 한번 찾아가 보게나. "
언젠가 거리의 화가에게 늘 찾아오는 스님이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손을 내저으며
" 저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 초상화나 그려 주는 실력 밖에는 없어요.
또 저 같은 술꾼은 그 날 잠자리와 술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거리는 인적이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자 그나마 간혹 있던 초상화 손님들도 발길이 뚝 끊어졌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술은 커녕 단 한끼의 밥조차도 사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 눈이 너무 내려 못오시나. 스님마저 안 오시면 난 오늘 여기서 얼어 죽고
말거야. "
화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에 떨었습니다.
이 때 함박눈을 맞아 눈사람처럼 된 스님이 화가 앞에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서 계셨습니다.
" 눈 오는 풍경이라도 그리지 왜 그렇게 떨고만 있는가 ? "
" 스님, 말도 마십시오. 춥고 배고픈데 그림이 다 뭡니까 ? "
" 그럼 이걸 입어 보게나. "
스님은 입고 있던 누비 두루마기를 벗어 눈을 털고는 화가의 등에 걸쳐 주었습니다. 비록 낡은 것이긴 했지만 화가는 그 옷을 입자마자 마치 봄 햇살을
쪼이듯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 스님 죄송해서 어쩌죠. 저 때문에 감기라도 드시면 ...... , "
" 괜찮네, 이제 나는 두루마기가 필요없거든. "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새 두루마기를 얻으셨나보죠. "
" 아닐세. 두루마기를 안 입어도 된다는 말이네. "
말뜻을 몰라 스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는 화가에게 스님은 껄껄 웃으시더니
" 자네와 내가 만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세. "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스님이 절을 떠나십니까. 아니면 돌아가시기라도 하나요. "
화가는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두루마기를 벗어 준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스님 떠나시면 안 됩니다. "
화가는 스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 자네와의 만남과 헤어짐, 이 모든 것이 인연이 아니겠나. "
" 그 동안 스님을 위해 해드린 것도 없이 도움만 받았는데 ...... , "
" 그렇게 아쉬우면 내 얼굴을 멋있게 한번 그려 주겠나. "
화가는 기쁜 마음으로 스님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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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아른거려 눈물을 닦아내고, 추위로 언 손을 호 불어가며 붓끝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 역시 자네만한 화가는없어. "
그림이 완성되자 스님은 화가를 높이 칭찬했습니다.
" 스님, 이 그림은 제가 액자에 담아 내일 전해 드리겠습니다. "
" 그 동안 절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한번도 찾아오지 않더니 웬일이지. "
스님이 빙긋이 웃었습니다.
" 스님 얼굴 한 번 더보고, 사시는 모습도 보고 싶고요. "
"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네. 자 이건 그림값이네. "
" 아닙니다. 이번엔 그림값을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돈은 저에게
너무많습니다. "
" 받아두게. 다 필요할 때가 생기는 법이야. "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 훌쩍 일어서더니 절 안으로 사라지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화가는 생전 처음 절에 간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어 잠을 깼습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스님이 주신 돈으로 새 옷을 사 입고 목욕도 하고 수염을
깍아 단정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넓은 절 마당에 아침 햇살이 깊숙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화가는 스님의 초상화를 들고 어제 소복히 쌓여 눈부시게
빛나는 눈을 밟으며 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 때 화가는 갑자기 당황해 하며 무척 낭패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 스님 법명도 모르고 이 넓은 절에서 어떻게 찾는 담. "
그렇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초상화를 들고 스님들 방마다 찾아다니며 물어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초상화를 보는 스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화가는 묻고 또 물으며 결국 주지 스님이 계신 곳까지 갔습니다.
" 주지 스님이시라면 이 절에 계신 모든 스님을 잘 아시겠죠.
그러니 제가 그린 이 스님 좀 찾도록 해 주세요. "
화가가 이렇게 애원하며 초상화를 내밀자 주지 스님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 아니 이 분은 우리가 새로 지은 큰 법당의 부처님이 아닌가 ? "
" 그럴리가 ...... , 저는 큰법당 부처님이 어떻게 생긴지도 몰라요. "
이렇게 말한 화가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모두 주지 스님에게
애기했습니다.
" 어허 이상도 하지. 자네 지금 나하고 큰법당에 가봄세. "
법당에 들어선 화가는 깜짝 놀랐습니다.
화가를 늘 찾아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스님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그 곳에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 오 이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야. 부처님께서 나의 원력을 들어 주셔서
탱화불사에 자네를 점지한 것이네. 그러니 이제부터 자네는 우리 절에
머물면서 부처님을 위해 솜씨를 펼쳐 주게나. "
" 제가요 ...... ? "
술주정뱅이 거리의 화가는 이 같은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볼을 꽂집어
보기도 했지만 꿈은 아니었습니다. *
□ 찾아보기 □
* 주 지 : 절에서 그 재산과 부처님의 가르침 및 스님들을 보호, 유지하며 책임지는 스님.
* 탱 화 : 부처님이나 보살의 모습 또는 경전의 내용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해설 : 사찰스님들의 칭호와 소임
칭호 : 사찰의 스님은 따로 계급이 있는게 아니라 수행정도와 법랍 등에 따른 명칭을
칭호 또는 호칭이라고 한다.
소임 : 맡은 바 직책을 소임이라하고, 이 소임을 적어둔 것을 "용상방(龍象榜)" 이라고 한다
1. 고승(高僧)에 대한 호칭
祖師(조사): 석가모니부처님의 정통 법맥(선맥)을 이어 받은 덕이 높은 스님.
禪師(선사): 오랫동안 선을 수행하여 선의 이치에 통달한 스님.
宗師(종사): 한 종파를 일으켜 세운 학식이 깊은 스님.
律師(율사): 계율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스님. 또는 계율를 전문적으로 연구했거나계행이 철저한 스님
法師(법사): 경전에 통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선양하는 스님.
和尙(화상): 평생 가르침을 받는 은사스님.
師門(사문): 인도말로 쉬라마나 즉, 출가수행자.
大德(대덕): 덕이 높은 큰 스님.
大師(대사): 고승대덕 큰 스님.
國師(국사) 또는 왕사(王師): 한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의 명칭으로 황제나 국왕이 명한 직책.
2. 사찰에서의 스님들의 소임에 대한 호칭
회주(會主)스님: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 하나의 모임을 이끌러 가는 큰 스님
법주(法主)스님: 불법을 잘 알아서 불사나 회상의 높은 어른으로 추대된 스님
조실(祖室)스님: 선으로 일가를 이루어서 한 파의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진 스님
* 원래는 조사의 내실을 의미하며, 스님이 주요사찰에 주재함을 의미
방장(方丈)스님: 총림의 조실스님. 원래는 사방 1장인 방으로 선사의 주지가 쓰는 거실
도감(都監)스님: 사찰에서 돈이나 곡식 같은 것을 맡아보는 일이나 그 사람을 말함
부전(副殿)스님: 불당을 맡아 시봉하는 소임을 말하며, 예식 불공 등의 의식집전 스님
지전(知殿)스님: 殿主(전주)스님이라고도 하며, 불전에 대한 청결, 향, 등 등의 일체를 맡은 스님
노전(盧殿)스님: 대웅전이나 다른 법당을 맡은 스님
주지(住持)스님: 사찰의 일을 주관하는 스님-사찰의 전권을 행사하는 총책임자 스님
원주(院主)스님: 사찰의 사무를 주재하는 스님-감사(監寺), 감원(監阮)으로 살림살이를 맡는 스님
강사(講師)스님: 강원에서 경론(經論)을 가르치는 스님, 강백(講伯)스님이라고도 함.
칠직(七職)스님: 7가지 직책의 스님-포교, 기획, 호법, 총무, 재무, 교무, 사회 각 국장스님
3. 불교교단의 구성원
1)칠부대중
비구: 출가한 성년의 남자스님(인도어 비크슈)-250계의 구족계 수지
비구니: 출가한 성년의 여자스님(인도어 비크슈니)-348계의 구족계 수지
사미: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지 않은 20세 미만의 남자-10계를 지님
사미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지 않은 18세 미만의 여자-10계를 지님
식차마나: 18세-20세 사이의 여성출가자(정학녀)-6법계를 지님
우바새: 재가의 남자신자(청신사)-인도어 우파사카
우바이: 재가의 여자신자(청신녀)-인도어 우피시카
2)사대부중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합친 모두를 말함
1) 유나(維那) 스님 : 총림의 모든 규율 ·규칙을 총괄 하는 스님.
2) 선덕(禪德) 스님 : 선원 대중스님들 중에 연세가 많고 덕이 높으신 스님.
3) 선현(禪賢) 스님 : 포교일선에서 종사하다 선원으로 들어오신 연세 많은 스님.
4) 열중(悅衆) 스님 : 결재 대중을 통솔하는 소임자 스님.
5) 한주(閒主) 스님 : 결재 대중의 모범이 되는 스님.
6) 청중(淸衆) 스님 : 열중스님을 보필하면서 대중을 통솔하는 스님.
7) 지전(知殿) 스님 : 대중스님의 큰방을 정리 정돈하는 스님.
8) 지객(知客) 스님 : 모든 객을 대접하고 안내하는 스님.
9) 명등(明燈) 스님 : 선원에 모든 전기를 관리하는 스님.
10) 마호(磨糊) 스님 : 대중스님들의 풀을 끓이는 스님.
11) 야순(夜巡) 스님 : 밤중에 순시를 책임지는 스님.
12) 소지(掃地) 스님 : 선원밖에 청소를 담당하는 스님.
13) 간병(看病) 스님 : 대중스님들의 건강을 돌보는 스님.
14) 욕두(浴頭) 스님 : 대중스님들의 목욕물을 책임지는 스님.
15) 수두(水頭) 스님 : 대중스님들의 세면장을 책임지는 스님.
16) 화대(火臺) 스님 : 선원 방 온도를 조절하는 스님.
17) 정통(淨桶) 스님 : 선원 화장실 청결을 책임지는 스님.
19) 다각(茶角) 스님 : 대중스님들을 위해 차(녹차)를 책임지는 스님.
21) 법고(法鼓) 스님: 북을 치는 소임을 맡은 스님.
22) 별좌(別座) 스님: 좌구 ·침구 · 음식을 마련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23) 공양주(供養主) 스님: 밥을 짓는 소임을 맡은 스님.
24) 채공(菜供) 스님: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25) 갱두(羹頭) 스님: 국을 마련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26) 화주(化主) 스님: 사찰에서 사용할 비용을 마련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27) 부목(負木) 스님: 땔감을 마련하는 소임을 맡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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