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

숫타니파타(Sutta-nipata) / 제3장 대품(大品) 2

맑은 샘물 2012. 10. 10. 02:17

숫타니파타(Sutta-nipata) / 제3장 대품(大品) 2

 

 

 

 

숫타니파타

(Sutta-nipata)

제 3 장 대품(大品)

MAHAVAGGA.

-큰 이야기

3-5. 마그하

MAGHASUTTA.

Buddha on being asked tells Magha of those worthy of offerings and the blessing of offering.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에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왕사성의 독수리 봉(鷲峰)에 계시었다.
그 때 마그하라는 청년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기쁘고 기억할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옆에 앉더니 스승께 말했다.
"고오타마시여, 저는 보시(布施)를 실행하는 시주(施主)이며,
누구에게나 구하는 대로 베풉니다.
법에 따라 재물을 벌어들이고 법에 의해서 얻은 재물을
한 사람에게도 주고, 두 사람에게도 주고,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 여섯 사람, 일곱, 여덟, 아홉, 열 사람,
스무 사람, 설흔, 마흔, 쉰 사람에게도 주고,
백 사람에게도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도 나누어줍니다.
고오타마시여,
내가 이렇게 주고 이와 같이 바친다면 얼마나 많은
복을 얻겠습니까?"
"젊은이여, 그대가 참으로 그와 같이 주고 그와같이 바친다면,
많은 복을 얻게 되리라.
젊은이여, 누구든지 참으로 남을 잘 도와주는 시주이거나,
관대하여 구하는 대로 베풀며, 법에 따라 재산을 얻어
그 재산으로 한 사람내지는 백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 많은 복을 얻게 되리라."
마그하 청년은 게송으로써 여쭈었다.

So it was heard by me:

At one  time Bhagavat dwelt at Ragagaha, in the mountain (called) the Vulture's Peak (Gigghakuta).

Then the young man Magha went to Bhagavat, and having gone to him he talked pleasantly with him, and after having had some pleasant, remarkable conversation with him he sat down apart; sitting down apart the young man Magha spoke this to Bhagavat:

'O venerable Gotama, I am a liberal giver, bountiful, suitable to beg of; justly I seek for riches, and having sought for riches justly, I give out of the justly obtained and justly acquired riches to one , to two, to three, to four, to five, to six, to seven, to eight, to nine, to ten, to twenty, to thirty, to forty, to fifty, to a hundred, I give still more. (I should like to know), O venerable Gotama, whether I, while so giving, so offering, produce much good.'

'Certainly, O young man, dost thou in so offering produce much good; he, O young man, who is a liberal giver, bountiful, suitable to beg of, and who justly seeks for riches, and having sought for riches justly, gives out of his justly obtained and justly acquired riches to one , to two, to three, to four, to five, to six, to seven, to eight, to nine, to ten, to twenty, to thirty, to forty, to fifty, to a hundred, and gives still more, produces much good.'

Then the young man Magha addressed Bhagavat in stanzas:

(487)
마그하 청년이 말했다.
"가사를 입고 집 없이 다니는
너그러우신 스승 고오타마께 저는 묻겠습니다.
베풀어 주기를 원하는 남에게 응하는 재가(在家)의 시주,
복을 구하고 복을 위해 공양을 바치고,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이,
제사를 지낼 때에는 누구에게 바치는 제물이 깨끗합니까?"

'I ask the venerable Gotama, the bountiful,'--so said the young man Magha,--'wearing the yellow robe, wandering about houseless:' 'He who is a householder, suitable to beg of, a donor, who, desirous of good, offers having what is good in view, and giving to others in this world food and drink,--where (i.e. on whom bestowed) will the oblation of such an offerer prosper?'

(488)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그하여, 시물(施物)을 구하는 데에 응답하는 재가의 시주,
복을 구하고 복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어 줌에 의하여
받을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

'He who is a householder, suitable to beg of, a donor, O Magha,'--so said Bhagavat,--'who, desirous of good, offers having what is good in view, and giving to others in this world food and drink, such a one  will prosper with those worthy of offerings.'

(489)
마그하 청년은 말했다.
"시물을 구하는 데 응하는 재가의 시주,
복을 구하고 복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에,
마땅히 보시를 받을 사람을 제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He who is a householder, suitable to beg of, a donor,'--so said the young man,--'who, desirous of good, offers having what is good in view, and giving to others in this world food and drink,--tell me (I being such a one ), O Bhagavat, of those worthy of offerings.'

(490)
"참으로 집착 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기를 다스리는 완전한 사람,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Bhagavat: 'Those indeed who wander about in the world without clinging to anything and without possessing anything, perfect, self-restrained,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h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1)
모든 결박을 끊고 자제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have cut through all bonds and fetters, who are subdued, liberated, free from pain, and free from desir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2)
모든 결박에서 벗어나 자제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are released from all bonds, who are subdued, liberated, free from pain, and free from desir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3)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迷妄)을 버리고
번뇌의 흐름이 없어지고 청정한 행을 닦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having forsaken both passion and hatred and folly, have destroyed their desires and lead a religious lif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h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1].

*1. Comp. Dhp. v. 20.

(494)
거짓도 없고 교만도 없고, 탐욕을 떠나
내것이라고 집착하지도 않고, 갈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in whom there lives no deceit, no arrogance, who are free from cupidity, free from selfishness, free from desir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e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5)
참으로 온갖 애착에 붙잡히지 않고,
이미 거센 흐름을 건너 내것이라는 집착이 없이 다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indeed who without being lost in desire, after crossing the stream (of existence), wander about free from selfishness,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6)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떠한 세상에 있어서도
갖가지 생존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in whom there is no desire for anything in the world, nor for existence after existence here or in the other world,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7)
모든 속된 즐거움을 버리고 집 없이 다니며
자신을 억제하고 베틀의 북처럼 똑 바른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after leaving sensual pleasures, wander about houseless, well restrained, being like a straight shuttl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8)
탐욕을 떠나 모든 감관을 안정시켜
달이 라후(月蝕)에서 벗어나듯이 붙들리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se passions are gone, whose senses are well composed, who are liberated like the moon out of the grasp of Rahu,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h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499)
평안에 돌아가고 탐욕을 떠나 성내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생존의 모든 요소를 버리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are calm, whose passions are gone, who are without anger, and for whom there is no transmigration after having left here,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h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500)
생과 사를 남김 없이 버리고 모든 의혹을 넘어선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after leaving birth and death altogether, have conquered all doubt,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501)
자기를 델타(의지처)로 하여 세상을 다니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모든 일로부터 해탈한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wander about in the world with themselves for a light, not possessed of anything, in every respect liberated,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502)
"이것이 마지막 생존이고 다시는 생을 받지는 않는다'라고,
이 세상에서 그렇게 바로(如實)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Those who in this world rightly understand this: "This is the last (birth), there is no re-birth," on such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503)
베에다를 잘 알고, 선(禪)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을 귀의시킨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쳐라.
복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He who is accomplished, and delights in meditation, thoughtful, possessed of thorough enlightenment, a refuge for many, on such a one  in due time people should bestow oblations; let the Brahmana who has good (works) in view, offer.'

(504)
"참으로 제 질문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보시받을 사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이 세상에서 그렇게 바로(如實) 알고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이 법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Certainly my question was not in vain, Bhagavat has told me of those worthy of offerings; for thou truly knowest this in this world, as surely to thee this Dhamma is known.

(505)
마그하 청년이 다시 말했다.
"보시를 받고자 하는 데에 응하는 재가의 시주,
복을 구하고 복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줄 때,
완전한 제사가 어떤 것인지를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요. 스승님."

'He who is a householder, suitable to beg of, a donor,'--so said the young man Magha,--'who, desirous of good, offers having what is good in view, and giving to others in this world food and drink,--tell me (I being such a one ), O Bhagavat, of the blessing of offering.'

(506)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그하여, 제사를 지내라.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깨끗이 하여라.
제사 지낼 사람이 전심할 일은 오로지 제사뿐이다.
그는 여기에 편안히 머물러 사악(邪惡)을 버린다.

'Offer, O Magha,'--so said Bhagavat,--'and while offering make calm thy mind in all things; the object of the one  that offers is the oblation, standing fast in this he leaves hatred behind.

(507)
그는 탐욕에서 떠나 사악(邪惡)을 누르고
한량없는 자비심을 일으켜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아서
그 마음이 사방에 가득 차게 한다."

'Such a one  whose passion is gone will repress hatred, cultivating an unbounded friendly mind; continually strenuous night and day he will spread infinite goodness through all regions.'

(508)
"누가 깨끗해지고 해탈하는 것입니까?
누가 붙들려 얽매일 것입니까?
무엇으로 인해 사람은 스스로 범천계(梵天界)에 이릅니까?
성인이시여, 몰라서 묻는 것이니 일러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저는 지금 범천을 눈앞에 보았습니다.
진실로 당신은 범천과 같은 분이십니다.
빛을 지닌 이시여, 어떻게 하면 범천계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Magha: 'Who prospers? who is liberated and who is bound? In which way can one  by himself go to Brahmaloka? Tell this to me who does not know, O Muni, when asked. Bhagavat is indeed my witness that Brahman is seen by me to-day, for thou art to us equal to Brahman, this is the truth; how can one  attain Brahmaloka, O thou glorious one ?'

(50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그하여,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완전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보시 받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시물(施物)을 구하는 데에 응하는 사람이
이처럼 바르게 제사를 지낸다면 범천계에 태어날 것이다."

'He who offers the threefold blessing of oblation, O Magha,'--so said Bhagavat,--'such a one  will prosper with those worthy of offerings; so, having offered properly, he who is suitable to beg of attains Brahmaloka, so I say.'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마그하 청년은 스승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듯이, 덮인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그리고 `눈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하며
암흑 속에서 등불을 비쳐 주듯이,
고오타마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고오타마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승 고오타마께서는
저를 집에 있는 신도로서 받아 주십시오."

This having been said, Magha the young man spoke as follows to Bhagavat: 'Excellent, O venerable Gotama! Excellent, O venerable Gotama! As one  raises what has been overthrown, or reveals what has been hidden, or tells the way to him who has gone astray, or holds out an oil lamp in the dark that those who have eyes may see the objects, even so by the venerable Gotama in manifold ways the Dhamma has been illustrated; I take refuge in the venerable Gotama and in the Dhamma and in the Assembly of Bhikkhus. Let the venerable Gotama accept me as an upasaka (a follower, me), who henceforth for all my life have taken refuge (in him).'

- Maghasutta is ended.

* 세 가지 조건 : 보시하기 전에 기뻐하고 보시할 때 마음을 맑게 하고
보시하고 나서 만족하는 것

3-6. 사브히야

SABHIYASUTTA.

Sabhiya, the Paribbagaka, goes to the six famous teachers of his time to have his questions answered, but not having his doubts solved, he repairs to Gotama and asks him how one  is to behave to become a Bramana, a Samana, a Nahataka, a Khettagina, a Kusala, a Pandita, a Muni, a Vedagu, an Anuvidita, a Dhira, an Aganiya, a Sottiya, an Ariya, a Karanavat, a Paribbagaka. Bhagavat answers his questions, and Sabhiya finally receives the robe and the orders from Buddha.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한 때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왕사성 가란다 죽림원(竹林園)에 있는 다람쥐 사육소에 머물고 계시었다.
그 때 편력 중인 수행자 사브히야에게
옛 혈연자(血緣者)인 한 천신(神)이 말했다.
"사브히야여, 사문이건 바라문이건 그대가 질문을 했을 때
분명히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대는 그 밑에서 청정한 행(梵行)을 닦아라."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그 천신에게서
그와 같은 말을 배워 가지고 다음의 여섯 스승을 찾아가 물었다.
즉, 뿌라나 까사빠, 마카리 고사라, 아지따 께사깜바리,
빠구드하 까짜야나, 뻬라티 족의 아들인 산자야,
나타 족의 아들 니칸타 등인데,
그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많은 무리들을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었다. 명성을 떨치고, 교파(敎派)의 개조(開祖)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인(善人)이라고 숭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편력의 수행자 사브히야에게서 질문을 받았지만,
만족하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 뿐 아니라, 화를 내고
혐오와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브히야에게 반문을 했다.
그래서 사브히야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많은 무리를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며,
명성이 있고, 교파의 개조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인(善人)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서 질문을 받고도 만족스런 대답을 못했다.
뿐만 아니라, 화를 내고 혐오와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했으며,
내게 도리어 반문을 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 세속적인 욕망이나 누릴까 보다."
그러다가 사브히야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 계신 사문 고오타마도
많은 무리를 거느린 단체의 스승이시며, 명성이 있고,
교파의 개조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인이라 숭배를 받고 있다.
고오타마를 찾아가 물어 봐야겠다"
그러면서 사브히야는 이런 생각도 했다.
"여기 있는 사문과 바라문들은 연만해서 아주 늙은이들이지만,
상좌에 있고 경험을 쌓았으며 출가한 지가 퍽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내게 해답을 못해 주었는데,
어찌 사문 고오타마가 내 물음에 똑똑히 답해줄 수 있을까?
사문 고오타마는 아직 젊고 출가한지도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다가 사브히야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사문을 젊다고 해서 우습게 보거나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젊지만 사문이다.
그에게는 큰 신통력(神通力)과 위력이 있다.
나는 고오타마에게 가서 물어 보리라."
그리하여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왕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가란다 죽림원에 계시는 거룩한 부처님을 뵈었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곁에 앉아
사브히야는 세존께 게송으로써 여쭈었다.

So it was heard by me:

At one  time Bhagavat dwelt at Ragagaha, in Veluvana, in Kalandakanivapa. And at that time questions were recited to Sabhiya, the Paribbagaka

(wandering mendicant), by an old benevolent deity: 'He who, O Sabhiya, be it a Samana or a Bramana, explains these questions to thee when asked, near him thou shouldst live a religious life.'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having learnt the questions from that deity, went to whatever Samanas and Bramanas there were that had an assembly (of Bhikkhus), a crowd (of followers), and were well-known teachers, famous leaders, considered excellent by the multitude, as Purana-Kassapa, Makkhali-Gosala, Agita-Kesakambali, Pakudha-Kakkayana, Sangaya-Belatthiputta, and Nigantha-Nataputta. Those he went to, and after going to them, he asked the questions. They, being asked the questions by Sabhiya, the Paribbagaka, did not succeed (in answering them), and not succeeding, they showed wrath and hatred and discontent, and they also in return put questions to Sabhiya, the Paribbagaka.

Then this came to the mind of Sabhiya, the Paribbagaka: 'Whatever Samanas and Bramanas there are that have an assembly (of Bhikkhus), a crowd (of followers), and are well-known teachers, famous leaders, considered excellent by the multitude, as Purana-Kassapa, Makkhali-Gosala, Agita-Kesakambali, Pakudha-Kakkayana, Sangaya-Belatthiputta, and Nigantha-Nataputta, they, being asked questions by me, did not succeed (in answering them), and not succeeding they showed wrath and hatred and discontent, and they also in return put questions to me in this matter; surely I think I shall go back to what I have left, and enjoy sensual pleasures.

Then this came to the mind of Sabhiya, the Paribbagaka: 'This Samana Gotama has both an assembly (of Bhikkhus) and a crowd (of followers), and is a well-known teacher, a famous leader, considered excellent by the multitude, surely I think I shall go to Samana Gotama and ask these questions.' Then this came to the mind of Sabhiya, the Paribbagaka: 'Whatever Samanas and Brahmanas there are that are decayed, old, aged, advanced in years, having reached old age, experienced elders, long ordained, having assemblies (of Bhikkhus), crowds (of followers), being teachers well-known, famous leaders, considered excellent by the multitude, as Purana-Kassapa, Makkhali-Gosala, Agita-Kesakambali, Pakudha-Kakkayana, Sangaya-Belatthiputta, and Nigantha-Nataputta, they, being asked questions by me, did not succeed (in answering them), and not succeeding they showed wrath and hatred and discontent, and they also in return put questions to me in this matter; (I should like to know) whether Samana Gotama being asked these questions will be able to explain them to me, for Samana Gotama is both young by birth and new in ascetic life.'Then this came to the mind of Sabhiya, the Paribbagaka: 'Samana Gotama is not to be slighted because he is young; even if the Samana is young, yet he is mighty and powerful; surely I think I shall go to Samana Gotama and ask these questions.'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went on a journey to Ragagaha, and wandering on his journey in regular order he came to Ragagaha, Veluvana, Kalandakanivapa, to Bhagavat, and having come to Bhagavat he talked pleasantly with him, and after having had some pleasant and remarkable conversation with him he sat down apart; sitting down apart

Sabhiya, the Paribbagaka, spoke to Bhagavat in stanzas:

(510)
"의혹이 있어 질문하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저를 위해 그 의혹을 풀어 주십시오.
제가 물으면 차례대로 법에 따라 분명히 대답해 주십시오."

'Anxious and doubtful I have come,'--so said Sabhiya,--'longing to ask questions. Do thou put an end to these (doubts when) asked these questions by me, in regular order, and rightly explain them to me.'

(511)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당신은 질문을 하려고 멀리서 왔소.
당신을 위해 그것을 풀어 주리다.
당신이 물으면 차례대로 법에 따라서 분명하게 대답해 주겠소.

'Thou hast come from afar, O Sabhiya,'--so said Bhagavat,--'longing to ask questions; I shall put an end to those (doubts when) asked those questions by thee, in regular order, and rightly I shall explain them to thee.

(512)
사브히야여, 무엇이든지 마음에 있는 것을 물어 보시오.
나는 낱낱이 물음에 대답해 드리리다."
'Ask me, O Sabhiya, a question; whatsoever thou wishest in thy mind that question I (will explain, and) put an end to (thy doubt).'

이 때 사브히야는 생각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내가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는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는데,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그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는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세존께 여쭈었다.

Then this came to the mind of Sabhiya, the Paribbagaka: 'It is marvellous, it is wonderful indeed, the reception which I did not get from other Samanas and Brahmanas has been given me by Gotama,' so saying he glad, rejoicing, delighted, and highly elated asked Bhagavat a question:

(513)
사브히야가 물었다.
"무엇을 얻은 사람을 수행승이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해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자신을 제어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어째서 깨달은 분(佛)이라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이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What should a man (necessarily) have obtained that people may call him a Bhikkhu?'--so said Sabhiya,--'how may they call him compassionate, and how subdued? how can he be called enlightened (buddha)? Asked (about this) do thou, Bhagavat, explain it to me.'

(514)
스승은 대답했다.
"사브히야여, 스스로 도를 닦아 완전한 평안에 이르고,
의혹을 뛰어넘고, 생존(有)과 생존하지 않음(非有 : 衰滅)을
버리고 청정한 행(梵行)을 이루어
두가지 있음(兩有)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거듭 태어나지 않는 사람),
그를 수행승이라 합니다.

'He who by the path he has himself made, O Sabhiya,'--so said Bhagavat,--'has attained to perfect happiness, who has conquered doubt, who lives after having left behind both gain and goods, who has destroyed re-birth, he is a Bhikkhu.

(515)
모든 일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져
이 세상 아무것에도 해를 끼치지 않고, 흐름을 건너
더럽혀지지 않고 욕정이 일어나지 않는 사문,
그를 온화한 사람이라 합니다.

'Always resigned and attentive, he will not hurt any one  in all the world, the Samana who has crossed the stream (of existence, and is) untroubled; for whom there are no desires (ussada), he is compassionate.

(516)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감관을 수양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싫어하고 멀리하며,
죽을 때를 기다리며 수양하고 있는 사람,
- 그는 자기를 제어하는 사람입니다.

'He whose senses are trained internally and externally in all the world, he who after penetrating this and the other world longs for death, being trained, he is subdued.

(517)
모든 우주시기(宇宙時期)와 윤회와 목숨이 있는 자의
생과 사, 그 두 가지를 사유 판별하여 알고,
티끌을 털어 버리고, 오점없이 깨끗하게 생을 멸해 버린 사람,
그를 깨달은 사람이라 합니다."

'Whosoever, after having considered all times (kappa), the revolution (samsara), both the vanishing and re-appearance (of beings), is free from defilement, free from sin, is pure, and has obtained destruction of birth, him they call enlightened (buddha).'

그 때 사브히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스승께 물었다.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having approved of and rejoiced at the words of Bhagavat, glad, rejoicing, delighted, highly elated, asked Bhagavat another question:

(518)
사브히야가 여쭈었다.
"무엇을 얻은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까?
무엇 때문에 사문이라 합니까? 왜 목욕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어째서 용(龍, 象 :부처님)이라고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오."

'What should a man (necessarily) have obtained that people may call him a Bramana?'--so said Sabhiya,--'and how (may they call him) a Samana? and how a Nahataka? how can he be called a Naga? Asked (about this) do thou Bhagavat explain it to me.'

(519)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사브히야여, 모든 악을 물리치고 때묻지 않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 스스로 안정하며, 윤회를 넘어서
완전한 자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바라문>이라 합니다.

'He who, after removing all sins, O Sabhiya,'--so said Bhagavat,--'is immaculate, well composed, firm-minded, perfect after crossing the Samsara, such an independent one  is called a Bramana.

(520)
평안에 돌아가 선과 악을 버리고 때묻지 않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문>입니다.

'He who is calm, having left behind good and evil, free from defilement, having understood this and the other world, and conquered birth and death, such a one  is called a Samana by being so[1].'

*1. Samano tadi pavukkate tathatta.

(521)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죄악을 씻어 버리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신과 인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그를 '목욕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Whosoever, after having washed away all sins internally and externally in all the world, doesnot enter time (kappa) amongst gods and men who are subject to time, him they call a Nahataka (cleansed)[1]
.

(522)
세상에 있으면서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않고
온갖 매듭의 속박을 풀어 버리고 모든 것에서 풀려나서 해탈한 사람,
이런 사람을 용(龍, 象)이라 합니다."

'He who does not commit any crime in the world, who, after abandoning all bonds and fetters, clings to nothing, being liberated, such a one  is called a Naga (sinless) by being so[2].'


그 때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having approved of and rejoiced at the words of Bhagavat, glad, rejoicing, delighted, highly elated, further asked Bhagavat a question:

(523)
사브히야는 여쭈었다.
"깨달은 분은 누구를 가리켜 밭의 승리자(勝者)라 부릅니까?
누구를 무엇 때문에 잘한다고 합니까?
어째서 현자(賢者:pandita)입니까?
어떻게 해서 성인(聖人:muni)이라 불립니까?
스승이시여,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요."

'Whom do the Buddhas call a Khettagina?'--so said Sabhiya,--'how (can they call any one ) a Kusala? and how a Pandita? how can he be called a Muni? Asked (about this) do thou Bhagavat explain it to me.'

(52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브히야여, 천신(天神)의 밭, 사람의 밭, 범천의 밭 등,
모든 밭을 분별하고 모든 밭의 근본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이러한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밭의 승리자'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He who, after examining all regions, O Sabhiya,'--so said Bhagavat,--'the divine and the human, and Brahman's region, is delivered from the radical bond of all regions, such a one  is called a Khettagina (he who has conquered the regions) by being so.

(525)
천신의 창고(藏), 사람의 창고, 범천의 창고 등,
모든 창고를 분별하고 모든 창고의 근본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출중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He who, after examining all treasures, the divine and the human, and Brahman's treasure, is delivered from the radical bond of all treasures, such a one  is called a Kusala (happy) by being so.

(526)
내외(內外) 양면에서 흰 것을 분별하여 청정한 지혜가 있고,
흑과 백(善惡法)을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현자'라 불립니다.

'He who, after examining both kinds of senses, internally and externally, is endowed with a clear understanding and has conquered evil and good (kanhasukka), such a one  is called a Pandita (wise) by being so.

*1. Devamanussesu kappiyesu
Kappan n' eti tam ahu nahatako.

*2. Agum na karoti kinki loke
Sabbasamyoge visagga bandhanani
Sabbattha na saggati vimutto
Nago tadi pavukkate tathatta.
But compare
Pabbaggasutta 17, Magandiyasutta 11, &c.

(527)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정사(正邪)의 법을 알고,
인간과 신의 숭배를 받아 집착의 그물을 벗어난 사람,
그는 '성인'입니다."

'He who, having understood the Dhamma of the just and the unjust, internally and externally, in all the world, is to be worshipped by gods and men, he, after breaking through the net of ties, is called a Muni (sage).'

그 때 편력의 행자(行者) 사브히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스승께 질문했다.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having approved of and rejoiced at the words of Bhagavat, glad, rejoicing, delighted, highly elated, further asked Bhagavat a question:

(528)
사브히야가 여쭈었다.
"무엇을 얻은 이를 베에다에 통달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떻게 해서 달관(達觀)할 수 있는 겁니까?
어떻게 해서 용맹정진하는 사람이 되는 겁입니까?
태생이 좋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What should one  (necessarily) have obtained that people may call him Vedagu?'--so said Sabhiya,--'and how (may they call him) Anuvidita? and how Viriyavat? How does one  become Aganiya? Asked (about this) do thou, O Bhagavat, explain it to me.'

(52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브히야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베에다를 잘 분별해서 알고
모든 감수(感受:veda)한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그 감수마저 초월한 사람,
그는 베에다에 통달한 사람입니다.

'He who, having conquered all sensations, O Sabhiya,'--so said Bhagavat,--'which are (known) to Samanas and to Bramanas, is free from passion for all sensations, he is Vedagu (having passed sensation) after conquering all sensation.

(530)
안팎으로 병의 근원이 되는 망상인
이름(名稱)과 형태(色)를 알아서,
온갖 병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달관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He who, having seen the delusion of name and form[1],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root of sickness, and is delivered from the radical bond of all sickness, such a one  is called Anuvidita (well-informed) by being so.

(531)
이 세상에서 모든 죄악을 떠나 지옥의 고통을 초월하고
용맹정진하는 사람, 힘을 다해 정진하는 현자,
그런 사람이 '용맹정진하는 사람'이라 불립니다.

'He who is disgusted in this world with all sins, is strong after conquering the pain of hell, is strong and powerful, such a one  is called Dhira ( = viriyavat, firm) by being so.

*1. Anuvikka papankanamarupam.

(532)
안팎으로 집착의 근원인 모든 속박을 잘라 버리고,
온갖 집착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러한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태생이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웁니다."

'He whose bonds are cut off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root of ties[1], who is delivered from the radical bond of all ties, such a one  is called Aganiya (high-bred) by being so.'

그 때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스승께 질문했다.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having approved of and rejoiced at the words of Bhagavat, glad, rejoicing, delighted, highly elated, further asked Bhagavat a question:

(533)
사브히야가 물었다.
"무엇을 얻은 사람을 박식(博識)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해 거룩하게 됩니까?
또 어떻게 해야만 행(行)이 갖추어진 사람이 됩니까?
편력의 행자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What should a man (necessarily) have obtained that people may call him a Sottiya?'--so said Sabhiya,--'how (may they call him) an Ariya? and how a Karanavat? how may he become a Paribbagaka? Asked (about this) do thou, O Bhagavat, explain it to me.'

(534)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브히야여, 가르침을 듣고 나서는
세상의 옳고 그른 모든 법을 잘 알고,
모든 일의 정복자, 의혹이 없는 사람, 해탈한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박학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Whosoever, after having heard and understood every Dhamma in the world, O Sabhiya,'--so said Bhagavat,--'whatsoever is wrong and whatsoever is blameless, is victorious, free from doubt, liberated, free from pain in every respect, him they call a Sottiya (learned in the revelation).

(535)
모든 번뇌의 흐름과 장애(alaya)를 끊고
지혜로운 이는 모태(母胎)에 들지 않습니다.
세 가지 생각과 더러움을 털어 버리고
망상(妄想) 분별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거룩한 사람(聖人)'이라 부릅니다.

'Whosoever, after having cut off passions and desires, is wise and does not (again) enter the womb, having driven away the threefold sign, the mud (of lust), and who does not (again) enter time (kappa), him they call an Ariya (noble).

(536)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할 일을 다하고
잘하고, 항상 법을 알며,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고,
해탈하여 성냄이 없는 사람,
그를 '행이 갖추어진 사람'이라 부릅니다.

'He who in this world, after having attained the (highest) gain in the Karanas, is skilful, has always understood the Dhamma, clings to nothing, is liberated, and for whom there are no passions, he is a Karanavat (endowed with the obsrvances).

(537)
위로나 아래로, 또는 옆으로나 가운데로
모름지기 괴로움의 과보가 생기는 행위를 피하여
잘 알아 행하고 거짓과 교만한 마음과 탐욕과 성냄과
명칭과 형태를 없애 버리고, 얻을 것을 얻은 사람,
그를 '편력의 행자'라 부릅니다."

'Whosoever abstains from the action that has a painful result, above and below and across and in the middle, who wanders with understanding, who has put an end to deceit, arrogance, cupidity and anger, name and form, him they call a Paribbagaka (a wandering mendicant) who has attained the (highest) gain.'

* 1. Yass' assu lutani bandhanani
Agghattam bahiddha ka sangamulam.

그 때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쁘고 즐겁고 상쾌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편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며 알맞은
게송으로써 스승을 찬탄하였다.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having approved of and rejoiced at the words of Bhagavat, glad, rejoicing, delighted, highly elated, having risen from his seat, and having put his upper robe upon one  shoulder, bending his joined hands towards Bhagavat, praised Bhagavat face to face in appropriate stanzas:

(538)
"사문들의 논쟁에 휘말린 명칭과 문자의 표상(表象)에 의해
일어난 예순 세 가지 이설(異說)을 이기고,
지혜 많은 분은 거센 흐름을 건너셨습니다.

'Having conquered the three and sixty (philosophical) views referring to the disputations of the Samanas, thou hast crossed over the darkness of the stream[1].

*1. Yani ka tini yani ka satthi
Samanappavadasitani bhuripanna
Sannakkhara sannanissitani (?)
Osaranani vineyya oghatam' aga.

(539)
당신은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 피안(彼岸)에 이른 분입니다.
당신은 참사람(阿羅漢)이시고 한결같이 잘 깨달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흐름이 없어진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빛이 있고, 이해가 있고, 지혜가 많습니다.
괴로움을 없앤 분이시여, 당신은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Thou hast passed to the end of and beyond pain, thou art a saint, perfectly enlightened, I consider thee one  that has destroyed his passions, thou art glorious, thoughtful, of great understanding, O thou who puts an end to pain, thou hast carried me across.

(540)
당신은 저에게 의혹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성인이시여, 성인의 길을 다하신 분이여,
마음이 거칠지 않은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인자하십니다.

'Because thou sawest my longing, and carriedst me across my doubt, adoration be to thee, O Muni, who hast attained the (highest) gain in the ways of wisdom; O thou who art a true kinsman of the Adikkas, thou art compassionate.

(541)
제가 예전에 품었던 의문을 당신께서는 똑똑히 밝혀 주셨습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성인이시여, 당신은 잘 깨달으신 분입니다.
당신에게는 장애되는 것이 없습니다.

'The doubt I had before thou hast cleared away for me, O thou clearly-seeing; surely thou art a Muni, perfectly enlightened, there is no obstacle for thee.

(542)
당신의 번민은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당신은 청량(淸凉)하고 몸을 절제하고 견고하며
성실하게 사시는 분입니다.

'And all thy troubles are scattered and cut off, thou art calm, subdued, firm, truthful.

(543)
용중의 용이시며 용의 왕이시며 위대한 영웅이신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모든 천신들은 나라다와 빱바따와 함께 기뻐합니다.

'All gods and both Narada and Pabbata rejoice at thee, the chief of the sinless (naganaga), the great hero, when thou art speaking.

(544)
존귀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사람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천신들을 포함한 온 세상에서 당신에게 견줄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Adoration be to thee, O noble man, adoration be to thee, O thou best of men; in the world of men and gods there is no man equal to thee.

(545)
당신을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분이며 성인(賢者)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너 주십니다.

'Thou art Buddha, thou art the Master, thou art the Muni that conquers Mara; after having cut off desire thou hast crossed over and hast carried across this generation.

(546)
당신은 집착(upadhi)을 넘어섰고, 모든 번뇌의 흐름을 없앴습니다.
당신은 집착하는 일이 없는 사자입니다.
두려워 떠는 일이 없으십니다.

'The elements of existence (upadhi) are overcome by thee, the passions are destroyed by thee, thou art a lion, free from desire, thou hast left behind fear and terror.

(547)
아름다운 흰 연꽃이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듯,
당신은 선악의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용감한 분이시여, 두 발을 내놓으십시오.
사브히야는 스승의 두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드립니다."

'As a beautiful lotus does not adhere to the water, so thou dost not cling to good and evil, to either; stretch forth thy feet, O hero, Sabbiya worships the Master's (feet).'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거룩하신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며 말했다.
"훌륭한 일입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훌륭한 일입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열어 보이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또는 `눈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하며
암흑 속에서 등불을 비추어 주듯이,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 고오타마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께 출가하겠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계율을 받고 싶습니다."

"사브히야여, 과거에 이교도이었던 자가
내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넉 달 동안 따로 살아야 합니다.
넉 달이 지난 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여러 수행자들은 그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해서 수행승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사람에 따라 그 기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과거에 이교도이었던 자가
이 불교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출가하여 완전하게
계율을 받게 해서 비구가 되게 한다면,
저는 넉 달이 아니라 네 해 동안이라도 따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사 년이 지나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 수행승들은 저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하여
수행승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편력의 행자 사브히야는 그 때 바로 스승 앞에서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 후 얼마 안가서
이 장로 사브히야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살며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다가, 마침내 위 없는
깨끗한 행(梵行)의 궁극 - 모든 선남자들은 그것을 얻고자 집을 나와
집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 을 현세에서 스스로 깨달아
증명하고 구현하며 세월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청정한 행(梵行)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시 이러한 생존을 받지는 않는다'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브히야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Then Sabhiya, the Paribbagaka, stooping with his head to Bhagavat's feet, said this to Bhagavat:

'It is excellent, O venerable! It is excellent, O venerable! As one  raises what has been overthrown, or reveals what has been hidden, or tells the way to him who has gone astray, or holds out an oil lamp in the dark that those who have eyes may see the objects, even so by the venerable Gotama in manifold ways the Dhamma has been illustrated; I take refuge in the venerable Gotama, in the Dhamma, and in the Assembly of Bhikkhus; I wish to receive the robe and the orders from the venerable Bhagavat.'

'He who, O Sabhiya, formerly belonging

another creed (annatitthiyapubba), wishes to be adopted into this religion (dhammavinaya), and wishes to receive the robe and the orders, he serves for four months; after the lapse of four months Bhikkhus who have appeased their thoughts will give him the robe and the orders to become a Bhikkhu, (for) I also in this matter acknowledge difference of persons.'

'If, O venerable, those that formerly belonged to another creed and wish to be adopted into this religion and to receive the robe and the orders, serve for four months, and after the lapse of four months Bhikkhus who have appeased their thoughts give them the robe and the orders that they may become Bhikkhus, I will (also) serve for four months, and after the lapse of four months Bhikkhus who have appeased their thoughts shall give (me) the robe and the orders that I may become a Bhikkhu.'

Sabhiya, the Paribbagaka, received the robe and the orders from Bhagavat, and the venerable Sabhiya, having lately received the upasampada, leading a solitary, retired, strenuous, ardent, energetic life, lived after having in a short time in this existence by his own understanding ascertained and possessed himself of that highest perfection of a religious life for the sake of which men of good family rightly wander away from their houses to a houseless state. 'Birth had been destroyed, a religious life had been led, what was to be done had been done, there was nothing else (to be done) for this existence,' so he perceived, and the venerable Sabhiya became one  of the saints.

- Sabhiyasutta is ended.

* 편력의 행자(paribbajaka) : 완전하게 살아가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