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Sutta-nipata) / 제4장 여덟 시구(詩句) 이야기 2
숫타니파타
(Sutta-nipata)
제4장 여덟 시구(詩句) 이야기
IV. ATTHAKAVAGGA.
4-8. 빠수라
PASURASUTTA.
Disputants brand each other as fools, they wish for praise,
but being repulsed they become discontented; one is not purified by dispute,
but by keeping to Buddha, who has shaken off all sin.
- 논쟁을 즐겨하는 외도(外道) 빠수라에게 하신 말씀
(824)
"그들은 `이것만이 깨끗하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가르침(法)은 깨끗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만이 선(善)이라 하면서,
서로 다른 진실을 고집하고 있다.
Here they maintain 'purity,'
in other doctrines (dhamma) they do not allow purity;
what they have devoted themselves to, that they call good,
and they enter extensively upon the single truths[2].
*. Idh' eya suddhim iti vadiyanti
Nannesu dhammesu visuddhim ahu
Yam nissita tattha subham vadana
Pakkekasakkesu puthu nivittha.
(825)
그들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집회에 들어가서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낙인하며,
남(자신의 스승등)을 업고서 논쟁을 벌인다.
자신이 칭찬을 받고자 스스로를 진리에 도달했다(착하다)고 하면서.
Those wishing for dispute, having plunged into the assembly,
brand each other as fools mutually, they go to others and pick a quarrel,
wishing for praise and calling themselves (the onl y) expert.
(826)
집회에서 논쟁에 참가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자 애를 쓴다.
그리고 패배하면 풀이 죽어 논적(論敵)의 결점을 찾다가
남한테서 비난을 받고 화를 낸다.
Engaged in dispute in the middle of the assembly,
wishing for praise he lays about on all sides;
but when his dispute has been repulsed he becomes discontented,
at the blame he gets angry he who sought for the faults (of others).
(827)
모든 심판자들이 그가 말한 바에 대해서
`그대는 패배했다. 논리에서 졌다'라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 자는 슬피 울고 근심하며
`그는 나를 이겼노라'고 비탄에 잠긴다.
Because those who have tested his questions say
that his dispute is lost and repulsed, he laments and grieves having lost his disputes;
'he has conquered me,' so saying he wails.
(828)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 득의(得意)와 실의가 엇갈린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떠나야 한다.
칭찬을 받는 것 이외에 아무런 유익도 없기 때문이다.
These disputes have arisen amongst the Samanas,
in these (disputes) there is (dealt) blow (and) stroke;
having seen this, let him leave off disputing,
for there is no other advantage in trying to get praise.
(829)
또는 집회에서 의견을 말하여 그로 인해 칭찬을 받고,
속으로 기대했던 유익을 얻어, 그 때문에 기뻐 우쭐해진다.
Or he is praised there,
having cleared up the dispute in the middle of the assembly;
therefore he will laugh and be elated, having won that case as he had a mind to.
(830)
우쭐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해치는 곳(vighata bhumi:死地)이다.
그런데 그는 교만하고 그곳에 더해 허세를 부린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논쟁을 해서는 안된다.
모든 통달한 사람들은 그로 인해
청정함이 얻어진다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That which is his exaltation will also be the field of his defeat,
still he talks proudly and arrogantly; seeing this, let no one dispute,
for the expert do not say that purification (takes place) by that[1].
*1. Yi unnati sassa vighatabumi,
Manatimanam vadate pan' eso,
Etam pi disva na vivadayetha
Na hi tena suddhim kusala vadanti.
Comp. Suddhatthakasutta, v. 2.
(831)
이를테면, 국왕의 녹을 먹고사는 용사가 상대편 용사를 찾아
환성을 지르며 뛰어가는 것과 같다.
용사여, 그 토론자가 있는 곳으로 갈테면 가라.
상대가 되어 싸울 자는 이미 거기에 없다.
As a hero nourished by kingly food goes about roaring,
wishing for an adversary--where he (i.e. the philosopher, Ditthigatika) is,
go thou there, O hero; formerly there was nothing like this to fight against[1].
* 1. Suro yatha ragakhadaya puttho
Abhigaggam eti patisuram ikkham--
Yen' eva so tena palehi sura,
Pubbe va n' atthi yad idam yudhaya.
(832)
특수한 철학적 견해를 고집하고 논쟁하여
`이것만이 진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대는 그들에게 말하라.
`논쟁이 일어나도 그대와 상대할 사람은 여기에는 없다'라고.
Those who, having embraced a (certain philosophical) view,
dispute and maintain 'this onl y (is) true,'
to them say thou when a dispute has arisen, 'Here is no opponent[2] for thee.'
*2. Patisenikatta ti patilomakarako. Commentator.
(833)
또 그들은 번뇌의 군대를 처부수고,
바른 견해가 모든 다른 나쁜 견해와 모순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서 그대는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빠수라여, 그들에게서는 걷잡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라고
고집하는 그런 것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Those who wander about after having secluded themselves,
without opposing view to view--what (opposition) wilt thou meet with amongst those,
O Pasura, by whom nothing in this world is grasped as the best?
(834)
그런데 그대는 `나야말로 승리를 거두리라'고
여러 가지 생각을 짜내며, 마음 속에 여러 가지
나쁜 견해를 생각해 내면서,
나쁜 견해를 털어버린 깨끗한 사람(부처님)과
보조를 같이 하고 있지만, 그래 가지고서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Then thou wentest to reflection thinking in thy mind
over the (different philosophical) views; thou hast gone into the yoke with him
who has shaken off (al1 sin),
but thou wilt not be able to proceed together (with him)[3].
*3. Atha tvam pavitakkam agama
Manasa ditthigatani kintayanto,
Dhonena yugam samagama,
Na hi tvam pagghasi sampayatave.
4-9. 마간디야
MAGANDIYASUTTA.
A dialogue between Magandiya and Buddha.
The former offers Buddha his daughter for a wife, but Buddha refuses her.
Magandiya says that purity cornes from philosophy,
Buddha from 'inward peace.'
The Muni is a confessor of peace, he does not dispute, he is free from marks.
- 어떤 바라문이 자기 딸을 부처님께 아내를 삼아달라고 부탁하자 하신 말씀
(835)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도를 닦을 때에 갈애(渴愛)와
혐오와 탐욕이라는 세 마녀(魔女)를 보고도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망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오줌 똥으로 가득찬 그 여자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녀들에게 발을 대기조차 원하지 않는다."
Buddha: 'Even seeing Tanha, Arati, and Raga (the daughters of Mara),
there was not the least wish (in me) for sexual intercourse.
What is this (thy daughter's body but a thing) full of water and excrement?
I do not even want to touch it with my foot.'
(836)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여러 왕들이 구했던 여자,
그와 같은 보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떠한 견해를
어떠한 계율, 도덕, 생활법을,
그리고 어떠한 생존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Magandiya: 'If thou dost not want such a pearl,
a woman desired by many kings, what view, virtue, and (holy) works,
(mode of) life, re-birth dost thou profess?'
(837)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정해진 것이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그것이 집착이라 분명히 알고,
모든 견해에서의 과오를 보고 고집하는 일이 없이,
살피면서 마음속의 고요를 보았다."
"This I say," so (I do now declare),
after investigation there is nothing amongst the doctrines
which such a one (as I would) embrace, O Magandiya,'-- so said Bhagavat,--'
and seeing (misery) in the (philosophical) views,
without adopting (any of them), searching (for truth) I saw "inward peace[1]."'
* 1. Idam vadamiti na tassa hoti--Magandiya ti Bhagava--
Dhammesu nikkheyya samuggahitam
Passan ka ditthisu anuggahaya
Agghattasantim pakinam adassam.
(838)
마간디야가 말했다.
"성인이시여, 당신께서는 생각해서 구성한
정설(定說)를 고집함이 없이 '마음 속의 고요'란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다른 현인(賢人)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All the (philosophical) resolutions[2] that have been formed,'
--so said Magandiya,--'those indeed thou explainest
without adopting (any of them); the notion "inward peace"
which (thou mentionest), how is this explained by the wise?'
(83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견해에 의해서나 학문에 의해서나,
지식이나 계율, 혹은 도덕에 의해서 깨끗해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고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걸려 있지 않으며,
고요하고 덧없는 생존을 원하면 안된다.
이것이 마음 속의 고요이다."
'Not by (any philosophical) opinion, not by tradition, not by knowledge,
O Magandiya,'--so said Bhagavat,--'not by virtue
and (holy) works can any one say that purity exists;
nor by absence of (philosophical) opinion, by absence of tradition,
by absence of knowledge, by absence of virtue and (holy) works either;
having abandoned these without adopting (anything else),
let him, calm and independent, not desire existence[3].
*2. Vinikkhaya, placita?
*3. Na ditthiya na sutiya na nanena--Magandiya ti Bhagava--
Silabbatenapi na suddhim aha
Aditthiya assutiya anana
Asilata abbata no pi tena,
Ete ka nissagga anuggahaya
Santo anissaya bhavam na gappe.
(840)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견해와 학문과 지식과 계율이나 도덕에 의해서도
개끗해질 수 없다 하고,
또한 무견해, 무학, 무식에 의해서도,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에 의해서도,
깨끗해질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미케 하는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해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f one cannot say by (any philosophical) opinion, or by tradition,
or by knowledge,'--so said Magandiya,--'
or by virtue and (holy) works that purity exists,
nor by absence of (philosophical) opinion, by absence of tradition,
by absence of knowledge, by absence of virtue and (holy) works,
then I consider the doctrine foolish,
for by (philosophical) opinions some return to purity.'
(841)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자기 견해에 의해서
계속 물어 보기 때문에 집착하여 미망에 빠졌다.
그대는 이 마음 속의 고요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나의 가르침을 미혹케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And asking on account of (thy philosophical) opinion,
O Magandiya,'--so said Bhagavat,--'
thou hast gone to infatuation in what thou hast embraced,
and of this (inward peace) thou hast not the least idea,
therefore thou holdest it foolish[1].
*1. Ditthin ka nissaya anupukkhamano
Samuggahitesu pamoham aga
Ito ka naddakkhi anum pi sannam
Tasma tuvam momuhato dahasi.
(842)
`같다'든가 `낫다'든가 혹은`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다툴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에게는`같다'든가 `낫다' `못하다'는 생각이 없다.
'He who thinks himself equal (to others), or distinguished, or low,
he for that very reason disputes;
but he who is unmoved under those three conditions,
for him (the notions) "equal" and "distinguished" do not exist.
(843)
그 바라문은 어떻게 `내 말은 진실하다'고 하겠는가.
또 그는 `네 말은 허위다'라고 하면서 누구와 논쟁하겠는가.
같다든가 같지 않다는 분별이 없어진 사람이
누구와 논쟁을 벌이겠는가.
'The Brahmana for whom (the notions) "equal" and "unequal" do not exist,
would he say, "This is true?" Or with whom should he dispute, saying,
"This is false?" With whom should he enter into dispute[2]?
*2. Sakkan ti so brahmano kim vadeyya
Musa ti va so vivadetha kena
Yasmim samam visaman kapi n' atthi
Sa kena vadam patisamyugeyya.
(844)
집을 버리고 거처도 없이 방황하며,
마을에서 친교(親交)를 갖지 않는 성인은
온갖 속된 즐거움을 떠나 미래에 희망을 두지도 않으며,
또한 군중에게 이론(異論)을 내세워 논란을 벌여서도 안된다.
'Having left his house, wandering about houseless,
not making acquaintances in the village, free from lust,
not desiring (any future existence),
let the Muni not get into quarrelsome talk with people.
(845)
용(수행의 완성자)은 모든 편견을 떠나 세상을 편력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고집하여 논쟁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수련(睡蓮)이나 가시 돋친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듯이,
성인은 고요를 말하는 사람이므로 탐내지도 않고
속된 즐거움에도 세속에도 물들지 않는다.
'Let not an eminent man (naga) dispute after having embraced those (views) separated from which he (formerly) wandered in the world; as the thorny lotus elambuga is undefiled by water and mud, so the Muni, the confessor of peace, free from greed, does not cling to sensual pleasures and the world.
(846)
베다에 통달한 사람은 견해나 사색에 있어서 교만하지 않다.
그의 본성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행동에 의해서도 학문에 의해서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집착하는 곳에도 끌려들지 않는다.
'An accomplished man does not by (a philosophical) view, or by thinking become arrogant, for he is not of that sort; not by (holy) works, nor by tradition is he to be led, he is not led into any of the resting-places (of the mind).
(847)
생각(想)을 떠난 사람에게는 결박이 없다.
지혜(panna:般若)에 의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미혹(迷惑)이 없다.
그러나 생각(想)과 견해를 고집한 사람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한다."
'For him who is free from marks there are no ties, to him who is delivered by understanding there are no follies; (but those) who grasped after marks and (philosophical) views, they wander about in the world annoying (people)[1].'
*1. Sannavirattassa na santi gantha,
Pannavimuttassa na santi moha,
Sannan ka ditthin ka ye aggahesum
Te ghattayanta vikaranti loke.
- Magandiyasutta is ended.
4-10. 죽기 전에
PURABHEDASUTTA.
Definition of a calm Muni.
(848)
"어떻게 보고, 어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고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고오타마시여,
그 가장 뛰어난 사람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With what view and with what virtue is one called calm, tell me that, O Gotama, (when) asked about the best man?'
(849)
스승은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갈애(渴愛)를 떠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바가 없다."
'He whose desire is departed before the dissolution (of his body),'--so said Bhagavat,--'who does not depend upon beginning and end, nor reckons upon the middle, by him there is nothing preferred[1].
*1. Vitatanho pura bheda
Pubbam antam anissito
Vemagghe n' upasamkheyyo
Tassa n' atthi purekkhatam.
(850)
그 성인은 화내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고,
허풍떨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주문을 외거나 우쭐거리지 않고 말을 삼간다.
'He who is free from anger, free from trembling, free from boasting, free from misbehaviour, he who speaks wisely, he who is not elated, he is indeed a Muni who has restrained his speech.
(851)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 하지도 않는다.
감관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여러 견해에 이끌리는 일이 없다.
'Without desire for the future he does not grieve for the past, he sees seclusion in the phassas (touch), and he is not led by (any philosophical) views.
(852)
탐욕에서 멀리 떠나 거짓 없고 탐내지 않으며,
인색하거나 거만하지 않으며,
미움받지 않고 한 입으로 두 말(兩舌)을 하지 않는다.
'He is unattached, not deceitful, not covetous, not envious, not impudent, not contemptuous, and not given to slander.
(853)
유쾌한 일에 빠지지 않고 거만하지도 않으며,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며,
믿는 일도 없고 욕심을 부리는 일도 없다.
'Without desire for pleasant things and not given to conceit, and being gentle, intelligent, not credulous, he is not displeased (with anything).
(854)
이익을 바라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익이 없을지라도 성내지 않는다.
갈애(渴愛) 때문에 남을 거역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에 탐익하지도 않는다.
'Not from love of gain does he learn, and he does not get angry on account of loss, and untroubled by desire he has no greed for sweet things[2].
*2. Rasesu nanugigghati
(855)
마음이 평온하고, 항상 바른 생각(正念)을 가지고
세상에서 남을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자기가 낫다거나 못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번뇌의 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Equable (upekhaka), always thoughtful, he does not think himself equal (to others)[3] in the world, nor distinguished, nor low: for him there are no desires (ussada).
*3. Na loke mannate samam
Na visesi na nikeyyo.
Compare Tuvatakasutta, v. 4; Attadandasutta, v. 20.
(856)
걸림이 없는 사람은 법을 알아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생존(有)을 위한 갈애도
생존을 끊어 없애기(非有) 위한 갈애도 없다.
'The man for whom there is nothing upon which he depends, who is independent, having understood the Dhamma, for whom there is no desire for coming into existence or leaving existence,
(857)
모든 속된 즐거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야말로 '고요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에게는 얽매임이 없고, 이미 모든 애착을 건너 가버렸다.
'Him I call calm, not looking for sensual pleasures; for him there are no ties, he has overcome desire.
(858)
그에게는 자식도 가족도 논밭도 주택도 없다.
이미 얻은 것(我:atta)도 아직 얻지 못한 것(非我 : niratta, 나 아닌 것)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For him there are no sons, cattle, fields, wealth, nothing grasped or rejected is to be found in him,
(859)
범부와 사문 또는 바라문들이 그를 비난하여
탐욕의 허물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는 탐욕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여러 가지 말들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That fault of which common people and Samanas and Brahmanas say that he is possessed, is not possessed by him, therefore he is not moved by their talk.
(860)
성인은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자기는 남보다 잘났다'든가 `자기는남과 같다'든가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분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망상 분별에 따르지도 않는다.
'Free from covetousness, without avarice, the Muni does not reckon himself amongst the distinguished, nor amongst the plain, nor amongst the low, he does not enter time, being delivered from time[1].
*1. Vitagedho amakkhari
Na ussesu vadate muni
Na samesu na omesu,
Kappam n' eti akappiyo.
(861)
그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또 무소유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법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이야말로 참으로
'고요한 사람(santa :寂靜者)'이라고 불리운다.
'He for whom there is nothing in the world (which he may call) his own, who does not grieve over what is no more, and does not walk amongst the Dhammas (after his wish), he is called calm[2].'
*Comp. infra, Attadandasutta, v. 16, and Dhp. v. 367.
- Purabhedasutta is ended.
4-11. 투쟁(鬪爭)
KALAHAVIVADASUTTA.
The origin of contentions, disputes, &c. &c.
(862)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만심(慢心), 오만,
양설(兩舌)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어디서 일어난 것인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Whence (do spring up) contentions and disputes, lamentation and sorrow together with envy;and arrogance and conceit together with slander, whence do these spring up? pray, tell me this.'
(863)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만심, 오만, 양설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에서 일어난다.
투쟁과 논쟁은 인색에 따르고,
논쟁이 일어나면 양설이 일어난다."
'From dear (objects) spring up contentions and disputes, lamentation and sorrow together with envy; arrogance and conceit together with slander; contentions and disputes are joined with envy, and there is slander in the disputes arisen.'
(864)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을 연(緣)으로 해서 일어납니까?
또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탐욕은 무엇을 연(緣)으로 해서 일어납니까?
사람이 내세에 대해서 가지는 희망과 그 성취는
무엇을 연(緣)으로 해서 일어납니까?"
'The dear (objects) in the world whence do they originate, and (whence) the covetousness that prevails in the world, and desire and fulfilment whence do they originate, which are (of consequence) for the future state of a man[1]?'
*1. Ye samparayaya narassa honti.
(865)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과
또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탐욕은 욕망이 연이 되어 생긴다.
또 사람들이 내세에 대해 갖는 희망과 성취도
이것을 연으로 해서 일어난다."
'From wish[2] originate the dear (objects) in the world, and the covetousness that prevails in the world, and desire and fulfilment originate from it, which are (of consequence) for the future state of a man.'
*2. Khanda.
(866)
"그러면 세상에서 욕망은 무엇을 연으로 해서 일어납니까?
또 형이상학적인 단정은 무엇에서 생깁니까?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과 사문이 말하는 여러 법들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From what has wish in the world its origin, and resolutions[3] whence do they spring, anger and falsehood and doubt, and the Dhammas which are made known by the Samana (Gotama)?'
(867)
"세상에서 쾌(快) 불쾌라고 하는
그것에 의해서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물질적 존재에서의 생성(生)과 소멸(滅)을 보고,
세상사람들은 외적인 사물에 사로잡혀 단정을 내린다.
'What they call pleasure and displeasure in the world, by that wish springs up; having seen decay and origin in (all) bodies[4], a person forms (his) resolutions in the world.
(868)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 이런 법들도
쾌, 불쾌의 두 가지가 있을 때 나타난다.
의혹이 있는 자는 지혜의 길에서 배우라.
사문은 알고 여러 가지 법들을 말하였다."
'Anger and falsehood and doubt, these Dhammas are a couple[5]; let the doubtful learn in the way of knowledge, knowingly the Dhammas have been proclaimed by the Samana.'
*3. Vinikkhaya.
*4. Rupesu disva vibhavam bhavan ka.
*5. Te pi kodhadayo dhamma satasatadvaye sante eva pahonti uppagganti. Commentator.
(869)
"쾌, 불쾌는 무엇을 연으로 일어납니까?
또 무엇이 없을 때 이것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생과 멸의 뜻과 그 연이 되어 있는 것을
나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Pleasure and displeasure, whence have they their origin, for want of what do these not arise? This notion which (thou mentionest), viz. "decay and origin," tell me from what does this arise.'
(870)
"쾌, 불쾌는 접촉(phassa)을 연으로 해서 일어난다.
접촉이 없을 때에는 이것들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과 멸의 뜻과 그 연이 되어 있는 접촉을 나는 너에게 말한다."
'Pleasure and displeasure have their origin from phassa (touch), when there is no touch they do not arise. This notion which (thou mentionest), viz. "decay and origin," this I tell thee has its origin from this.'
(871)
"세상에서 접촉은 무엇을 연으로 일어납니까?
집착은 무엇에서 생깁니까?
무엇이 없을 때 아집(我執)이 없어집니까?
또 무엇이 멸할 때 접촉은 접촉하는 자신의 역할을 못합니까?"
'From what has phassa its origin in the world and from what does grasping spring up? For want of what is there no egotism, by the cessation of what do the touches not touch? '
(872)
"명칭과 형태로 인해서 접촉이 일어난다.
모든 집착은 욕망을 연으로 해서 생긴다.
욕망이 없을 때는 아집도 없으며,
형태가 멸했을 때는 접촉은 접촉하는 제 노릇을 못한다."
'on account of name and form the touches (exist), grasping has its origin in wish; by the cessation of wishes there is no egotism, by the cessation of form the touches do not touch.'
(873)
"어떻게 처신해야만 그에게서 형태가 멸합니까?
고(苦)와 락(樂)은 어떻게 해야 멸합니까?
멸하는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나는 이같이 생각했습니다."
'How is one to be constituted that (his) form may cease to exist, and how do joy and pain cease to exist? Tell me this, how it ceases, that we should like to know, such was my mind[1]?'
(874)
"있는 그대로 맞는 생각을 생각하는 자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잘못된 생각을 하는 자도 아니며,
아무런 생각도 생각을 안하는 자도 아니고,
생각을 멸한 자도 아니다.
이렇게 처신하는 자에게서의 형태는 멸한다.
그러나 퍼지는 의식(여러가지 妄念들)은
생각을 연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Let one not be with a natural consciousness, nor with a mad consciousness, nor without consciousness, nor with (his) consciousness gone; for him who is thus constituted form ceases to exist, for what is called delusion has its origin in consciousness[2].'
*1. Katham sametassa vibhoti rupam,
Sukham dukham vapi katham vibhoti,
Etam me pabruhi, yatha vibhoti
Tam ganiyama, iti me mano ahu.
*2. Na sannasanni na visannasanni
No pi asanni na vibhutasanni
Evam sametassa vibhoti rupam
Sannanidana hi papankasamkha.
(875)
"우리가 당신께 물은 것을 당신께서는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당신께 묻겠으니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사람의 으뜸가는 깨끗한 경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깨끗한 경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What we have asked thee thou hast explained unto us; we will ask thee another question, answer us that: Do not some (who are considered) wise in this world tell us that the principal (thing) is the purification of the yakkha, or do they say something different from this[1]?'
*1. Comp. Sundarikabharadvagasutta, v. 25.
(876)
"이 세상의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최상의 깨끗한 경지라고 말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단멸(斷滅)을 말하고,
정신도 육체도 남김 없이 멸하는 데에
으뜸가는 깨끗한 경지가 있다고 말한다."
'Thus some (who are considered) wise in this world say that the principal (thing) is the purification of the yakkha; but some of them say samaya (annihilation), the expert say (that the highest purity lies) in anupadisesa (none of the five attributes remaining)[2].
*2. Ettavat' aggam pi vadanti h' eke
Yakkhassa suddhim idha panditase,
Tesam pun' eke samayam[*] vadanti
Anupadisese kusala vadana.
(877)
그러나 생각이 깊은 성인은,
이 사람들은 `걸림이 있다'고 알고
여러 가지 걸림을 알고
`현자는 여러 가지 덧없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고 알아,
해탈된 사람은 논쟁에 끼여 들지 않는다."
'And having known these to be dependent, the investigating Muni, having known the things we depend upon, and after knowing them being liberated, does not enter into dispute, the wise (man) does not go to reiterated existence[3].'
*3. Ete ka natva upanissita ti
Natva muni nissaye so vimamsi
Natva vimutto na vivadam eti
Bhavabhavaya na sameti dhiro.
*. Ukkhedam. Commentator.
- Kalahavivadasutta is ended.
4-12. 작은 토막 문답들(短篇)
KULAVIYUHASUTTA.
A description of disputing philosophers. The different schools of philosophy contradict each other, they proclaim different truths, but the truth is onl y one . As long as the disputations are going on, so long will there be strife in the world.
(878)
세상 학자들은 저마다 자기 견해에 머물러서,
서로 달리 파악하고 자기야말로 진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 하면서
여러 가지로 주장한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진리(法)를 알고 있다.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직 완전한 사람(如來)이 아니다" 라고.
Abiding by their own views, some (people), having got into contest, assert themselves to be the (only) expert (saying), '(He) who understands this, he knows the Dhamma; he who reviles this, he is not perfect[1].'
*1. Sakam sakam ditthi paribbasana
Viggayha nana kusala vadanti
Yo evam ganati sa vedi dhammam
Idam patikkosam akeval i so.
(879)
그들은 이렇듯 서로 달리 파악하고 논쟁하며
`남들은 어리석어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 중에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So having got into contest they dispute: 'The opponent (is) a fool, an ignorant (person),' so they say. Which one of these, pray, is the true doctrine (vada)? for all these assert themselves (to be the onl y) expert.
(880)
만약 남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고 열등하며 지혜가 뒤떨어진 자라면,
그들은 모두 각자의 견해에만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고 지혜가 뒤떨어진 사람인 것이다.
He who does not acknowledge an opponent's doctrine (dhamma), he is a fool, a beast, one of poor understanding, all are fools with a very poor understanding; all these abide by their (own) views.
(881)
또 만약 자기의 견해로 인해 깨끗해지고
완전히 청정한 지혜를 가진 자, 진리를 잘 아는 자,
밝은 지혜를 지닌 자가 된다면, 그들의 견해는
그러한 점에서 똑같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지혜가 뒤떨어진 자는 없을 것이다.
They are surely purified by their own view, they are of a pure understanding, expert, thoughtful, amongst them there is no one of poor understanding, their view is quite perfect!
(882)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남의 말만 하는 것을 듣고,
나는 `이것은 진실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견해를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어리석은 자'라고 보는 것이다.
I do not say, 'This is the reality,' which fools say mutually to each other; they made their own views the truth, therefore they hold others to be fools.
(883)
어떤 사람들이 `진실이다, 여실하다'고 말하는 그 견해를
다른 사람들은 `허위다, 허망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서로 달리 파악하고 논쟁한다.
어째서 사문들은 동일하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What some say is the truth, the reality, that others say is void, false, so having disagreed they dispute. Why do not the Samanas say one (and the same thing)?
(884)
진실은 하나뿐, 둘은 없다.
그 진실을 안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진실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문들은 동일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For the truth is one , there is not a second, about which one intelligent man might dispute with another intelligent man; (but) they themselves praise different truths, therefore the Samanas do not say one and the same thing)[2].
*2. Ekam hi sakkam na dutiyam atthi
Yasmim pagano vivade paganam,
Nana te sakkani sayam thunanti,
Tasma na ekam samana vadanti.
(885)
스스로 진실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여러 가지 다른 진실을 내세우는 것일까?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진실을 남에게서 들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사색만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Why do the disputants that assert themselves (to be the onl y) expert, proclaim different truths? Have many different truths been heard of, or do they (only) follow (their own) reasoning?
(886)
세상에 많은 여러 가지 영원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원한 것으로 상상할 따름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견해에 대해서 생각을 짜내어서
`내 말은 진실이다' `다른 사람의 말은 허망하다'라고
두 가지로 말한다.
There are not many different truths in the world, no eternal one s except consciousness; but having reasoned on the (philosophical) views they proclaim a double Dhamma, truth and falsehood[1].
(887)
견해나 전해 들은 학문이나 계율, 서원, 사색등에 의존하여
남의 말을 멸시하고, 자기 학설의 단정의 입장에 서서 기뻐하면서
`남(반대하는 자)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진실을 잘아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다.
In regard to what has been seen, or heard, virtue and (holy) works, or what has been thought, and on account of these (views) looking (upon others) with contempt, standing in (their) resolutions joyful, they say that the opponent is a fool and an ignorant person[2]
(888)
남(반대자)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는 동시에,
자기는 진실을 잘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자기는 진실을 잘아는 사람이라 하면서
남을 멸시하고 그렇게 말한다.
Because he holds another (to be) a fool, therefore he calls himself expert, in his own opinion he is one that tells what is propitious, others he blames, so he said[3].
*1. Na h' eva sakkani bahuni nana
Annatra sannaya nikkani loke,
Takkan ka ditthisu pakappayitva
Sakkam musa ti dvayadhammam ahu.
*2. Ditthe sute silavate mute va
Ete ka nissaya vimanadassi
Vinikkhaye thatva pahassamana
Balo paro akusalo ti kahu.
*3. Yen' eva balo ti param dahati
Tenatumanam kusalo ti kaha,
Sayam attana sa kusala vadano
Annam vimaneti, tath' eva pava.
(889)
그는 그릇된 망견(妄見)으로 차 있고, 교만에 미쳐 취해있다.
자기는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제 일인자(第1人者)라 자만한다.
그의 그런 견해는 자신이 볼 때 그처럼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He is full of his overbearing (philosophical) view, mad with pride, thinking himself perfect, he is in his own opinion anointed with the spirit (of genius), for his (philosopbical) view is quite complete.
(890)
만약 남이 자기를 열등하다고 말함에 의해서
열등한 사람이 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도
상대와 함께 열등한 사람이 될 것이다.
또한 자기가 자기를 베에다의 달인(達人),
현자라 부를 수 있다면, 여러 사문 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If he according to another's report is low, then (he says) the other is also of a low understanding, and if he himself is accomplished and wise, ther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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